47. 자신을 발견해가는 이야기, 에마
주변 사람 중에 제인 오스틴 소설 『에마』가 왜 재미있는 소설인지 묻는 이가 있다. 바로 답하는 대신에 그에게 혹시 자신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다.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니 말이다. 자신을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얼마만큼 잘 알고 있는지 파고들어 질문하면 머뭇머뭇 한다. 스스로를 제대로 아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삶의 과정에서 앎과 깨달음은 연속적인 것이지 완성의 순간이 아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스스로를 알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에마』는 이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에마가 스스로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잘 알고 세상을 잘 안다고 느끼는 순간 그 확신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녀의 앎은 그녀가 한정지어 놓은 제한된 세계 속에서의 앎 뿐이었고, 틀을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는 순간 공든 탑처럼 쌓아올린 그녀의 앎은 와르르 무너진다. 이제 에마는 다른 방식으로 그 탑을 쌓아올려야 한다. 좀 더 견고한 방식으로 말이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 에마는 20대의 나를 닮아 있다. 다시 읽는 『에마』는 이처럼 에마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발견해 가는지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려 한다. 이를 위해 소설 첫장에서 20살까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인 오스틴이 밝히고 있는 부분을 상세히 읽어야 한다.
Emma Woodhouse, handsome, clever, and rich, with a comfortable home and happy disposition, seemed to unite some of the best blessings of existence; and had lived nearly twenty-one years in the world with very little to distress or vex her.
She was the youngest of the two daughters of a most affectionate, indulgent father; and had, in consequence of her sister's marriage, been mistress of his house from a very early period.”
에마 우드하우스는 잘 생기고 영리하며 부유했고, 편안한 집과 명랑한 성격까지 지녀 마치 인생의 가장 좋은 축복들을 모두 가진 듯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아오면서 그녀를 괴롭히거나 속상하게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다정하고 지나칠 만큼 너그러운 아버지의 두 딸 중 막내였으며, 언니가 결혼한 뒤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아버지 집의 안주인 역할을 맡아왔다.
에마는 축복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명랑하며 집도 부유하고 편안하다. 20살까지 어떤 고생도 하지 않은 어느 고귀한 귀족집의 딸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제인오스틴 소설 『에마』라고는 말하지 않고, 이런 사람이 있는데, "얼굴이 잘생겼고, 똑똑하고 집도 부자야."라고 몇마디 했더니, 이 말을 듣자 마자 이렇게나 부러운 인생이 어딨냐고 한다. 똑똑한데, 집이 부자라면 돈 걱정도 없을 것이고, 잘생겼으니 외모 경쟁력도 있어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편안한 집에 성격도 명랑해서 스물한 살이 될때까지 그를 괴롭히거나 속상하게 하는 일은 거의 겪은 일이 없다고 말했더니, "축복받은 인생이네."라는 말을 한다. 대개 20살까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친구관계로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공부와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뭔가 자신들과는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의 첫 두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에마 우드하우스는 잘생기고 영리하며 부유했고, 편안한 집과 명랑한 성격까지 지녀 마치 인생의 가장 좋은 축복들을 모두 가진 듯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아오면서 그녀를 괴롭히거나 속상하게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 그녀를 괴롭히고 속상하게 하는 일들이 하나둘씩 전개된다. 그녀는 그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갈 것인가. 고생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가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고수해 온 앎은 계속 깨지고 무너진다. 나는 누구지?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 엘리자베스처럼 에마도 '나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모른다고 진실되게 고백해야 진정한 앎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이어서 보자. 20살이 될 때까지 걱정거리 없이 살아온 에마 우드하우스에게 가족은 아버지와 시집 간 언니가 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만, 친구같은 가정교사 테일러가 그 빈자리를 충분히 메꿔주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오냐오냐하는 무척 자애로운 아버지의 두 딸 가운데 동생인데, 언니가 시집을 간 까닭에 진작부터 집안 여주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너무 오래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다정한 손길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정도가 고작이었고, 애정에서는 거의 친어머니 못지않은 한 훌륭한 여성이 가정교사로서 어머니 자리를 채워주었다. (9)
그런데 제인 오스틴은 에마가 처한 상황과 그녀의 성격이 지닌 약점을 간파하고 이게 나중에 큰 문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복선을 소설 초반에 보여준다. 어려움없이 살다보니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에마와 같은 조건에 처하면 좀 지나치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고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이 문제점인데, 그녀도 이 두 약점 때문에 그녀가 누리는 많은 즐거움이 희석될 위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위험을 전혀 느끼지도 못했으니, 그녀에게는 이 약점들이 무슨 불운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10)
이제 에마에게 첫 위기가 다가왔다. 그녀를 아껴주고 말동무가 되주었던 테일러가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난다. 테일러가 누구인가. "현명하고 유식하고 유능하고 온화하며 식구들의 성격을 잘 알고 모든 집안 일에, 특히 에마의 일이라면 그녀의 즐거움과 그녀가 꾸미는 모든 계획에 관심이 가져준" 벗이 아닌가.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정말 축하해 줄 일이지만, 에마에게는 큰 슬픔이었다. 그녀에게 다가온 큰 상실감이었다. "16년의 사랑과 다정함"을 상실한 것이다.
매일 매 시각 테일러 양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낄 것이었다.(11)
테일러를 결혼으로 떠나보낸 것도 슬픈데, 혼자 남은 아버지는 에마의 말동무가 되지 못한다. "아버지를 끔찍이 사랑하기는 했으나, 아버지는 말 상대는 되지 못했다. 논리적인 대화든, 장난스러운 대화든 그녀를 따라오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보이듯이, 일상의 대화를 터놓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논리적인 대화, 재치있고 위트있는 대화를 하지 못하는게 에마에게 큰 어려움으로 닥친다. 이 대목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가적 플롯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만약 에마의 아버지가 『오만과 편견』의 베넷씨처럼 위트있고 유머가 있는 아버지였다면 에마가 느낀 상실의 위기는 거의 없었을 것이고, 이어지는 사건과 그녀가 맞닥뜨리는 문제들의 개연성도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에마 우드하우스 가문은 하이베리에서 첫째가는 가문이었고, 모두 이 집안을 우러러 보았다고 묘사되어 있다. 우드하우스 씨는 예민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며, "은근히 이기적인 데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 자기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못하는 습성"의 사람이었으니, 딸 에마를 위한 교육적 대화가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래도 에마는 효녀였기에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기도 하고, 가능한 한 웃는 얼굴로 명랑하게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에마의 자존심, 사획적 명성에 스크래치를 주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예를 들어 에마는 웨스턴 씨 집에서 열린 무도회가 자신을 위한 무도회라고 생각했지만, 춤추기 전 사람들이 입장할 때 자신이 엘튼 부인 뒤에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다.
웨스턴 씨와 엘튼 부인이 앞장서고, 프랭크 처칠 씨와 우드하우스 양이 그 뒤를 따랐다. 에마는 이 무도회가 특히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항싱 생각해 왔지만, 엘튼 부인을 앞세우고 두 번째 자리에 서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녀로 하여금 거의 결혼할 생각이 나게 할 정도였다. (470)
사실 에마가 엘튼 부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엘튼씨의 짝으로 자신의 친구 해릿엇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엘튼씨가 엘튼 부인을 섵택했기 때문이다. 에마는 스스로를 중매의 달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테일러 양이 웨스턴 씨와 결혼하게 된 것도 둘을 적극적으로 이어주고 분위기를 만든 자신의 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에마는 자신이 프랭크 처칠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가 해리엇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상상하지만 "상황을 잘 읽는다"는 그녀의 믿음은 가차없이 붕괴되고 만다. 이쯤되니 에마는 사람들의 마음과 인간 관계를 잘 읽는 사람이 아니라 매번 오독하는 인물로 보여진다. 그녀는 제인 페어팩스도 지루하고 거리감있는 인물로 판단하지만, 실제 제인은 훨씬 더 품위 있고 상황도 복잡하며 내면이 깊은 인물로 드러난다. 사실 에마는 제인 페어팩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독의 문제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박스힐 소풍 장면에서 가장 큰 에마의 도덕적 추락이 발생한다. 사람들 앞에서 에마는 베이츠 양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조롱한다. 이 에마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녀의 인격 자체가 타격을 입은 사건이었다. 단순 무례가 아닌 도덕적 책임의 부족을 보여준 행동이었다. 베이츠 양과 같은 약자에 대한 공감 부족은 나이틀리 씨가 지적한 에마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베이츠 양은 가난학고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더 배려"해야 한다고 에마를 꾸짖는다. 이 때 에마는 자존심이 깨지는 무너짐을 경험한다. 자신이 했던 작은 실수들을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수준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에마가 진정으로 고결한 지성의 여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독이 오독을 낳는 형국이다. 제인 오스틴은 에마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여성이 되도록 플롯의 한 가지를 구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는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발견한 부분이다. 해리엇이 나이틀리 씨를 좋아한다고 고백하자 에마는 충격과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이때 에마는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런데 플롯의 순서상, 자신이 나이틀리를 좋아한다는 해리엇의 고백은 베이츠양과 관련하여 나이틀리의 따끔한 지적이 있었던 사건 이후에 벌어지고 있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플롯 순서이다. 에마가 베이츠 양에게 비도덕적으로 행동했던 부분에 대해 나이틀리 씨가 혹독하게 나무랐을 때, 에마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마, 이제까지 그런 것처럼 또 한번 당신한테 한마디 해야겠네. 허용했다기보다는 참아 준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행사해야겠소. 당신이 그릇된 행동을 하고 뉘우치지지도 않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어떻게 베이츠 양에게 그렇게 무정하게 굴 수가 있지? 성격과 연배의 처지를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무례한 재담을 할 수가 있소? 에마, 당신이 그럴 줄은 정말 몰랐어."(543)
...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마차로 다가갔다. 마차는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가 미처 다시 입을 열 틈도 없이 그는 그녀를 부축해 마차에 태웠다. 얼굴을 돌리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속마음을 그는 잘못 읽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에게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심히 걱정스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 수가 없었고, 마차에 오르자 그런 기분에 압도되어 잠시 몸을 파묻고 앉아 있다가, 그 다음에는 작별 인사도 못하고 치하도 못 한채 골이 난 것 같은 모습으로 헤어진 것을 자책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려는 목소리와 손짓으로 밖을 내다 보았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는 이미 자리를 떴고 말들은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속도는 왜 그렇게 유난히 빠른지 곧 언덕을 반쯤 내려왔고, 모든 것이 뒤로 멀어졌다.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의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속이 탔다. 여태껐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속상하고 수치스럽고 후회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타격이 대단히 컸다. 그가 그려 보여 준 모습이 다 사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를 가슴 깊이 절감했다. 어떻게 베이츠 양에게 그렇게 모질고 그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었는지! 누가 되었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비난받을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거기다 그분한테 감사나 동감이나 흔한 예의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한채 떠나 보낸 것인지!(546)
자신의 판단과 행동의 오류, 도덕적 책임의 부재 등을 가슴 깊이 후회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기에 에마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자신의 진실된 마음과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해리엇의 고백을 듣고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이틀리 씨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시야가 분명하게 들어온다. 자신이 나이틀리 씨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해리엇에게 했던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은 부적절했으며, 사려깊지 못하고, 섬세하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않는 것이었다.
해리엇이 프랭크처칠이 아니라 나이틀리 씨를 사랑하는 게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리엇이 자신의 사랑이 화답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얼마간 품고 있는 것이 더 끔찍하게 불행한 사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생각이 쏜살같이 에마의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나이틀리 씨는 그녀 말고 어느 누구와도 결혼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에마는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허위와 오만, 위선, 편견을 벗기 시작한다. 진실을 마주한 순간, 나이틀리 씨의 말처럼 자신은 그동안 해리엇에게 진정한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 친구보다 자신의 체면, 명예 등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나니, 해리엇의 마음도 제대로 보인다.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어느 겨울 저녁 에마가 나이틀리 씨와 대화를 나눈 뒤, 마차를 타고 나이틀리 씨가 돌아가고, 에마는 아버지 우드하우스 씨를 위해 오트밀 죽을 준비한다. 예전이었다면 자신은 전혀 오트밀 죽을 먹을 생각이 없다고 했겠지만, 오트밀 죽을 찬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맛있게 한 그릇 먹는 에마의 모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