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1. 좋아하는 주인공 찾아가며 읽기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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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제인 오스틴 소설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

아시, 혹은 <에마>의 에마를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이 주인공들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주인공이 있는데, 바로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이다. 유복한 시골 목사의 딸로 태어나, 많은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선머슴처럼 성장하는 주인공이다. 센스와 재치가 뛰어난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난 자태를 지닌 여성도 아니다. 그녀는 뭔가 어설픈 구석도 많아서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친숙한 느낌이 든다. 나와의 공통점을 굳이 하나 더 찾는다면, 뭔가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깊이 파고드는 성향을 지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포 소설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고딕 소설 매니아이다.


앨런 부인을 따라 바스로 가게된 캐서린은 이저벨라를 만나게 된다. 이저벨라 소프는 캐서린에게 매우 친근하게 굴지만, 사실은 경박하고 이기적인 품성의 여성이다. 소프 가족 모두가 그렇다. 물론 나중에는 이저벨라의 본성이 드러나고 캐서린은 소프 남매와 거리를 두게 되지만, 그들을 잘 알기 전에는 좋아하는 고딕 소설을 읽고 내용을 공유하면서 서로 친해진다. 그녀들 사이에 공통의 취미가 생긴 것이다. 요즘의 10대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로 친분을 쌓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캐서린, 오늘 아침 내내 뭐 했어? <우돌포>는 좀 읽었어?

"응, 일어나서부터 계속 읽었어. 검은 베일까지 갔단다.""

"정말? 멋져! 오! 검은 베일 뒤에 뭐가 있는지 세상 없어도 얘기하지 않을거야! 너무너무 알고 싶지 않아?"

"아! 그럼, 당연하지. 어떻게 돼? 아니, 말하지 마. 절대 듣지 않을래. 해골이 틀림없다고 생각해. 분명 로렌티나의 해골일 거야. 아이! 이 책 너무 좋아! 이 책 읽으면서 평생을 보내고 싶어. 너하고 만나는 일만 아니었다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손에서 절대 놓지 않았을 거야, 정말이야."

"아이 참, 정말 고맙다, 얘. 그리고 <우돌포>를 끝내고 나면 우리 <이탤리언>를 같이 읽자. 너 주려고 같은 종류의 소설 목록을 열 두 개쯤 뽑아 놓았어."

"그랬어, 정말? 너무 좋아! 그게 뭔데?"

"제목을 바로 읽어 줄게. 여기 내 수첩에 목록이 있어. <울펜바흐의 성>, <클러몬트>, <비밀의 경고>, <검은 숲의 네크로맨서>, <한밤의 종소리>, <라인강의 고아>, <끔찍한 미스터리>야. 이 정도면 꽤 버티겠지."

"응, 한참 버티겠는걸. 그런데 전부 다 무시무시해? 정말 무시무시한 거 맞아?" (46-47)



캐서린이 바스로 간 것은 17세였다고 소설에 나온다. 인쇄술의 발달과 독서 대중의 증가, 순회도서관 등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캐서린과 이저벨라가 소설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10대 젊은이들이 고딕 소설 읽기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가까워지는 것은 <노생거 사원> 플롯 상에서 매우 탄탄한 접근이다. 나중에 캐서린이 틸니 장군의 노생거 사원에서 고딕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니 소설 초반의 고딕소설 이야기는 복선이 아니었을까. 고딕 성이 얼마나 좋으면, 성으로 산책을 간다고만 하면 캐서린은 따라갈 기세이다. 틸니 남매와의 산책 약속을 기다리는 중에 나타난 소프 남매가 성 이야기로 유혹하면서 캐서린을 낚아채고자 한다.


"블레이즈 성이라고요!" 캐서린이 소리쳤다. "그게 뭐죠?"

"잉글랜드에서 제일 멋진 곳입니다. 그걸 보기 위해서라면 50마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정말 성인가요? 고성 말이에요."

"영국 전체에서 가장 오랜된 성이죠."

"책에 나오는 성 같은 건가요?:

"그대롭니다. 완전히 같죠.:

"그런데 지금 정말로....탑도 있고 긴 회랑들도 있나요?"

"수십 개씩이죠."

"그렇담 보고 싶긴 하네요. 그러나 그럴 수가 없어.... 전 못가요."

"못 가다니! 아니, 얘 도대체 왜 그래?"

"난 못 가. 왜냐하면..." 캐서린은 이저벨라가 미소를 띨 것이 겁나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틸니 양과 그 분 오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어. 같이 시골길 산책을 하기로 했거든." (107)



바스의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뭇가지 무늬 모슬린 옷을 꼭 사고야 마는 고집도 있지만, 캐서린은 자신이 예의에 어긋나거나 다른 사람들 보기에 볼썽 사나운 일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자기만의 고집은 있지만, 캐서린은 자신은 설득하기 어려운 아이는 아니라고 앨런 부인에게 말한다.


젊은 여자들이 젊은 남자들의 마차를 뻔질나게 타고 다니다니, 거첨 볼썽사납지 않소? 친척 사이도 아니면서 말이오."

"그래요, 여보. 정말 볼썽사나워요. 눈골셔서 못 보지."

"아주머니, 그렇다면 왜 전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하고 캐서린이 소리쳤다. "그게 상례에 어긋나는 걸 알았더라면 전 소프 씨하고 나가지 않았을 거에요. 제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기를 늘 바랐는데."

"그럼 말해 줘야지. 그 점은 믿어도 좋아. 헤어질 때 몰랜드 부인한테 말한 것처럼 힘 닿는대로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처음 여기 왔을 때 저 나뭇가지 무늬 모슬린 옷은 사지 말라고 했지만 네가 고집을 피워 사지 않았니? 젊은이들이 늘 고분고분할 수만은 없지."

"그렇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리 설득하기 어려운 아이는 아니잖아요." (134)


누군가를 설득할 줄도 알고, 또 누군가의 말이 타당하다면 설득당할 수도 있는 것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 소설 초반에 제인 오스틴은 캐서린을 어리숙하고, 고집스럽고, 다소 고딕 판타지에 빠져 있는 듯 보이는 모습으로 그려내지만, 다양한 경험 속에서 삶의 덕목들을 배우고, 설득의 미덕을 갖춘 인물임을 잊지 않게 한다. 설득을 통해 성장해 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서 캐서린에게 마음이 간다. 반면 소프 남매에게 눈살이 찌푸려 지는 것은 그들이 타인을 제대로 설득할 줄도 모르고, 타인에게 설득되지도 않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캐서린이 현실 감각을 갖고 있음을 내포한다. 무턱대고 자신만의 상상력, 판타지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도 변화해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는 갈등과 역경을 겪으면서 주체적으로 성장해 가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캐서린은 틸니 장군이 아내의 죽음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고 강하게 의심했지만, 헨리 틸니의 설명을 통해 자신의 의심이 공상 수준이었음을 깨닫고 잘못을 뉘우친다.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환성은 이제 끝났다. 캐서린은 완전히 꿈에서 깨어났다. 서너 번 예상이 빗나가면서 자신의 최근 공상이 과도하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생겨나긴 했지만, 이렇게 콩깎지가 벗겨진 것은 짧으나마 헨리의 말 덕분이었다. 그녀는 비참할 정도록 기가 죽었다. 쓰라린 통한의 눈물도 흘렸다. (262)



이제 캐서린은 자신이 그렇게 좋아했던 책과 독서를 비판할 줄 아는 안목도 갖추게 된다. 맹목적으로 책 내용에 의해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도 한다. 앞으로는 늘 "최대한 양식을 발휘하여 판단하고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


바스를 떠나기 오래전부터 무엇에 홀린 듯 열에 들떠 잘못된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모든 것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거기서 심취했던 독서가 큰 영향을 미친 듯 했다. 래드클리프 부인의 작품들은 매력적이지만, 또 그녀를 모방한 작가들의 작품도 매력적이지만, 그것들에는 적어도 잉글랜드 중부 지역의 인간 본성은 고려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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