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만의 공간, 다락방
보통 우리가 아는 다락방은 물건을 쌓아놓거나, 잠시 머무르는 허름한 장소이다. 하지만 문학 속에서 다락방은 주인공에게 위안과 안식을 주는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상상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떤 소설에서는 누군가를 감금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그 주인공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한다.
찰스 디킨스는 어릴 적에 계속 이사를 다닐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다락방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위대한 작가로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다. 그가 고백하길 학교 교육보다는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의 소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다. 평민 태생의 고아인 핍은 대장장이인 매부와 누나의 집 다락방에서 생활한다. 작은 창으로 빛이 스며드는 다락방 공간은 신사 계층 집안의 해비샴의 대저택과 대조를 이룬다. 어떻게 보면 그 다락방은 신사로서의 핍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샬롯 브론테 소설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가 머물렀던 집의 다락방은 미친 여자, 버사를 감금해 놓는 장소이다. 저 멀리 들리는 그녀의 괴상한 소리는 다락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버사의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빅토리아 시대 당시 여성들의 억압적 상황과 여성으로서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에 대한 의지를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락방은 더 이상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제인 오스틴 소설에도 다락방이 나온다. 그것도 <맨스필드 파크>라는 한 소설에서 말이다. 주인공 패니는 집이 가난하여 부자 이모부 집(버트럼 부부)으로 가서 살게 된다. 그녀는 맨스필드 저택의 다락방 공간을 제공 받아 살아간다.
웅장한 저택 역시 아이한테 놀라울지언정 위안은 되지 못했다. 방들은 마음 편히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손 닿는 것마다 깨트릴까봐 겁이 난 아이는 이런저런 끊임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조심조심 걸어다니다가, 수시로 제 방으로 물러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식구들은 이 어린애가 자신의 유별난 행운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고들 했지만, 정작 아이는 밤에 거실에서 물러나면 흐느끼다 잠드는 것으로 나날의 슬픔을 마감했다. (25)
다락방은 어린 소녀에게 매우 낯설고 외롭고 힘든 공간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눈물뿐인 곳이겠지만, 때로는 혼란스런 마음을 정리하는 곳이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위로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다락방 계단에서 울고 있는 패니를 발견한 사촌 오빠 에드먼드는 패니를 달래주고 위로한다.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패니의 취향을 알고는 종이와 문구류 등을 갖다 준다.
"윌리엄 오빠는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했어요. 내가 아주 많이 보고 싶을 거라고요."
"그럼 윌리엄 오빠가 너한테 편지를 보내지 않을까?" "예,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보고 먼저 쓰라고 했어요." "그럼 넌 언제 쓸건데?"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머뭇거리며 '모르겠다, 종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 문제라면, 종이든 뭐든 내가 다 구해 줄께. 그러면 생각날 때마다 편지를 쓸 수 있을 거야. 윌리엄한테 편지를 쓰면 기분이 좀 좋아질까?"
"예, 많이요."
...
패니의 느낌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였지만, 표정과 꾸밈없는 몇 마디 말로도 얼마나 고맙고 기뻐하는지 충분히 전해졌고, 이 일로 사촌 오빠는 패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패니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니가 하는 모든 말에서 따뜻한 마음씨에 바르게 처신하겠다는 소망이 강한 아이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제 처지를 십분 의식하고 있고 주눅이 많이 들어서 그만큼 더 신경을 써 주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6-28)
패니에게 다락방 공간은 차츰 정서적 안전지대가 된다. 그녀에게 소중한 식물이나 책들을 보관하며 내면의 성장을 키우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외부의 간섭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자율적이고 굳건한 자아를 형성해 갔던 곳이다.
다락방이 있는 곳은 다른 방보다 높은 곳에 있는 속성을 감안하면, 그것은 도덕성의 은유도 된다. 이렇게 보면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다락방은 도덕적으로 고결한 인격을 수양하는 곳의 함유도 된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헨리 크로포드와 마리아 버트럼과 달리 제인의 인격은 매우 고결해 보인다.
사실, 패니가 다락방의 가치를 스스로 알게 된 때는 어느 정도 성장 한 후 포츠머스의 친정 집을 방문했을 때이다. 다락방은 맨스필드 대저택에서 가장 초라한 곳이었지만, 정작 포츠머스의 누추한 부모님 집을 찾아갔더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세간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아늑하고 따뜻한 곳에서 살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여러 명의 동생들과 술에 찌들어 사는 아버지와 자식들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어머니가 사는 이 곳은 결코 정서적으로 안정된 곳이 아니다.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조용하게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없는 곳이다. 반면 맨스필드의 다락방은 누추하고 작지만, 안정된 곳이라 생각도 정리하면서 조용히 글을 쓸 수 있고, 힘들고 슬픈 일들도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힘들 때마다 에드먼드가 우는 패니를 위로해 주었으니, 아마도 패니는 이 작고 조용한 곳에서 에드먼드에 대한 사랑과 상상을 키워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