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제인 오스틴은 노예제도를 어떻게 보았을까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유럽국가들이 신대륙에 진출하면서 노예 무역이 본격화 된다. 노예 무역의 가장 큰 무대는 유럽에서는 서인도 제도(쿠바나 자메이카 등이 있는 카리브해 연안)였다. 이 곳은 영국인들의 기호식품이었던 설탕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홍차의 나라인 영국에서 설탕은 홍차에 필요한 감미료로 쓰였으니 수요가 상당했을 것이다. 영국 노예무역의 역사는 1663년 찰스2세 왕이 노예무역 인가증을 발급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서인도제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려면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로 충당했다.
영국은 해외 노예제를 1830년대까지 유지했고 미국보다는 수십년 빨리 폐지했지만 세금으로 노예 몸값을 주인에게 변상하는 방식으로 해방시켰다고 한다. 윌버포스는 반노예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반노예 운동을 입법으로 현실화하려고 했고, 드디어 1807년 그가 염원했던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의회 표결을 통과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은 노예제 폐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살았던 작가이다. 영국은 1811년 노예무역 금지법을 통과시켰고, 그녀가 사망한지 6면 뒤인 1833년에 노예제가 아예 폐지된다. 제인 오스틴 바로 위 오빠인 프란시스(프랭크) 오스틴은 해군 장교로 일하면서 노예무역 금지법 시행 이후 카리브 해역 등에서 불법 노예선 단속에 참여했다고 한다. 또한 제인 오스틴 사후인 1826년 프랭크는 고스포트 지역에서 열린 회의에서 서인도 제도 내 노예제 폐지 청원을 상원에 제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제인은 직접적으로 노예제를 비판하거나 공개적으로 노예제에 대한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장 친하게 지냈던 오빠인 프랭크 오스틴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프랭크가 제인보다 더 직접적이고 활동적인 형태로 노예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동생인 제인 오스틴의 도덕적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 소설 중에서 노예제 문제를 의식하고 있음을 비치고 있는 소설은 <맨스필드 파크>가 유일하다. 10살에 부모님을 떠나 이모 댁에 살게 된 패니는 사촌들과 지내게 되는데, 이모부인 버트람 경은 노예무역을 위해 서인도제도의 안티과로 떠나 오랫동안 집을 비우기도 한다. 버트람 경이 운영하고 있었던 것은 노예들의 노동을 바탕으로 한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토마스 경은 사업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직접 안티과(과테말라 중남부)로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고, 떠날 때 맏아들을 데리고 간 것이다. 이 나라에서 맺은 안 좋은 교분에서 떼어 놓으려는 생각에서였다. 두 사람은 열두 달 가까이 집을 비울 요량으로 영국을 떠났다. (49)
버트람 경이 안티과(Antigua,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돌아왔을 때, 사촌 오빠 에드먼드는 패니에게 이모부에게 좀 더 사근사근 말을 붙이라고 충고해 준다. 패니는 전보다 더 말을 많이 많이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패니는 버트람 경에게 노예무역에 대해 물어보는 등 이모부의 사업을 궁금해 한다. 그런데 친척들이 노예제(slave trade)에 대해 어떤 것도 묻지 않는 점에 패니는 의문을 제기한다.
"네 이모부는 네가 여러모로 아주 맘에 드시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너도 이모부한테 말도 더 붙이고 그랬으면 좋겠다. 너도 저녁자리에서 너무 말이 없는 축이잖아."
"그렇지만 이모부 앞에서도 전보다는 말을 많이 하는걸요. 분명이 그럴거에요. 어젯밤 내가 노예 무역에 대해 여쭤 보는 것 못들었어요?"(287)
버트럼 경은 자신이 없는 동안 집에서 연극 무대가 펼쳐지는 것을 용납 안하거나 가족 내에서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는 등 상당히 계급 의식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가부장주의는 서인도제도에서 이루어지는 식민주의와 깊이 연결된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아내인 레이디 버트럼은 상당히 순종적이면서도 무기력한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세심하게 양육하거나 현명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주로 하는 일은 잠에 취해 있거나 다른 인물들의 의견에 크게 의견을 달리 하지 않고 동조해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톰의 이러한 말과 함께 두 형제는 어머니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레이디 버트럼은 건강과 부와 안락과 평온의 화신 같은 모습으로 소파 한구석에 몸을 파묻은 채 막 선잠에 빠져드는 참이었고, 한편 패니는 부인을 대신해서 까다로운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187)
식민주의와 가부장제의 연결에 대한 언급은 김영희 평론가의 작품 해설에도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패니가 믿고 따르는 버트럼 경이 이처럼 식민주의와 가부장주의에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과연 작가가 이 같은 계급 문제와 식민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가령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러했듯이 이 작품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읽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안티과 사업 외에 이 문제가 직접 거론되기로는 패니가 이모부에게 노예 무역에 대해 여쭤보았다는 짤막한 언급뿐이다. 질문의 취지도 명기된 바 없으나, 노예제 폐지에 대한 공감을 깔고 있는 질문이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하며, 오스틴의 소설 중 식민주의의 문제가 이 정도나마 직접 거론되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693)
소설 마지막에 자녀 교육을 바르게 하지 못한 토마스 경의 통탄어린 심정이 언급되는데, 이것은 자녀 교육을 올바르게 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더불어 노예 무역의 비도덕적 면을 의식한 자신의 삶에 대한 뉘우침이 아닐까 싶다. 노예들을 학대해가면서 재산을 불리고 식민 사업을 이어갔던 자신의 과거 삶에 대한 반성으로 보는 것은 너무 억측일까.
토마스 경, 한 어버이이자, 어버이로서 자신의 행동에 과오가 있었음을 깨달은 가엾은 토마스 경의 괴로움이 가장 오래갔다. 그는 딸의 결혼을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고, 딸의 감정을 알 만큼 알면서도 결혼을 수락한 자신의 잘못이 크며,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은 편의를 위해 올바름을 져버린 행동이자 이기심과 세속적 지혜라는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667)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웅장한 맨스필드 대저택에 대해 언급해 보겠다. 맨드필드 저택은 누구나 반할 만한 아름다운 컨트리 하우스이다. 컨트리 하우스란 1300년대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 귀족들이 지방의 영지에 지었던 대저택을 의미한다. 이 대저택은 식민지 농장에서 거둬들인 수익을 바탕으로 지어진 집일 것이다. 이 가족을 찬찬히 들여다 보자. 서인도제도에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하고 있고, 장남은 낭비벽이 심하고, 레이디 버트람은 딱히 큰 고민이 없어보이고, 도덕관념이 부족한 천방지축인 두 딸이 있는 이 가족을 보면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식민지 농장이 없었다면 가족 경제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장래 목사가 될 둘째 아들 에드먼드 만이 사고가 멀쩡한 인물이다. 제인 오스틴이 노예제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맨스필드 파크라는 컨트리하우스의 배경과 인물들과의 관계,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영국사회에서 노예제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