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책을 보다가, 마차 그림과 삽화가 나오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바로 제인오스틴 소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국 관광지의 한 풍경을 그려 보았다. 마차를 타고 가는 두 신사의 뒷모습, 마치 제인오스틴의 인물들이 살아 나올 것 같다.
마차의 관점에서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다. 소설에 묘사된 마차의 종류를 통해 그 사람의 신분, 인성 등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으니, 이는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오만과 편견』의 첫 장에 나타난 베넷 부인의 말을 보면, 마차가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빙리 씨가 베넷가 이웃에 이사온다는 소식을 듣고 베넷 부인은 호들갑을 떨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쎄 여보, 당신도 알아둬야지요. 롱 부인 말로는, 네더필드 파크에 들어오기로 한 사람은 잉글랜드 북부 출신 청년이라는데, 대단한 재산 가래요. 월요일에 사두마차(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 와서 집을 둘러봤는데 아주 만족해하며 바로 모리스 씨와 계약했대요."(P. 10)
마차는 바로 그 사람의 지위와 재산을 말해주는 수단이다. 무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오는 빙리 씨! 이 문장만을 보더라도 빙리 씨는 상당한 재산의 귀족임을 알 수 있다. 지위와 재산을 중요시하는 베넷 부인은 이웃에 새로 이사 오게 되는 빙리가 사두마차로 와서 집을 둘러봤다는 것을 듣고 그가 상당한 재력가의 귀족임을 알게 되고, 그가 자신의 딸들 중에 한 명과 맺어지기를 원한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당시 귀족들의 여가생활 중에 그랜드 투어가 있었다고 한다. 그랜드 투어는 유럽 곳곳을 돌아보며 고대 유적을 살펴보고 그 도시에 머무르면서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활동이다. 보통 귀족들은 가정교사나 시중들 하인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투어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특권처럼 일부러 이를 즐기기도 했다. 귀족들은 오히려 마차를 자신들의 지위와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자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조건으로 생각하면서 매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톰소여의 모험』의 “Tom and the Fence(Tom의 울타리 페인트 칠하기 사건)” 에피소드의 마지막 문단에는 마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4두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기에 부자들의 특권이었으며, 자신의 특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마차를 몰고 다니는 부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There are some rich men in England who drive four-horse passenger coaches twenty or thirty miles in the summer, because the privilege costs them much money. But they would never do this if they were offered wages.
마차로 이런 특권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오만과 편견』의 캐서린 영부인이다. 그녀는 가정교사와 하인들을 데리고 여행 일정에 나서면서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려 한다. 그녀가 엘리자베스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베넷 가족의 딸들이 가정교사 없이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며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는 행동을 자주 보여준다. 빙리의 여동생들도 캐서린 영부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아픈 언니를 만나기 위해 마차를 타지 않고 직접 걸어서 가는 바람에 엘리자베스의 드레스가 더러워지게 됐는데, 빙리의 여동생들은 이를 품위 없는 저속한 행동으로 간주한다. 진실된 감정보다 겉치레와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귀족들은 어떤 마차를 타고 다녔을까. 말의 개수와 바퀴의 숫자에 따라 마차의 종류(말 한 마리가 끄는 이륜마차, 이륜 쌍두마차, 사륜 쌍두마차, 사륜 사두마차)는 달라진다. 당연히 말의 숫자가 많을수록 바퀴의 숫자가 많을수록 마차의 규모가 크기에 그 마차의 가격은 비쌀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고가의 외제차를 떠올리면 되겠다.
『오만과 편견』에서 마차에 대한 특권의식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좀 더 들여다보자. 캐서린 영부인과 그의 딸에 대해 말하는 콜린스의 다음 대화에도 마차 이야기가 나온다.
"(캐서린 드 버그 양은) 하지만 정말 상냥하셔서, 가끔 친절하시게도 작은 말이 모는 쌍두 사륜마차를 타고 저의 보잘것없는 처소에 잠깐씩 들르기도 하지요."(p. 98)
자만심, 권위 의식,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는 콜린스는 자신에게 목사직을 준 캐서린 영부인과 그녀의 딸 드 버그 양이 지체 높은 귀족이자 재산가라는 것과 자신이 그런 귀족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쌍두 사륜마차를 타고 자신을 보러 왔다는 것을 굳이 강조하면서 자신의 위상이 그 정도임을 과시하고자 한다.
"그분(캐서린 영부인)께서는 절대 우리가 집에 올 때 그냥 걸어오도록 놔두지 않으신답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마차를 준비해 주시지요. 당신의 마차 중 하나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마차를 여러 대갖고 계시니까요."(p. 225)
윌리엄 경이 함께 머무는 동안에는 콜린스 씨가 장인을 자신의 이륜마차로 모시고 다니면서 지역을 구경시켜 드리는 데 낮 시간을 바쳤으나, 그가 떠나자 온 가족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p. 239)
응접실에서는 집 앞에 난 좁은 길을 잘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콜린스 씨 덕분에 그 길로 어떤 마차가 지나갔는지, 특히 드 버그 양이 사륜마차를 타고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p. 239)
마차에 대한 이야기는 제인오스틴의 마지막 소설 『설득』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앤의 여동생인 메리가 말 한 마리가 끄는 이륜마차에 타고 싶어 하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와 공간을 막론해서 작은 규모의 보잘것없는 차는 타기 싫고, 이륜 쌍두마차정도 되는, 소위 요즘으로 치면 외제차정도 타줘야 자신의 권위와 품위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있는 것 같다.
『설득』에서 이륜 쌍두마차는 신사의 마차라고 노골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륜 쌍두마차가 나타났다는 말에, 찰스 머스그로그가 자신의 마차와 비교해 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은 정말 큰 웃음을 준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둘 그 교차로에 다다랐을 때 마침 그 마차도 그곳에 도착했다. 그것은 크로프트 제독의 이륜마차였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장거리 산책을 하는 중인지를 알게 된 그들은 친절하게도 가장 피곤한 여성분 한 사람을 마차에 태우고 싶다고 제안했다... 머스그로브 씨 자매는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했고, 메리는 자기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은 것이 불쾌했거나, 아니면 루이자가 엘리엇 집안 특유의 것이라고 부른 그 자존심 때문에 말 한 마리가 끄는 이륜마차의 세 번째 승객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듯했다.(p.136)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네 명의 귀부인을 태운 머스그로브 씨의 사륜마차와 웬트워스 대령을 태운 찰스의 이륜 쌍두마차가 라임의 진입로인 긴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그보다 더 가파른 읍내의 거리에 이른 것은 정오가 훨씬 넘어서였다. (p. 143)
그들이 아침 식사를 거의 끝낼 무렵 마차 소리가 들려와서 일행의 절반 정도가 우르르 창가로 몰려갔다. 라임에 도착한 이후 처음 듣는 마차 소리였을 것이다. "신사의 마차, 이륜 쌍두마차예요. 하지만 뒷마당에서 여관의 정문으로 돌아 나가는 거네요. 누가 이 여관을 떠나는 모양이에요. 상복을 입은 하인이 마차를 모는데요." 이륜 쌍두마차라는 말에 찰스 머스그로브가 자신의 마차와 비교해 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하인이 상복을 입고 있다는 말에 앤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157)
지금도 제인오스틴 생가나 영국의 역사 유적지를 가보면 마차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상품 중의 하나겠지만, 이 풍경이 문학의 배경과 시대상, 문학적 관심을 갖게 만드니 꽤 괜찮은 상품으로 여겨진다.
자동차가 발명되어 이제 마차는 현대의 거리에서는 사라지고 있지만, 역사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기에 마차의 가치는 아직도 유효하다. 마차를 통해 제인 오스틴 소설을 다시 읽어보는 것 얼마나 흥미로운지 모른다. 영문학의 가치와 즐거움을 모르는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제인오스틴을 소개하고 싶다. 음, 먼저 마차를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