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인오스틴과 오이 샌드위치를 같이 먹어요
여름은 오이의 계절이다. 평소 오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다가 문득 제인 오스틴은 오이 샌드위치를 즐겨 먹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은 흔한 오이지만, 당시만 해도 온실에서나 키워 먹을 수 있는 귀한 채소였다고 하니, 제인 오스틴도 맘놓고 먹었을 것 같지는 않다. 소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고자 한다. 티타임이나 다과에서 오이 샌드위치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오만과 편견>의 2부 16장에서 키티와 리디아가 여관에서 언니들을 기다리며 오이 샐러드를 만들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저런 갖고 싶은 물건을 사면서 돈을 헤프게 써버린 리디아가 언니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보면, 오이도 쉽게 구해서 산 것이라기 보다는 욕구 충족을 위해 만들었다는 상상이 든다.
5월 둘째 주, 세 명의 처녀들은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함께 출발하여 하트퍼드셔의 OO읍으로 향했다. 베넷 씨의 마차가 마중 나오기로 되어 있던 여관으로 다가가자, 키티와 리디아아가 이 층의 식당에서 내다보고 있는 것이 얼른 눈에 띄었다. 마부가 시간을 잘 지킨 모양이었다. 이 두 아가씨는 거기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건너편의 모자 가게에 들르기도 하고, 근무 중인 위병을 지켜보기도 하고, 오이 샐러드를 만드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언니들을 맞이하고 나서, 그들은 여관 식당에서 흔히 내놓는 냉육을 올려 놓은 식탁을 의기양양하게 가리키며 한 소리로 말했다. "근사하지 않아? 이런 선물 정말 예상 밖이지?" (306)
오이는 귀족과 상류층 들이 좋아했던 채소였고, 그들은 겨울에도 오이샌드위치를 즐겨 먹기도 했다. 누구나 맘놓고 먹을 수 없던 이유는 주로 온실에서 키워졌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은 상류층의 사람들은 집 주변에 정원을 꾸미고 온실을 만들었는데, 제인 오스틴 소설에도 그런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어, <노생거 사원>의 틸니 장군은 캐서린이 재산 많은 집의 딸이라고 착각하여 자신의 노생거 사원으로 그녀를 초대를 하여 사원 이곳 저곳을 보여준다. 나중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매몰차게 그녀를 내쫓는 수모를 안겨 준다. 틸니 장군이 자신의 권위와 부를 자랑하듯 캐서린에게 사원을 보여주면서 온실에 대한 언급을 하는 장면이 있다. 틸니 장군은 자신의 온실에서는 상당한 양의 파인애플을 수확하고 있음을 자랑하듯이 말한다. 앨런 씨의 온실 규모가 작다는 사실을 캐서린에게 듣고는 경멸하듯이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 소유한 큰 규모의 온실에 맞설 만한 곳은 없다고 의기양향하게 말한다.
장군은 전체 장원의 한 구역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인도했다. 캐서린은 이 채마밭의 엄청난 규모를 듣고 입이 쩍 벌어졌다. 교회 마당과 과수원을 포함한 자기 아버지의 채마밭뿐 아니라 앨런 씨의 채마밭을 전무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큰 규모였다. 담장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를 정도였다. 담장들 사이에서 온실들이 마을을 이루고 교구 사람들이 모두 그 울타리 안에서 일을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장군은 그녀의 놀란 표정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이전에 이에 견줄 만한 채마밭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얼굴에 쓰여 있었기에, 곧 장군은 그것을 말로 표현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겸손한 어조로 이렇게 토로하는 것이었다. 나 자신은 그런 종류의 야심이란 일절 없고 그런데 마음을 쓴다거나 하진 않지만, 채마밭으로는 이 왕국에서 여기에 맞설 만한 곳은 없으리라 믿소이다. 좋아하는 화제가 있다면 바로 그거요, 난 정원을 사랑하지. 먹는 문제는 크게 신경을 안 쓰지만 좋은 과일은 챙겨요. 혹 내가 챙기지 않으면 친구들이나 자식을이 먹으면 되고, 그렇지만 이런 채마밭을 가꾸는 건 보통 일이 아니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늘 최상의 과일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작년에는 파인애플 온실에서 100개밖에 수확을 못했소. 내가 생각하기로 앨런 씨도 틀림없이 나만큼이나 이런 고충을 겪으실 텐데."
"아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앨런 씨는 채마밭에 관심이 없으세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으시는걸요."
득의만면의 미소를 지으면서 장군은 자기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채마밭에 들어갈 때마다 눈에 차지 않는 탓에 결국 짜증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앨런 씨의 온실들은 잘 되던가요?" 그들이 온실로 들어갔을 때 그가 그 특성을 설명하면서 물었다.
"앨런 씨가 소유한 건 작은 온실 하나에요. 앨런 부인이 겨울에 식물들을 들여놓기 위해서 사용했어요. 가끔씩 난로를 피우면서요."
"행복한 분이로군!" 이렇게 말하는 장군의 표정은 흡족해 보였지만 슬쩍 경멸이 스치고 지나갔다. (233-234)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유럽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달 등,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영국은 당시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고, 서인도 제도, 동인도 제도, 아프리카 등의 식민지에서 희귀 식물들을 본국으로 가져와서 재배하는 문화가 유행했다고 한다. <맨스필드 파크>의 버트람 경은 서인도 제도에 자신의 농장을 갖고 있다고 나온다.
토마스 경은 사업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직접 안티과(과테말라 중남부)로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고, 떠날 때 맏아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이 나라에서 맺은 안 좋은 교분에서 떼어 놓으려는 생각에서였다. 두 사람은 열두 달 가까이 집을 비울 요량으로 영국을 떠났다. (49)
그런데 이런 식민지들은 기후가 영국과 다른 온대성, 열대성 기후여서 그 곳에서 갖고 온 식물들은 영국에서 잘 생존하지 못했다. 온실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온실을 지어서 파인애플, 오렌지, 바나나, 야자나무 등을 기르는 귀족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은 온실에서 오이도 재배했다. 아마도 버트럼 경도 안티과에서 돌아올 때 열대성 식물들을 맨스필드 파크로 갖고 오지 않았을까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는다. 더운 날씨에서만 자라는 오이의 특성 때문에 당시 영국에서 오이는 매우 귀한 채소였다. 귀족들은 자신의 온실에서 재배한 오이를 이용하여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의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대접했다고 한다.
영국의 오래된 정원이나 식물원에는 오랑제리(Orangery)라고 하는 식당들, 미술관들이 있는데요, 오랑제리의 기원이 오렌지를 재배했던 온실이라고 한다.영국의 왕립식물원인 큐가든에서는 식물헌터(plant hunter) 등을 보내 식민지로부터 새로운 식물 등을 수집해 오라고 하기도 했다. 식민지로 간 식물헌터들은 원주민들에게 살해를 당하기도 하는 등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식물 수집을 향한 노력은 계속 되었고, 이런 식물 헌터들의 노력으로 인해 영국은 다양한 열대식물들, 홍차의 원료가 되는 차를 재배하는 방법 등을 알아냈다고 한다. 영국의 홍차의 나라가 된 것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