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베넷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 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1장에서 그는 냉소적인 기질에 내성적이면서도 재기가 있고 때로는 변덕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베넷 씨는 재기, 냉소적인 기질, 내성적 성격, 변덕 등이 워낙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사람이라, 23년을 겪어보고도 그의 부인은 남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었다. (12)
베넷 씨는 냉소적이면서도 책을 좋아하지만, 딸들의 교육에 깊이 관여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이 리디아의 방종을 초래하기도 한다. 리디아가 브라이튼에 가려 할 때,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허락하는 이유는 아내가 집착하듯이 요구하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는 리디아가 위컴과 도망가서 잘못된 결혼을 하게 되는 수치스런 일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베넷 씨는 신중하면서도 사려 깊고,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멋있는 남자 주인공들도 눈여겨볼 만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베넷 씨의 언행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젊고 아름다운 데다 마음씨도 착해 보이는 - 젊고 아름다우면 마음씨도 착해 보이게 마련이니 - 한 여인에게 반해 결혼하게 되었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머리도 나쁘고, 마음도 꼭 막혀 있는지라 그녀에 대한 애정은 결혼 초기에 진작 끝나버렸다. 존경, 존중, 신뢰는 영원히 사라졌고, 가정의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들도 모두 깨져 버렸다. 그러나 베넷씨는 누구 탓도 아닌 자신의 경솔함으로 초래된 실망을 보상하기 위해서, 어리석거나 나쁜 짓을 한 결과 불행해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찾는 도락 따위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전원과 책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런 취미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329)
친척인 콜린스 목사와의 대화에서 베넷 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난다. 과연 콜린스가 자신의 딸이 신랑감이 될 만한 사람인지 알아보는데, 몇 마디 말과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으로 콜린스의 가벼움과 허영을 궤뚫어 본 것이다.
"남의 배려를 맞추는 말을 세심하게 하는 건 본인한테 아주 도움이 되는 재주지요. 그런 붙임성 있는 배려가 순발력 덕분인지 미리 심사숙고한 결과인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보통은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얘기합니다. 그리고 더러 누구에게나 잘 맞을 만한, 사소하지만 우아한 칭찬의 말을 생각해서 준비하는 취미가 있긴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미리 준비된 게 아닌 것처럼 말하려고 합니다."
베넷 씨의 기대는 충족되었다. 친척은 기대한 만큼 우스꽝스런 사람이었다. 베넷 씨는 아주 재미있어 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러면서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고, 가끔 엘리자베스에게 눈길을 주는 것 외에는 그런 재미를 나눌 친구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과를 나눌 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그 정도 재미로 충분하다 싶었으므로, 베넷 씨는 선선히 손님을 다시 응접실로 인도했다. 그리고 다과가 끝나자 역시 선선히 그에게 숙녀들을 위해 책을 읽어달라고 청했다. 콜린스 씨는 선뜻 그 청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책 한 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을 보는 순간 물러서며(어느 모로 보나 순회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키티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리디아는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다른 책들이 건네졌고, 약간의 심사숙고 끝에 그는 포다이스의 설교집(젊은 여성을 위한 설교(1766))을 골랐다. 리디아는 그가 책을 펼쳐들자 곧 하품을 했고, 그가 대단히 단조롭다고 엄숙한 목소리로 채 세 쪽을 다 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낭독을 중단시켰다. (99)
순회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주로 베넷 씨의 딸들이 빌린 소설들이었을 것이다. 콜린스가 베넷 씨가 건네 준 순회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보고는 물러서며 자신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한 순간, 아마도 베넷 씨는 콜린스가 자신의 딸의 베필이 될 수 없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딸과 취향이 맞지 않을 것임을 한 눈에 알아 본 것이다. 그러니, 콜린스씨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여 이를 수락해야 한다고 하는 아내의 성화에도 베넷 씨는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딸에게 말한다. 베넷 씨가 얼마나 재치있고 센스있게 말하는지, <오만과 편견>의 여러 장면 중에서 손꼽을 만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콜린스 씨가 네게 청혼한 걸로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 엘리자베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좋다. 그런데 그 청혼을 거절했단 말이지?"
"그랫어요, 아버지."
"좋다. 이제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네 어머니께서는 네가 그 청혼을 수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다. 그렇지 않소, 여보?"
"그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신 저 애를 보지 않겠어요."
"아주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다. 엘리자베스,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다. 네가 콜린스 씨하고 결혼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너를 다시는 안 볼 것이고, 만일 네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면 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 (161)
베넷 씨는 수다스럽고 가벼운 아내와 달리, 책을 좋아하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때로는 과묵하고 생각이 깊다. 이웃에 돈이 많은 빙리 씨가 이사왔으니 어서 가서 인사를 해보라는 아내의 성화에 그가 이사온 것이 자신의 딸들과 무슨 상관이냐며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내의 제안을 무시했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베넷 씨는 빙리 씨를 가장 먼저 예방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실은 진작부터 찾아가 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 두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방문한 날 저녁때까지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경위는 이렇다. 둘째 딸이 모자에 장식을 달고 있는 것을 보다가, 베넷 씨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빙리 씨가 그것을 좋아하면 좋겠구나, 리지야." (13)
베넷 씨는 자신의 딸들을 사랑하지만, 무턱대고 칭찬하거나 감싸돌지는 않는다. 때로는 딸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생각이 깊은 딸은 대놓고 칭찬을 한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리지가 다른 애들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어요?" 제인 반만큼도 예쁘지 않고, 리디아 반만큼도 사근사근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당신은 언제나 리지만 편애하시니."
"걔들한테는 뛰어난 구석이 하나도 없소. 하나같이 다른 집 애들과 매한가지로 어리석고 무식해. 그렇지만 리지는 제 동기들보다 영리한 데가 있거든." 베넷 씨가 대답했다. (12)
그럼에도 소설 말미에는 딸들 모두 사랑하는 애틋한 아버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무뚝뚝한 다아시가 어려웠지만, 딸의 사위가 되자, 친해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박하게 행동했던 사위인 위컴까지 끌어안는 것을 보면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도 떠오른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그(다아시)와 친해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만족했다. 베넷 씨는 곧 그녀에게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난 내 세 사위가 다 대단해 보인다." 하고 그는 말했다. "가장 아끼는 사위는 위컴이 되겠지만, 네 남편도 제인 남편만큼 좋아하게 될 것 같다."(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