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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이 있는 집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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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지붕의 집을 그려 봤다. 박공집처럼 뾰족하기 보다는 경사가 조금 완만한 집이다. 나무와 관목들도 있고, 작은 뜰도 딸려 있는 아담한 집이라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저 지붕 밑 공간은 다락방처럼 보인다.


누구나 그렇듯이, 항상 정원과 다락방이 있는 집을 꿈꿔왔다. 지금은 아파트형 빌라에 살고 있지만, 단 한 평이라도 내가 직접 가꿀 수 있는 정원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늑한 다락방이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은 올래길만 나가면 초록의 자연이 나를 반겨주던 곳이었다. 온갖 종류의 나무와 풀과 꽃이 만발했던 고향은 나의 모든 감수성의 기반이 된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었다. 내 정서의 기반을 만들어 준 고향의 자연이 있었으니 지금도 나는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을 꿈꾼다.


내가 그린 그림 속의 집처럼 뾰족 지붕은 집에 대한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붕이 뾰족하고 경사진 집을 박공집이라고 한다. 보통 비와 눈이 많은 지역에 이런 박공집을 짓는다고 한다. 그런데 박공집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수많은 문학 작품 속 이야기의 소재로 나왔을까? 박공집에 아름다운 정원이 딸려있다면 집으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드넓은 정원이 아니더라도,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와 여러 그루의 관목들과 꽃들을 심을 수 있는 크기의 정원이어도 좋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 에서 읽었던, 아사코가 말한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집"이 가끔 맴도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런 박공집엔 마당과 정원이 어울린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빨강머리 앤』에서 앤은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초록색 박공 집에 반해서, 그 곳에 계속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아원에서 살던 그녀에게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초록색 박공 집은 마치 지상낙원과 다름이 없었다. 숲과 호수, 넓은 들판, 푸르른 나무들이 함께하는 앤의 초록 박공집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집에 대한 꿈을 심어주곤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인기를 끄는데 5할은 초록박공집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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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읽었던 나타니엘 호손의 『일곱박공의 집(The House of Seven Gables)』은 또 어떤 집일까? 이 책은 일곱 개의 박공을 가진 집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일곱 개의 박공을 가진 저택은 핀천가를 뜻하며, 작가는 몰락해가는 귀족 계급을 핀천 가문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곱 박공의 집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세일럼(Salem)이라는 도시에 있는데, 한 때 호손의 사촌인 수잔나 인거솔(Susanna Ingersoll)이 소유했다고 하니, 그 집은 호손이 소설을 쓰는 데 많은 영향을 준 듯 하다. 일곱 박공의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일까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모습의 집이다. 굴뚝이 세 개 솟아 있는 대저택이다. 박공이 일곱 개가 되면 방과 다락방의 개수도 많을 것이고 당연히 대저택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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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공이 있는 집은 2층의 방이나 다락방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락이 있는 집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환상과 모험을 심어주는 공간이기도 해서 어린 아이들이 있는 건축주들은 집을 지을 때 다락 공간을 꼭 넣어서 집을 짓고 싶어한다.


문학 속에서 다락방은 주인공에게 위안과 안식을 주는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상상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감금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주인공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한다.


제인오스틴의 소설 『맨스필드 파크』에서 주인공 패니는 집이 가난하여 부자 이모부 집(버트럼 부부)으로 가서 살게 된다. 그녀는 맨스필드 저택의 다락방 공간을 제공 받아 살아간다. 패니에게 맨스필드 대저택의 다락방은 포츠머스의 초라한 부모님 집과는 대조를 이루는데, 어느 정도 성장한 후 패니가 자신의 포츠머스 친정집을 찾았을 때, 그 초라하고 누추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충격을 받으면서 맨스필드의 다락방이 얼마나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저택의 다락방은 작고 누추한 공간이었지만, 핍박을 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에드먼드에 대한 사랑과 상상을 키워가는 공간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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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의 찰스 디킨스는 또 어떤가? 그는 어릴 적에 계속 이사를 다닐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다락방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위대한 작가로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다. 그가 고백하길 학교 교육보다는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다. 평민 태생의 고아인 핍은 대장장이인 매부과 누나의 집 다락방에서 생활한다. 다락방의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빛이 있는 공간은 신사계층 집안의 해비샴의 대저택과 대조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그 다락방은 신사로서의 핍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가 머물렀던 집의 다락방은 미친 여자, 버사를 감금해 놓는 장소이다, 저 멀리 들리는 그녀의 괴상한 소리는 다락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버사의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독립적 자아를 표현하는 의지로 불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빅토리아 시대 당시 여성들의 억압적 상황과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에 대한 의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락방은 더 이상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집을 재산가치나 재테크의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 다락방은 중요하지 않은 공간일 수 있다. 그들에게 다락방은 그냥 허접한 물건들을 쟁여놓는 짜투리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집이라는 공간은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하는 공간, 혹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내면의 도피처 공간이 돼야 한다고 본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그리 비싼 집이 아니어도 이런 공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아주 작은 집에서도 다락방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 있다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집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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