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6. 걷기의 즐거움

by 제이오름
XL

1801년 5월 21일 제인 오스틴이 언니 카산드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산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The friendship between Mrs. Chamberlayne and me which you predicted has already taken place, for we shake hands whenever we meet. Our grand walk to Weston was again fixed for yesterday, and was accomplished in a very striking manner. Every one of the party declined it under some pretence or other except our two selves, and we had therefore a tête-à-tête...

It would have amused you to see our progress. We went up by Sion Hill, and returned across the fields. In climbing a hill Mrs. Chamberlayne is very capital; I could with difficulty keep pace with her, yet would not flinch for the world. On plain ground I was quite her equal.


“언니가 예상했던 대로 체임벌린 부인과 나 사이에 우정이 피어났고 이제 우리는 만날 때마다 악수를 건네. 어제 우리는 다시 웨스턴을 제대로 돌아봤고 아주 꼼꼼히 살폈어. 우리 두 사람 빼곤 모두 핑계를 대며 거절했기에 둘 만의 사담을 나누었고 그러는 통에 바스의 첫2야드를 동네 사람들과 같이 걸었지 뭐야.

우리가 어디까지 갔는지 알면 언니는 놀랄거야. 시온 힐까지 갔고 들판을 가로질러 돌아왔어. 체임벌린 부인은 언덕을 오르는데 선수야. 그녀를 따라잡는라 난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어. 평지에서는 나도 그녀 못지않게 걸었어.”(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90-91)


제인 오스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산책 장면과 산책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걷기도 하고, 아픈 언니를 만나기 위해 진흙길을 열심히 걷기도 한다. 또는 누군가의 심부름을 전하기 위해 걷기도 하고, 또 아픈 몸을 회복하기 위해 바람을 쐬기 위해 걷기도 하며, 자신의 답답한 속마음과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기 위해 걷기도 한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영지와 대저택 주변의 관목 숲을 거닐면서 풍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걷기도 한다. 걷기는 어떤 도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에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의무적으로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을 띤다. 즉 혼자 걷거나 혼자만의 산책을 선택하는 순간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의한 것이다. 스스로 선택했기에 때로는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기도 한다.


엘리자베스가 장원을 산책하다가 뜻밖에 다아시 씨와 마주치는 일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발생했다. 그년느 여태까지 아무도 오지 않던 곳에 하필 그가 발길을 돌리다니 정말 운이 나쁘다고 느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때 그에게 그 길이 자신이 가장 즐겨 찾는 산책로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258)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걷기와 산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 걷기는 내면화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맨스필드 파크』에서 자연을 매우 사랑하는 패니는 자연의 산물을 잘 관찰하기 위해서 산책을 주로 하며, 산책을 통해 목도하는 장면들을 마음 속 깊이 저장해 두기도 하고 이를 통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도 키워간다. 이런 산책은 무리와 떨어져서 혼자여도 괜찮다. 소풍처럼 가게 된 저택 방문 산책에서 뿔뿔이 흩어지는 인물들 속에서 패니가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걷게 된 경우처럼 말이다.


여성이 마차 대신 혼자 걷기를 택하는 것은 상류계층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간주되었지만, 이는 오랫동안 틀에 박힌 관습과 수동적 자아에 저항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기존 규범과 관습, 사회적 여성상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아픈 언니를 만나기 위해 옷이 더렵혀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비에 젖은 길을 3마일이나 걸어 간다.


"넌 어쩌면 그렇게 바보 같니." 하고 어머니가 소리쳤다. "길이 온통 진흙투성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니! 거기 도착했을 땐 네 꼴이 말이 아닐 거다."

"제인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에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고."

"마차를 쓰게 해달라는 소리냐, 리지야?"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에요. 걷는게 어때서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거리가 문제겠어요. 고작 3마일인데요, 뭐. 정찬 때까지는 돌아올게요."(48)


걸어오는 바람에 드레스가 진흙으로 더렵혀진 엘리자베스를 빙리양을 비난하지만, 빙리 씨와 다아시 씨는 오히려 언니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어 보기 좋았고, 운동으로 더욱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하면서 엘리자베스의 씩씩한 걷기를 칭찬한다.


"3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아니 4마일, 아니 5마일, 아니 도대체 몇 마일이든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오다니, 그것도 발목까지 진흙탕에 빠져가면서, 게다가 혼자서, 진짜로 혼자서 말이야!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야? 독립심이라도 그런 독립심은 정말 끔찍한 오만이야. 촌뜨기라 격식을 무시한다 해도 정말 너무했고."

"언니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주는 거니까 아주 보기 좋지." 빙리가 말했다.(52-53)


혼자 산책이 아닌, 다른 인물들과의 걷기는 자신의 힘든 마음을 위로받거나, 때로는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성과 감성>에서 보여준 메리앤의 걷기는 회복적 걷기라고 칭해도 좋을 것 같다. 사랑했던 인간말종 바람둥이 윌로비의 결혼으로 상심한 메리안은 슬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클리블랜드의 파머씨 댁에 초대받아 엘리너와 메리언은 클리브랜드로 향하게 되는데, 메리언은 그곳의 장원 숲을 돌아다니다가 감기에 걸리게 된다. 조금 회복되자 다시 코티지 집으로 돌아오고 집 주변의 언덕을 산책하면서 서서히 회복해 간다. 이 산책은 메리언의 몸과 마음이 회복됐음을 알리는 산책이었다.


메리앤이 자기 같은 환자도 한번 나가 볼까 할 만큼 날씨가 풀리기까지는, 집에서 이삼 일은 더 지내야 했다. 마침내 부드럽고 온화한 아침이 왔다. 딸도 원할 만하고 또 어머니가 나가도 좋겠다고 판단할 만한 날이었다. 메리앤은 엘리너의 팔에 기대어 피곤하지만 않으면 집 앞의 작은 길로 갈 수 있는데까지 걸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메리앤이 앓고 난 후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던 운동이라 자매는 메리앤의 몸 상태에 맞추어 느린 보조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집을 벗어나 집 뒤의 그 언덕다운 언덕이 다 보이는 곳까지밖에 가지 않았는데, 메리앤이 발을 멈추고 그 언덕을 향해 눈길을 돌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저기, 바로 저기야.” 한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기 튀어나온 둔덕에서...... 저기서 넘어졌지. 그리고 저기서 처음 윌로비를 보았어.”

윌로비라는 말과 더불어 목소리가 가라앉았지만, 바로 회복을 하고서 덧붙였다.

“저 장소를 봐도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서 고마워!”


<노쌩거 사원>에서 여주인공 캐서린은 헨리 틸니 남매와 산책을 약속하지만 존 남매의 방해로 산책을 못하게 됐다가 나중에 드디어 산책을 하게 된다. 이 산책을 계기로 틸니 남매에 대한 캐서린의 애정은 더욱 커진다. 산책은 캐서린에게 헨리 틸니의 인물 됨됨이를 알게 되고, 그와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다 된다. 산책을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경시하면서 약속을 깨트리게 만드는 존 소프에 비해 헨리 틸니는 산책을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캐서린에게 진심을 보여준다.


<에마>에서 하트필드 영지 내에서의 에마의 산책은 나이틀리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둘은 함께 걸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 쪽을 자꾸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

"들어갈 생각이겠지, 아마도?" 그가 말했다.

"아뇨." 여전히 낙심해 있는게 분명한 그의 말투에 에마는 마음을 굳히고 대답했다. "한바퀴 더 돌까 해요. 페리 씨가 아직 안가셨네요."

......

"나의 소중한 에마." 그가 말했다. 이 대화가 어떻게 끝나든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을 거야. 나의 가장 소중한, 가장 사랑하는 에마, 당장 답해줘, '없다'가 그 답이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말해줘." 그녀는 단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하는구나." 그가 마음이 격해진 나머지 큰소리로 외쳤다. "단 한마디도 안하는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더 묻지 않을께."

그 순간 에마는 혼란스러운 나머지 당장이라도 주저 앉을 것 같았다.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아마도 한없이 행복한 이 꿈에서 깨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639)


<설득>에서의 걷기도 상대의 참모습을 확인하고, 두 주인공의 거리가 좁혀지는 좋은 계기가 된다. 앤과 웬트워스, 루이자 일행이 방파제를 걷다가 루이자가 떨어져서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의 산책은 차분하고 고유한 분위기의 산책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의 발생으로 비쳐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위기 속에서 대화와 행동을 통해 앤의 침착성과 성숙함을 확인하면서 결정적으로 웬트워스의 시선이 앤에게 이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방파제 계단의 경사가 많이 가팔랐지만 모두들 불평하지 않고 조심조심 내려갔는데, 루이자만은 예외였다. 웬트워스 대령의 손을 잡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고집했던 것이다......그녀는 의기양양해서 한 번 더 뛰어내리겠다며 곧바로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웬트워스 대령은 내릴 때 충격이 너무 크니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하지만 합리적인 말로 그녀를 설득하려는 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꼭 하고 말거에요." 그가 손을 내밀어쑈지만 그녀가 반 초 정도 앞서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코브 방파제 아래 포장도로 위에 정신을 잃고 널브러졌다!

...

앤은 기운을 차리고 열과 성을 다해 직관이 지시하는 대로 헨리에타를 돌보는 동시에, 틈틈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였다. 메리를 진정시켰고, 찰스의 기운을 북돋웠으며, 웬트워스 대령을 위로했다.

"앤, 앤." 찰스가 외쳤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요? 대관절 어떻게 하면 좋지요?"

웬트워스 대령의 눈길이 그녀를 향했다.

"여관으로 루이자를 데려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맞아요. 조심해서 여관으로 데려가도록 하는게 좋겠어요."

"맞습니다, 맞아요. 여관으로 갑시다." 웬트워스 대령이 비교적 침착한 목소리로, 뭔가 자신이 할 일이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그녀의 말을 반복했다. "내가 데리고 가겠소. 머스그로브, 자네는 다른 분들을 돌보게." (164-167)



이처럼 걷기 자체가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걷는 중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 또한 따뜻하고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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