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자 주인공 비교하며 읽기
<이성과 감성>의 에드워드,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맨스필드 파크>의 에드먼드, <에마>의 나이틀리, <노생거 사원>의 헨리 틸니는 제인오스틴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들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 그들은 어떤 품성을 지닌 남자 주인공들일까? 과연 지금 보기에도 매력을 지닌 주인공들일까? 이 인물들과 하루 데이트를 한다면 어떤 사람과 하루를 보내고 싶을까?
<이성과 감성>의 에드워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루시 스틸은 엘리너에게 자신이 약혼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4년동안 에드워드 페라스와 비밀 약혼상태였다고 고백한다. 에드워드에 대한 연정을 마음속에 키우고 있었던 엘리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니 루시는 에드워드의 형인 로버트 페라스와 결혼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엘리너는 코티지를 방문한 에드워드로부터 그간의 그의 사정을 듣게 되면서 조금은 에드워드를 이해하게 된다. 과연 그의 변명은 모든 오해를 없애줄 만큼 이해 가능한 것일까? 너무 변명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지.
그는 이제 자기의 마음을 엘리너에게 다 털어 놓았다. 온갖 약점들과 온갖 실수들을 고백하였고, 소년 시절 루시한테 처음 연정을 느낀 것에 대해 스물넷다운 의젓한 태도로 이야기하였다.
"저로선 어리석고 하릴없는 끌림이었습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세상을 너무 몰랐던 탓이었고, 할 일이 없었던 까닭이었지요. 열여덟에 프랫 씨의 보호에서 벗어났을 때에 제 모친이 제게 무언가 할만한 일거리를 주셨더라면, 제 생각입니다만, 아니 확신합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저로서는 제가 늘 편안하게 느끼고 늘 환영받는다고 확신했던 롱스테이플에 자주 가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러다 보니 열여덟에서 열아홉 사이에 제 시간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루시는 매우 상냥하게 마음을 써주었습니다. 예쁘기도 했고요.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여자들은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를 할 수도 없었고 아무런 결함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약혼은 어리석었고, 또 나중에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당시로서는, 부자연스럽고 변명의 여지 없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아니었습니다."(480-481)
<오만과 편견> 다아시는 어떤가? 웅장한 펨벌리 저택과 이름다운 영지를 갖고 있는 부유한 다아시야 말로 순정만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인물이다. 4륜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여러 여성들을 매료시키는 멋진 왕자님과 같은 모습 말이다. 그런데 다아시의 첫 등장은 그리 로맨틱하지 않다. 오히려 오만한 태도로 여성들을 평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이런 다아시에게 점차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오만한 다아시조차 자신의 오만함과 편견을 반성하면서 차츰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이 과정에서 제인 오스틴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오만하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워서 상대를 오해하게 되고, 오만함을 내려놓는 순간 상대의 참모습을 제대로 볼줄 알게 된다는 것 말이다. 다아시의 등장을 한번 살펴 보자.
그(다아시)가 들어온 지 5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연 수입이 만 파운드나 된다는 말이 온 방 안에 퍼졌다. 남자들은 그의 인물이 출중하다고 했고, 여자들은 빙리 씨보다 훨씬 미남이라고 내놓고 말했다. (18)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군. 그렇지만 내 구미가 동할 만큼 예쁘지는 않아. 그리고 난 지금 다른 남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들을 우쭐하게 해줄 기분이 아니네. 자넨 돌아가서 파트너의 미소나 즐기라고. 괜히 나하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말이야."
그런데, 엘리자베스의 매력을 느끼게 된 이후로 어떤 여성도 다아시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에게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이 사뭇 웃음이 난다. 오만함을 반성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해가는 모습이 참 순수하고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이라고 느껴진다. 왜 사람들이 제인오스틴의 여러 소설 남자 주인공 중에서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를 좋아하는지 짐작이 간다.
"추측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더 즐거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여쁜 얼굴의 아름다운 두 눈이 베푸는 큰 즐거움에 대해서 명상하고 있었습니다." (41)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267)
다아시 못지 않게 살뜰하게 챙겨주고 배려심이 몸에 밴 <맨스필드 파크>의 에드먼드는 어떤가. 이 소설 이야기를 잠깐 들여다 보자. 10살이 됐을때, 패니는 맨스필드 파크의 버트람 경의 저택에 들어가 살게 된다. 패니에게 버트람 경은 이모부가 된다. 맨스필드 파크의 새로운 환경은 어린 아이에게 낯설기만 하다. 패니는 외롭고 낯선 환경에서 힘들어 하는데, 어느날 다락방 계단에서 우는 패니를 사촌인 에드먼드가 발견해서 위로해 준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우는 것을 알고, 편지 용지를 갖다 주는 것은 물론이고, 패니가 편지쓰는 내내 곁을 지키며 펜 나이프나 철자법 책도 빌려준다. 윌리엄(패니의 오빠)이 우편 요금을 물리지 않도록 이모부(버트람 경)가 요금 면제 서명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반기니짜리 금화를 인장을 찍은 봉투에 넣어주기까지 한다. 에드먼먼드는 패니와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그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윌리엄 오빠는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내가 아주 많이 보고 싶을 거라고요."
"그럼 윌리엄 오빠가 너한테 편지를 보내지 않을까?" "예,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보고 먼저 쓰라고 했어요." "그럼 넌 언제 쓸건데?"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머뭇거리며 '모르겠다, 종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 문제라면, 종이든 뭐든 내가 다 구해 줄께. 그러면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쓸 수 있을 거야. 윌리엄한테 편지를 쓰면 기분이 좀 좋아질까?"
"예, 많이요."
...
패니의 느낌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였지만, 표정과 꾸밈없는 몇 마디 말로도 얼마나 고맙고 기뻐하는지 충분히 전해졌고, 이 일로 사촌 오빠는 패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패니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니가 하는 모든 말에서 따뜻한 마음씨에 바르게 처신하겠다는 소망이 강한 아이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제 처지를 십분 의식하고 있고 주눅이 많이 들어서 그만큼 더 신경을 써 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6-28)
에드먼드에게는 톰이라는 형이 있는데, 톰은 장난기와 낭비벽이 심해서 버트람 경도 반은 포기해서 에드먼드가 성직록을 받게 된다. 누구에게 보이기 부끄러웠는지 버트럼 경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서인도제도 안티과로 큰 아들을 데려간다. 본인의 타고난 성품과 에드먼드와의 친밀한 교류로 인해 패니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굳건한 여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웃이 된 헨리와 메리 크로퍼드 남매와 친분을 쌓으면서 여러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패니의 마음 속에서는 에드먼드를 향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처음에는 메리 크로퍼드를 좋아했던 에드먼드도 메리의 이기심과 추한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사려깊고 신중하며 다정한 패니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패니의 성장기를 담은 소설로서, 독립적이면서도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지혜로운 여성적 자아로 성장하는데 에드먼드가 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내고 있는 <에마>의 나이틀리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소설이다. 아름다운 돈웰 영지에 사는 나이틀리는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 돈웰 영지에서 수확한 사과와 딸기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돈웰을 방문한 일행들과 우드하우스 씨가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판화집들과 메달 카메오 세공품, 산호, 조개껍데기 및 기타 모든 집안 수집품들이 담긴 서람들"을 준비해 놓는 모습이나, 행여 에마가 생각없는 말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을 보면, 제인오스틴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신중하고 배려심이 뛰어난 인물이 아닐까 한다. 신분이 높건 낮건 간에 사람들 사이의 도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처칠부부 집에서 자란 프랭크 처칠이 자신의 친부(웨스턴 씨)를 자주 찾아뵙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틀리는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프랭크 처칠을 비난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이기에 해리엇 스미스의 남편감 찾아주기에 애를 쓰는 에마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틀리는 마음속으로 에마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무례함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행동과 언변이 다소 서투른 사람들, 소외된 이웃들을 대할 때 함부로 말하는 에마의 태도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한다.
"에마, 이제까지 그런 것처럼 또 한 번 당신한테 한마디 해야겠네. 허용했다기보다는 참아 준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행사해야겠소. 당신이 그릇된 행동을 하고 뉘우치지도 않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어떻게 베이츠 양에게 그렇게 무정하게 굴 수가 있지? 성격과 연배의 처지를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무례한 재담을 할 수가 있소? 에마, 당신이 그럴 줄 정말 몰랐어."
에마는 그 일을 떠올리니 얼굴이 붉어지고 후회가 되었지만 웃어넘기려고 했다.
"아니, 그 말을 어떻게 안 하고 넘어가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거에요. 그렇게 나쁜 말도 아니었고, 그분도 딱히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을걸요."
"틀림없이 알아들으셨어. 무슨 뜻인지 다 감지하셨지.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셨는 걸. 그분이 뭐라고 했는지, 얼마나 솔직하고 관대했는지 당신도 들었으면 좋았을 걸. 자기와 함께 하는 게 그렇게 지겨우면서도 당신이나 당신 부친이 언제나 그런 배려를 아끼지 않다니, 참을성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하시더군."
"아!" 에마가 외쳤다. "세상에 다시없는 좋은 분인 것은 저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그분한테는 착한 면과 우스운 면이 아주 유감스럽게 섞여 있다는 점은 당신도 인정해야지요." (543-544)
<노생거 사원>의 헨리 틸니도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노생거 사원의 미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니 누가 관심을 갖지 않을까. 더욱이, 잘생기고 예의를 지키며 배려심을 가진 인물이니 말이다. 몰런드가가 사는 이웃에 앨런 부부가 살고 있는데, 앨런씨는 고질적인 통풍 치료를 위해 요양차 바스에 가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는다. 앨런 부부는 바스 여행에 10대 소녀 캐서린 몰런드를 데려간다. 바스의 무도회 장에서 캐서린은 헨리 틸니 남매를 만나게 되는데, 헨리 틸니는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존 소프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헨리 틸니씨의 첫 등장은 인상적이다. 그가 모슬린에 대해 앨런 부인과 나눈 대화를 보면서 캐서린은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눈치 챘을 것이다. 헨리 틸니는 남자들이 보통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슬린에 대해서도 정보가 밝다. 앨런 부인은 이런 점에 대해 매우 큰 인상을 받았고, 남편인 앨런씨에게 헨리 틸니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앨런씨도 그가 궁금해서 몰래 수소문해서 "틸니 씨가 목사이며 글로스터셔의 명문대가 출신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헨리 틸니를 향한 연정이 캐서린의 마음 속에 차츰 생겨난다.
"모슬린에 대해서 잘 아시나 봐요?"
"아주 잘 압니다. 전 늘 넥타이를 직접 사고 판단력도 훌륭하다고 자부합니다. 제 여동생도 드레스를 선택할 때 제 안목을 대단히 신뢰하고요. 전날 여동생한테 하나 사 주었는데 그걸 본 여성들이 모두 기가 막히게 잘 샀다고 입을 모았답니다. 야드당 5실링을 주고 샀는데, 진짜 인모 모슬린이었지요."
앨런 부인은 그의 뛰어난 재주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남자들은 대개 그런 데는 문외한인데." 하고 그녀가 말했다.
"앨런 씨는 옷을 바꿔 입어도 구별도 하지 못한다니까. 여동생은 참 좋겠어요."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부인."
"몰런드 양의 드레스에 대해허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주 예쁩니다, 부인." 진지하게 살펴보면서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세탁이 잘 될지는 모르겠군요. 올이 풀리지 않을까 싶네요."
...
틸니 씨는 예의 바르게 앨런 부인의 말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고, 그녀는 춤이 다시 시작될 때까지 그를 붙잡고 모슬린 이야기를 계속했다. 캐서린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가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은 소리를 좀 지나치게 받아 주시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29-31)
지금까지 남주들 중에서 누가 가장 매력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