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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으로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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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한강 유원지에서 자주 놀았었다. 아이들은 강바람을 맞으며 컵라면을 먹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뜨거운 물이 들어가서 라면이 말랑말랑해지는 동안, 아이들의 관계도 말랑말랑 유연해졌다. 그 때의 라면 먹는 풍경을 그려 보았다.


누구나 먹는 라면, 흔하디 흔한 인스턴트 음식이지만, 때로는 특별한 음식이 되기도 하고, 특별한 추억을 안겨주기도 한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날씨가 부쩍 추워져서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이런 날 밥을 하지 않아도 되니, 나같은 주부에겐 호강의 시간이다. 라면 봉지만 봐도 고마움이 샘솟는다. 라면 물이 끓는 동안 냄비 앞에 서 있으니, 남편은 파를 꼭 넣어달라고 하고, 막내딸은 계란을 꼭 넣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계란은 통째로 넣어서 노른자나 흰자가 물속에서 흐트러지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마치 수란처럼 말이다. 아들은 계란을 넣되 젓가락으로 휘이 저어달라고 하고, 큰 딸은 치즈를 넣으면 어떨까 제안한다. 라면 먹기도 각자의 취향이 있어서 존중해 주려고 하지만 온 식구가 모인 자리에서는 가끔 일부 구성원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서로 상충되는 조건이 붙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란처럼 계란을 넣는 것과, 계란을 저어서 조금 탁한 국물을 만드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부탁이다. 또한 파를 넣어서 청량감있게 먹겠다는 것과 치즈를 넣어서 고소하고 느끼한 맛으로 먹겠다는 것도 서로 상충한다. 이렇게 다른 의견 속에서 결국은 내 맘대로 끓인다. 가장 평범하고 간단한 라면을 끓인다. 라면 외 부재료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원래 라면을 먹을 때는 조용히 먹는 가족들인데, 이날은 수다의 장이 펼쳐졌다. 언제 어디서 먹었던 라면이 가장 맛있었을까? 남편은 등산하면서 먹는 라면이 최고라고 한다. 산 정상에서 컵라면을 파는 장면을 본적이 있기는 하다. 그때 군침을 삼켰던 적이 있었던지라, 남편 말에 동의의 시선을 보냈다.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수영장에서 먹었던 컵라면이 최고였다고 고백한다. 수영 중간 쉬는 시간에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컵라면을 먹었을 때 행복했다고 덧붙인다. 큰 딸은 학원 마치고 밤에 끓여 먹던 라면이 최고였다고 하고, 막내딸은 학원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수다 떨며 먹는 컵라면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엄마로서 나 또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기억을 떠올려 봤더니, 어린 시절 밭에서 직접 끓여 먹던 라면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추운 겨울날, 무말랭이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무 밭에서 큰 돌맹이 세 개를 구해다가 삼발이 형태로 모양을 잡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놓는다. 주변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땔감으로 썼고, 무를 쑥 뽑아 대충 씻고 칼로 툭툭 넣기도 했다.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던 라면, 빰을 에이는 추운 바람도 이기게 하는 라면이었다. 이때 먹었던 라면은 내 삶에 가장 맛있었던 라면이었으니, 배고픔, 추위, 자연이 반찬이었다.


가족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라면의 질과 성분이 라면 맛을 결정했기 보다는 그때의 상황(날씨가 자연, 활동 등)과 사람의 기분 상태가 맛을 결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에세이에는 공감이 되고 흥미롭게 느껴질 만한 대목들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라면은 “정서의 밑바닥에서 인이 박여” 있는 음식이다.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돌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 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16)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 듬는다.(17)


또 물은 550ml(3컵) 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700ml(4컵) 정도를 끓인다. 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안하게 끓는다. 수영장이 넓어야 헤엄치기 편한 것과 같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화산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이, 또 삽시간에 익는다. 익으면서 망가지지 않는다. (29)


권오삼의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동시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소리내어 먹을수록 맛있다"는 라면, 정말 공감된다.


노란 양은 냄비에다가

파르르 라면 끓인 뒤

냄비 뚜껑 안쪽에다

건더기를 올려 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후후 입김 불며

후루룩후루훅

멱으면 된다.

소리 내어

먹을수록

더 맛있

다.


라면을 그리다가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틈날 때마다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노쌩거 사원』의 주인공에 대한 상상이다. 소설 여주인공 캐서린은 고딕 소설을 즐겨 읽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녀는 틸니 장군의 집을 방문하면서 으스스한 대저택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읽었던 소설의 상상들을 대저택에 투영시키는데, 이런 그녀에게 아주 매콤한 라면을 권하고 싶다. 수많은 무학 작품 중에 왜 제인 오스틴의 캐서린이었을까? 그것은 그녀가 고딕소설 읽기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하면 고딕소설 광팬이다. 무서움이 허기를 부를 때가 있다. 공포는 무엇보다 라면을 부른다. 나 또한 밤에 무서운 이야기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괜히 라면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노쌩거 사원』의 캐서린은 18세기 말의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고 라면이라는 음식을 전혀 모르겠지만, 고딕 소설 취향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라면을 적극 권해주고 싶다. 가끔 그녀와 함께 라면 먹는 상상을 하곤 한다. 두려움과 공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소설의 인물 중에 라면을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상상도 해보았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올리버라면 어떨까? 구빈원에서 생활화면서 한번도 배부르게 먹지 못했던 올리버는 귀리죽을 더 달라고 했다고 국자로 얻어 맞고, 심지어 쫓겨나게 된다. 그때 라면이 있었다면 마음껏 퍼주지 않았을까. 올리버가 가장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먹을 음식이 없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을 것은 당연하지만, 왠지 올리버는 생활이 넉넉해져도 다른 음식보다 라면을 더욱 찾을 사람처럼 느껴진다. 김현 작가의 말처럼 올리버의 정서 밑바닥에 인이 박이게 되지 않을까.


다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니, 창고처럼 쓰인 어두컴컴한 방에 삼양라면 한 박스를 가져다 놓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만일을 대비한 비상식량으로 준비해 놓으셨지만, 항상 일찍 동이 났다. 라면 한 박스가 있으면 뭔가 든든했다. 간식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우리는 야금야금, 바사삭 바사삭 생라면을 먹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끓여 먹을 라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직장맘이이기에 우리집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었을꺼라는 생각과 미안함이 늘 교차한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라면은 인스턴트 식품이고, 그리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도 환하게 웃으며, 맛있게 라면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막내를 보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라면은 고마운 음식이야, 때로는 우리들의 날선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있는것 같아.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끓이게 될 라면, 샤르댕이 그린 저 구리 냄비에 끓여 보면 어떨까?

2017012700235_0.jpg 장 시메옹 샤르댕, ‘주석을 댄 구리 냄비, 후추통, 부추, 달걀 세 개와 찜 냄비’, 1732년, 디트로이트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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