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국 사회의 작위를 이해하면서 읽기
제인 오스틴 소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와 19세기 초 영국사회의 작위 체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인 오스틴 시대(18세기 후반~19세기 초)는 조지 3세 통치기였다. 이 시대 영국의 작위 체계는 계급 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중요한 제도였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인물들 면면을 보면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상속, 혼인 전략 등은 대부분 이 작위 체계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귀족 작위 체계(Peerage System)를 보면 작위는 상속되고 대개는 남자후계자(primogeniture)에게만 전해졌다. 계급은 공작(Duke), 후작(Marquess), 백작(Earl), 자작(Viscount), 남작(Baron)으로 구분되는데, 공작은 가장 높은 귀족 작위로서 왕실과 가까운 인물에게 수여됐고, 이 지위를 가진 귀족은 매우 드물었다. 후작은 공작 다음의 서열로서 변경을 지키는 귀족이었고, 백작은 중세 이래 오래된 귀족에게 수여됐고, 자작은 17세기 이후에 등장했으며, 남작은 가장 낮은 귀족 작위였고 상원의원 자격이 주어졌다. 이 다섯 계급을 통틀어 Peerage라고 한다. 공작의 아내는 공작부인, 백작의 아내는 백작부인으로 불렸고, 백작 이하 작위 귀족의 아내 또는 딸에게는 성 앞에 레이디를 붙여서 부르곤 했다. 그리고 준귀족 계급인 바로넷(Baronet)과 기사(Knight)가 있었는데, 이들은 상원의원이 아니며 귀족도 아니지만 사회적 특권과 체면을 가진 계층이었다. 바로넷은 세습 가능한 기사 작위이지만 귀족은 아니다. 'Sir' 칭호 사용은 가능했다고 한다. 기사는 공로로 주어지는 일대성 작위여서 세습이 불가능했다. 기사들에게도 'Sir'라는 칭호 사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작위가 없는 상류층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젠트리(gentry) 계급이었다. 그들은 작위는 없지만 토지를 소유하고 교양과 재산을 갖춘 계층으로 제인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이 계급에 속한다. 젠트리 계급은 지주(Squire), 신사(Gentleman), 성직자(Clergy), 장교 계급(Military or Navy Officers) 등으로 구분된다. 지주는 지역의 토지를 가진 상류층이었고, 신사는 상속 자산이 있으며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계층이었다. 성직자는 교회와 귀족의 후원을 받아 중상류 신분으로 존중을 받았고, 장교계급도 상류층 일부도 간주되어 승진 시에 사회적 상승이 가능했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 소설 <설득>의 엘리엇 경과 <맨스필드 파크>의 버트럼 경은 바로넷이었다. 그는 귀족도 아니고 상원의원도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매우 높은 지위에 속했다. <이성과 감성>의 에드워드 페라스는 성직자였고, <설득>의 웬트워스 대령은 해군 장교로 성공한 인물이다.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지주 계급(Gentry)이었고, 캐서린 영부인(Lady Catherine de Bourgh)은 귀족 작위 가문의 일원이었다. <이성과 감성>의 브랜든 대령은 군인으로서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았다.
소설에 묘사된 작위에 대해 좀 더 알아 보자. <오만과 편견>의 캐서린 영부인은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조카 다아시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 간다. 다음의 대화 내용을 보면 베넷씨는 신사이지만 베넷 부인은 그보다 낮은 계급의 여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서린 영부인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엘리자베스에게 수치심을 주려 한다.
"영부인의 조카와 결혼한다고 해서, 제가 그 테두리를 벗어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분은 신사고, 저도 신사의 딸이니까요. 그 점에서 우리는 동등해요."
"사실이야. 넌 신사의 딸이지. 그렇지만 네 어머니는 어땠느냐? 네 외삼촌 외숙모들은 어떻고? 내가 그 사람들 신분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p. 488)
장남이 작위를 상속 받으면 차남은 목사나 군인이 되어(장남도 없고 차남이 없는 경우, 남자인 사촌에게 작위가 상속됨) 지위와 생계를 유지하는데, 이것은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중요한 이야기 배경으로 작용한다. 베넷씨는 딸만 다섯을 두어 딸들에게 재산을 상속시킬 수 없었다. 한정상속이라는 제도를 통해 그의 모든 재산은 콜린스 목사에게 상속됐다. 베넷 부인은 이것을 매우 속상해 하였고, 어떻게 해서든지 엘리자베스를 콜린스와 결혼시키고자 한다. (딸들의 경우에는 결혼만이 재산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에는 샬롯의 아버지 루카스 경이 장사로 상당한 재산을 모아서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윌리엄 루카스 경은 왕년에 메리턴에서 장사를 했었는데, 거기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왕에게 소를 올려 기사 작위에 봉해졌다. 이 영예는 그에게 지나치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듯하다. 자신의 사업과 작은 장터 마을에 있던 거처가 싫어졌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이 모두를 떠나 가족과 함께 메리턴에서 1마일가량 떨어진 저택으로 옮겨 가, 그때부터 그 저택을 루카스 로지라고 명명하고서 그곳에서 자신의 지체를 느긋이 즐기며 일에 매이지 않은 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구는 일에만 전념했다. (28)
<설득>에서 엘리엇 경은 "재미 삼아 읽기 위해 집어드는 책이라고는 준남작 명부뿐"인 사람이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상들의 작위를 들여다보면서 흡족해하는, 과거의 명예에 사로잡힌 허영심 많은 인물이었다.
윌터 엘리엇 경은 철두철미 허영심으로 시작해서 허영심으로 끝나는 사람이었다. 바로 외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으로 말이다. 젊었을 때도 빼어난 미남이었지만 그는 쉿넷에 이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보기 좋은 인물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그만큼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드물 정도였다. 새롭게 작위를 수여받은 귀족의 시종도 월터 경만큼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만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미남이라는 행운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남작이라는 지위의 축복일 터였다. 따라서 이 두가지 행운을 겸비한 윌처 엘리엇 경의 자부심과 스스로에 대한 헌신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9)
<맨스필드 파크>의 버트람 경의 작위도 바로넷이었다. 제인 오스틴 소설 주인공들이 대부분 젠트리 계급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준남작 지위를 가진 인물은 상당한 상위 계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삼십 년쯤 전, 가진 재산이라고는 고작 7000파운드가 전부였던 헌팅던의 마리아 워드 양이 노샘프턴에 위치한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인 토머스 버트럼 경의 마음을 사로 잡고, 그 덕분에 남작 부인 반열에 올라 근사한 저택과 대단한 수입으로 얻어지는 온갖 안락과 위엄을 누리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헌팅던에서는 다들 대단한 혼사라고 입을 모았고, 변호사인 삼촌까지도 이런 혼처라면 조카딸의 지참금이 적어도 3000파운드는 더 있어야 했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9)
<에마>의 우드하우스 씨는 세습 재산과 토지 소유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젠트리 계층이었다. 노동을 하지 않고 하트필드 저택에서 하인들과 함께 귀족에 버금가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Sir' 칭호나 준자작 작위는 없었다. 나이틀리 씨도 돈웰 영지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 젠트리 계층에 속한다.
돈웰은 하트필드보다 컸고 그곳과는 달리 드넓은 영지를 차지한 채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으로 뻗어나가는 형태였다. 수많은 안락한 방들과 한두 개의 근사한 방들이 있엇다. 마땅히 갖춰야 할 것을 모두 갖추었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저택이었다. 오점 없는 혈통과 지력을 갖춘 진정 훌륭한 가문이 살아온 저택으로, 에마의 경외감은 나날이 커져갔다. (535)
<이성과 감성>에서 서식스 지방에 오랫동안 살아온 대시우드 가문 또한 젠트리 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대시우드 가문은 오랫동안 서식스 지방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들의 영지는 광대하였고, 저택은 영지 한가운데의 노어랜드 파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러 세대에 걸쳐 체통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평판이 좋았다. 이 영지의 최근 소유자는 독신으로서 꽤 장수하였고, 생애의 대부분은 누이에게 살림을 맡기면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가 죽기 십 년 전 누이가 먼저 죽는 바람에 집안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누이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조카인 헨리 대시우드 씨의 가족을 집에 불어들였던 것이다. 헨리 대시우드 씨는 노어랜드 영지의 법적 상속자였고 그도 이 조카에게 영지를 물려줄 뜻을 가지고 있었다. 조카 부부와 그 아이들이 같이 살게 되면서 이 노신사는 말년을 아주 편안하게 보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