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3. 첫문장 비교하며 읽기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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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소설은 첫문장을 찬찬히 고찰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의 첫문장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소설의 첫문장은 다음과 같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여보 네더필드 파크에 세 들 사람이 정해졌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어느 날 베넷 부인이 남편에게 물었다.

베넷씨는 못 들었다고 대답했다.

"정해졌답니다." 하고 베넷 부인이 말을 받았다. "롱 부인이 방금 왔다가 다 이야기해 주고 갔다고요."


이웃에 대저택과 큰 영지를 소유하고, 사륜마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독신 남자가 이사온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누구라도 맘이 설렐것이다. 위 글의 베넷부인처럼 말이다. 미혼의 여러 딸들이 있는 베넷부인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딸들 중의 한명이 그 독신 남자와 맺어졌으면 하는 맘을 품었을 것이다. 베넷 부인과 친한 롱 부인은 듣고 싶어하는 소식들을 잘 물어와서 이야기를 전해주니 베넷부인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알다시피 소설에서 롱부인은 사교계의 소문과 마을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의 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롱부인의 조카딸들의 소식을 들으면 베넷부인은 약간의 경쟁의식을 갖기도 하는데, 베넷부인과 롱부인의 대화를 주로 들어보면, 19세기 영국 중산층 사회의 결혼과 사교문화를 엿볼 수 있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에서 부유한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겠지만, 어떤 아내를 만나는 가가 중요하다. 돈이 많으니 누구든지 원하는 여성을 만날 수 있는 암묵적인 인정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진정한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오만함을 내려 놓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아시가 초반에 자신의 오만함과 편견으로 엘리자베스의 사람 됨됨이를 보지 못했던 과오를 범했던 것처럼, 엘리자베스 또한 부유하다고 소문난 다아시가 무도회에서 춤도 청하지 않고 거만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그의 인격을 한번에 폄하하는 과오를 저지른다. 이 소설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잘못된 편견들을 하나씩 깨면서 진실된 모습에 접근해가는 과정이 매우 좋았다. 결혼의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우리 삶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크고 작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 것이 좋을지 그 해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베넷 부인이 다섯 딸들의 결혼을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 이유가 이해가 되는데, 당시 영국의 엔테일(Entail)이라는 상속제도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롱본 저택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먼 친척인 콜린스에게 상속된다. 현재 시각으로 보면 매우 불합리하고 어처구니 없지만, 당시 영국사회는 귀족이나 지주 계층의 재산은 오로지 남성 후손에게만 이어지도록 법으로 묶여있었던 것이다. 이 제도는 재산이 분산되거나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재산이 먼 친척의 장자에게 상속되면 딸들은 그 집을 나와야 했으니, 집에서도 마음 편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속 제도는 <이성과 감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성과 감성>의 첫문장을 살펴보자.


대시우드 가문은 오랫동안 서식스 지방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들의 영지는 광대하였고, 저택은 영지 한가운데의 노어랜드 파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여러 세대에 걸쳐 체통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평판이 좋았다. 이 영지의 최근 소유자는 독신으로서 꽤 장수하였고, 생애의 대부분은 누이에게 살림을 맡기면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가 죽기 십 년 전 누이가 먼저 죽는 바람에 집안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누이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조카인 헨리 대시우드 씨의 가족을 집에 불어들였던 것이다. 헨리 대시우드 씨는 노어랜드 영지의 법적 상속자였고 그도 이 조카에게 영지를 물려줄 뜻을 가지고 있었다. 조카 부부와 그 아이들이 같이 살게 되면서 이 노신사는 말년을 아주 편안하게 보냈다. 이들 모드에 대한 그의 애정은 더욱 커졌다. 헨리 대시우드 씨 부부는 꼭 이득을 바라서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늘 그를 알뜰하게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그는 노년에 얻을 만한 갖은 호강을 다 누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구김살 없는 밝은 모습은 그의 삶에 또 하나의 낙이었다. 헨리 대시우드 씨는 첫 번째 결혼에서 아들 하나를 얻었다. 현재의 부인과는 딸이 셋이었다. 아들은 착실하고 점잖은 청년으로, 성년이 되면서 어머니의 큰 재산 가운데 반을 넘겨받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부자였다.


노신사가 사망하였다. 유서가 낭독되었는데, 유서란 것이 대개 그렇듯이 즐거움 못지않게 실망감도 안겨주었다. 노신사는 부당하지도, 은혜를 모르지도 않았으니 조카에게 영지를 물려주긴 하였다. 그러나 물려주긴 했어도 상속의 가치를 반은 없애버리는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대시우드 씨는 본인이나 아들이 아니라 아내와 딸들을 위해서 영지를 원했던 것인데, 아들과 네살짜리 손자한테 그 재산이 묶여버리는 바람에 그에게 가장 소중하며 부양이 가장 필요했던 아내와 딸들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되었다.


<이성과 감성>의 첫장에서는 대시우드 가문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영국사회의 장자상속이라는 남성중심의 상속 제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한정 상속 제도로 인하여 헨리 대시우드의 아내와 세 딸들(엘리너, 메리앤, 마가렛)은 유산을 제대로 못받아서 앞으로 어렵게 노어랜드 영지를 떠나게 될 것임을 암시해 준다. 물론 엘리너와 메리앤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지만, 만약 그들이 결혼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이 소설은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메리앤이 바랑둥이 윌로비와 맺어진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제인 오스틴의 소설 <맨스필드 파크>의 첫 문장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간다. 그 선택이란 돈이 많고 적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경제력, 인격, 삶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관 등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맨스필드 파크>의 첫문장을 보면,


삼십 년쯤 전, 가진 재산이라고는 고작 7000파운드가 전부였던 헌팅던의 마리아 워드 양이 노샘프턴에 위치한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인 토머스 버트럼 경의 마음을 사로 잡고, 그 덕분에 남작 부인 반열에 올라 근사한 저택과 대단한 수입으로 얻어지는 온갖 안락과 위엄을 누리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헌팅던에서는 다들 대단한 혼사라고 입을 모았고, 변호사인 삼촌까지도 이런 혼처라면 조카딸의 지참금이 적어도 3000파운드는 더 있어야 했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이런 신분 상승으로 덕을 볼 자매가 둘 있었는데, 워드 양과 프랜시스 양의 용모가 마리아 양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부 친지들은 이들 두 자매도 거의 이에 준하는 훌륭한 혼처가 나설 것이라고 주저 없이 예언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재산이 많은 남자가 그들에게 어울리는 아리따운 처자보다 분명 적은 모양이니, 여섯 해가 지난 후 워드 양은 제부의 친구이자 이렇다 할 개인 자산이 없는 노리스 목사와 약혼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고, 프랜시스 양은 이만도 못했다.


세 자매(마리아, 워드, 프랜시스)의 결혼은 매우 달랐다. 마리아는 버트럼 경과 결혼하여 근사한 저택과 큰 수입으로 편안하게 사는 행운을 얻게 됐지만, 워드는 이렇다 할 개인 재산이 없는 노리스 목사와 결혼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 살게 됐다. 프랜시스는 이보다 더 못한 "교육도 재산도 배경도 없는 해병대 대위"를 골라 잡아 결혼했는데, 더군다나 그는 부상으로 제대로 일도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셔대는 일만 한다. 자매들 사이는 소원했었지만, 10년 쯤 뒤에 막내 프라이스 부인은 큰 언니 레이디 버트람에게 부탁하여 약간의 도움을 얻게 되고, 레이디 버트람은 도움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막내 동생의 딸 10살 패니를 데려다 키우기로 한다. 맨스필드 파크는 앞으로 패니에게 수 많은 기회가 펼쳐질 곳이다.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글쓰기, 상류층의 예의 범절 등을 배우면서 패니는 성숙한 자아로 성장해 가게 된다. 엄마와 이모들에게서 보이는, 단순히 남편에게 순종하거나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사색과 글쓰기를 즐겨하며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독립적 자아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패니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성숙한 인격과 달리 <에마>의 에마는 자신의 의견과 판단만이 옳다는 다소 철부지 모습으로 살아간다. <에마>의 첫문장을 보면 그녀가 어떤 성향의 여성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에마 우드하우스는 아름답고 부유한 데다 안락한 가정과 근심 걱정이라고는 모르는 성격을 가졌으니, 가히 사람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복을 한꺼번에 누리는 듯했다. 스물한 살이 다 되도록 고민하거나 짜증을 낼 일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녀는 더없이 다정하고 너그러운 아버지와 두 딸 중 막내로서, 언니가 결혼한 후 매우 이른 나이부터 집안의 안주인 노릇을 해왔다. 어머니는 워낙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서, 어렴풋하게 애정 어린 손길을 기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어머니 못지않게 애정을 쏟는 훌륭한 가정교사가 채워주었다. 우드하우스가 사람들과 16년이라는 세월을 동고동락해온 테일러 양은 가정교사이기 이전에 친구였다. 그녀는 두 딸을 모두 아꼈으나 에마에게는 더욱 각별했다. 둘 사이는 친밀한 자매와도 같았다. 테일러 양은 기질이 온화한 탓에 명목상의 직무였던 가정교사 일을 그만두기 전부터 에마에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했다. 권위의 그림자조차 사라진 지 오래여서 그들은 서로 단짝 친구로 함께 살았고, 에마는 테일러 양의 판단력을 매우 높게 사면서도 대개 자기 판단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사실 에마 같은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생기는 폐해라면 지나치게 제멋대로 굴거나 자기 자신을 다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그녀의 수많은 즐거움을 훼손할 수 있는 단점이었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은 현재로선 거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이를 결코 불운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기 판단에 따라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행동" 하는 에마가 어떤 문제들을 초래하게 될지, 이런 성향은 소설의 복선이 되고도 남는다. "지나치게 제멋대로 굴거나 자기 자신을 과소 과대 평가하는 경향"으로 인해 소설의 독자는 마음 한켠에 의문을 품고 그녀의 말과 행동을 읽어가게 된다. 소설 전체가 하나의 셔레이드(수수께끼)가 되어 남녀 관계애 대한 에마의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인지 추측하고 맞춰보면서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엘튼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해리엇인지 아닌지, 제인 페어팩스는 누구를 맘에 두고 있는지, 프랭크 처칠의 속마음은 무엇인지 등등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마가 제멋대로의 철부지 인물만은 아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뉘우칠 줄도 알고, 아버지와 언니 가족을 챙기는 모습과 장난도 칠줄 아는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을 종종 보져주기에 여주인공으로서의 충분한 매력을 잃지 않는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 여주인공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던 작가이다. <노생거 사원>을 쓸 때는 아예 대 놓고 소설의 여주인공감이 있다고 하면서, 캐서린 몰런드가 왜 여주인공감이 아닌지 첫장부터 자세히 보여준다.


어릴 적의 캐서린 몰런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타고난 여주인공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분과 양친의 면모로나 본인의 용모와 성품으로나 무엇 하나 그럴 만한 데가 없었다. 아버지는 목사로서, 무시를 당하거나 가난하지는 않았으며, 꽤 대접을 받는 편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름이 리처드인 데다가 인물이 워낙 시원찮았다. 그에게는 두 개의 종신 목사 자리 외에도 따로 상상한 재산이 있었다. 또 딸들을 집 안에 꼭 가두어 놓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꽤 양식을 가진 여성으로 성격도 좋았지만 더 두드러진 것은 건강한 체질이었다. 아들을 셋이나 두고도 넷째로 캐서린을 낳게 되자 사람들은 뭔가 변고가 있지 않을까 예상 했다. 그러나 주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자식을 여섯이나 더 낳아서 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 보았고 건강한 삶도 마음껏 누렸다. 멀쩡하게 사지가 다 붙어 있는 자식이 열이나 되는 가족이라면 늘 유복한 가족이라고 불리기 마련일 터. 그러나 몰런드가가 내세울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물이 없었는데 캐서린도 어린 시절 내내 그 점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녀는 비쩍 마른 몸매에다 핏기 없는 누리끼리한 피부에 머리카락조차 새까만 직상모였고 이목구비도 드셌다. 정신도 외모에 걸맞은 정도여서 주인공으로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캐서린 몰런드는 가문이나 외모, 정신세계 면에서 결코 주인공감이 되지 못하는 인물이다. 첫장부터 이렇게 여주인공이 아님을 대놓고 말하지만, 결국 그녀가 어떻게 여주인공으로 성장해 가는지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렇다면 독자로서 우리는 여주인공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고, 제인오스틴이 제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여주인공은 어떤 모습인지 주목하면서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수동적인 여성, 과거의 영광이나 사회적 관습에만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굳건한 자아로 성장해 가는 모습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제인오스틴은 1815년에 <설득>을 쓰기 시작한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설득>의 첫문장을 한번 보자.


셔머싯셔의 켈린치 홀에 사는 월터 엘리엇 경은 재미 삼아 읽기 위해 집어 드는 책이라고는 준남작 명부뿐인 사람이었다. 그 명부를 읽다 보면 한가한 시간이 쉽게 흘러갔고, 불쾌하던 기분이 절로 풀렸다. 비록 제한된 형태이지만, 남아 있는 오래전 조상들의 훌륭한 작위를 곰곰 들여다보자면 존경과 감탄의 마음이 저절로 솟았다. 그리고 일상사에서 느끼던 달갑지 않은 감정들도 자연스레 연민과 경멸로 바뀌었다. 지난 세기에 생성된 작위들로 가득 찬, 끝도 없이 이어지는 책갈피를 넘기다 보면 모든 게 그저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땐 자기 자신의 약력을 읽었다. 자신의 약력을 읽으면서 흥미를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책인 그 명부에서도 항상 자신의 약력이 적힌 갈피를 펼쳐 놓았는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켈린치 홀의 엘리엇

월터 엘리엇은 1760년 3월 1일에 태어나 1784년 7월 15일 글로스터 군의 사우스파크에 사는 향사인 제임스 스티븐슨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으며, 1800년에 사망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1785년 6월 1일생 엘리자베스, 1787년 8월 9일생 앤, 1789년 11월 5일 사산한 아들, 그리고 1791년 11월 20일생 메리를 자녀도 두었다.


이것이 원래 인쇄소에서 인쇄된 내용이었으나, 월터 경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메리에 관한 묘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덧붙임으로써 이 문단의 내용을 향상시켰다. "메리는 1810년 12월 16일 서머싯 군의 어퍼크로스에 사는 향사인 찰스 머스그로브의 아들이자 상속자 찰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자기가 아내를 잃은 날짜도 정확히 끼워 넣었다. 이 문단에 이어 명부에는 엘리엇 집안의 내력이 명예롭고 유서 깊은 가문의 내력과 부상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 가문이 언제 어떻게 체셔에 자리를 잡앗고, 덕데일의 책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그 집안으 인물들이 어떻게 주 장관의 직무를 수행했고, 한 선거구를 대표해서 3기에 걸쳐 의회 의원을 지냈고, 국왕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찰스 2게 즉위 첫해에 준남작의 작위를 받았고, 언제 온갖 메리들과 엘리자베스들과 결혼했는지에 대한 모든 기록이 훌륭한 지질의 12절판 두 쪽가량에 걸쳐 열거되었으며, 그 맨 끝에는 문장과 제면이 기록되었다. "주 영지, 서머싯 주의 켈린치 홀." 그리고 다시 월터 경의 필적으로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추정 상속자, 향사 윌리엄 윌터 엘리엇, 제2대 월터 경의 증손자.


<설득>은 계급과 허영심에 대한 제인오스틴의 풍자를 담은 소설이다. 윌터 엘리엇 경은 "외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 "허영심으로 시작하여 허영심으로 끝나는 사람"이다. 재미삼아 읽기 위해 집어 드는 책은 "준남자 명부"뿐이다. 엘리엇 경은 재정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명예만을 붙들고 살아간다. 이런 허영심에 사로잡혀 변화에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켈린치 홀을 임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시대상을 살펴보면 당시 영국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으로 귀족 계급이 서서히 쇠퇴해가고 있었다. 사회적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과 명예에만 사로잡힐 경우, 어떤 불행이 닥칠지 예고하고 싶지 않았을까. 더불어 이렇게 세대와 가치관이 충돌하는 경우,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중요성을 지니는지 전달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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