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17. 산울타리를 찾아서

by 제이오름
햇살 속 길을 걷는 여성.png


등장 인물의 감정, 인물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위해 자신이 경험해 본 자연에 있는 대상들, 풍경을 디테일하게 이용하는 제인 오스틴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 중에 하나가 생울타리(hedge)이다. 당시 영국 시골에 흔히 있었던 산울타리가 뭐 그리 대수롭냐고 할 분도 계시지만, 제인 오스틴이 그것을 글쓰기에 어떻게 활용하고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심리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 안다면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를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바로 산울타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기는 『맨스필드 파크』 집필을 앞둔 시점이었다. 다음은 1813년 1월 29일 커샌드라에게 보낸 편지 구절의 일부이다.


“가능하면 노샘프턴셔가 산울타리의 본거지인지 알아봐 줘. 그러면 난 다시 기뻐할거야.” (167)


제인 오스틴은『설득』을 쓰면서도 한 인물이 울타리 반대편에서 대화를 엿듣는 장면을 구상하고 소설에 반영한다. 소설 속에서 산울타리 장면이 이야기 전개 및 인물 심리를 드러내는데 탁월하게 그려진 것은 바로 『설득』이다. 주인공 앤이 웬트워스 대령과 루이자가 산울타리 너머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몰래 듣게 된 장면이 나온다. 루이자는 자신의 올케가 되는 앤의 동생 메리에 대한 험담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루이자가 웬트워스 대령에게 가까운 생울타리에 있는 견과를 줍자며 함께 멀어져 더 이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자 메리는 기분이 나빠졌다...앤은 그들이 부근 어딘가에 있음 직한 생울타리로 가서 그 아래 마르고 햇볕이 잘 드는 둔덕에 동생을 위해 좋은 자리를 찾아냈다...앤은 지쳐서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내 등 뒤 생울타리 쪽에서 웬트워스 대령과 루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생울타리 중앙의 거칠고 험한 통로를 따라 돌아오고 있는 듯 했다. 목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먼저 루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중인 것 같았다. (130)


메리는...터무니없이 오만해서 가끔 정말 화가 나요. 엘리엇 집안 특유의 도도함이지요. 그런데 그 도도함이 좀 지나쳐요. 우린 모두 찰스가 메리 대신 앤과 결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답니다.(133)


산울타리(hedge)는 단순한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등장 인물의 심리적 장벽이나 감정의 문턱을 의미한다. 산울타리 사이에서 어떤 이들은 은밀한 비밀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산울타리 사이에서 좀처럼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의 심리적 간극이 좁혀지기도 한다. 어떤 비평가는 산울타리 장면이 오스틴 문학에서 '듣는 자와 말하는 자의 간극이 해소되는 핵심 장면'이라고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설득』의 또 다른 산울타리 장면이다. 앤이 윌리엄 경과 산울타리 근처에서 사랑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산울타리 너머에서 웬트워스 대령이 이들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가 엿듣는 내용은, "남자의 사랑은 여자보다 더 빨리 식을 수 있다"는 주장에 앤이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앤은 여자는 더 조용하고, 깊고, 오래 지속되는 사랑을 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 웬트워스 대령은 '산울타리 너머'에서 이 말을 듣고 충격과 감동을 받는다. 이것은 웬트워스의 고백 편지로 이어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당신은 나를 꿰뚫어 봤소."
"나는 반쯤 고통 속에 살았소…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오."


산울타리 모티브는 약간 다른 변형되어 소설에 이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빌 대령과 앤이 단 둘이 몰래 대화를 나누고 웬트워스가 편지를 쓰는 장면이다. 하빌 대령이 앤에게 벤윅 대령의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초상화 표구를 위한 역할을 웬트워스 대령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서 웬트워스는 표구에 관한 일로 편지를 쓰고 있었다. 웬트워스가 편지 쓰는 동안 앤과 하빌 대령은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 상황에서 편지쓰면서 웬트워스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이 장면 자세히 보면 편지 쓰는 일이 일종의 산울타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앤과 하빌 대령은 웬트워스가 편지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대화를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사실 편지를 쓰면서도 웬트워스는 귀를 열고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이 대화를 몰래 들으면서 웬트워스는 앤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인간 중 누구의 감저이든 그 따뜻하고 충실한 심정을 과소평가해서는 절대 안되지요. 만일 제가 진정한 애정과 충실성은 여자만 아는 감정이라고 감히 주장한다면 저는 정말 경멸받아 마땅합니다. 아닙니다. 전 남자도 결혼 생활 중에 모든 위대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남자도 목적만 있다면 모든 중요한 노력을 잉울이고 모든 가정적 관용을 베풀 능력이 있다고요. (340)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산울타리는 도덕적 경계, 사회적 경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때때로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암시와, 인간적 도리 등을 의미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은 『맨스필드 파크』산울타리 장면이다. 『맨스필드 파크』의 산울타리 장면은 러시워스 씨의 부재 중에 마리아와 헨리가 몰래 경계를 넘는 순간으로, 도덕적 경계, 사회적 경계를 침범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소더턴의 러시워스씨의 저택을 방문한 패니 일행은 저택의 정원을 둘러보며 산책한다. 파크 안쪽으로 들어가려다 철문으로 잠긴 것을 보고 러시워스씨가 열쇠를 가지러 급히 집으로 간 사이에, 패니의 사촌언니인 마리아 버트람은 울타리를 건너서 그냥 들어가자고 헨리 크로포드를 부추긴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씨를 기다리지 않고 허락없이 들어가는 무례함을 범하고 있다.

"네, 확실히 햇살이 환하고 파크도 아주 상쾌해 보이네요. 하지만 불행히도 저 철문, 저 해자 울타리는 제게 구속과 고난의 느낌을 주네요. 그 찌르레기가 노래한 것처럼, 나갈 수가 없잖아요."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철문쪽으로 갔다. 그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열쇠를 가지러 간 러시워스 씨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죠!"

"무슨 일이 있어도 열쇠 없이는, 러시워스 씨의 권위와 보호 없이는 나가실 생각이 없겠지요. 그런 게 아니라면 여기 철문 가장자리로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겠는데요. 제가 조금만 도와드리면요. 정말로 좀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라고 마음만 먹으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해서는 안 된다뇨! 무슨 말씀이세요! 저리 나가는 거야 제 마음이고, 그렇게 할래요. 러시워스 씨도 금방 돌아올 거잖아요.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갈 것도 아니고요."

"혹시 그리된다면 프라이스 양이 전해 주실 겁니다. 저 둔덕 근처, 그러니까 둔덕 위 참나무 숲 근처에 있을 거라고요."

패니는 잘못된 행동이라 여겨져 말릴 수밖에 없었다. "다치면 어쩌려고, 언니." 그녀는 외쳤다. "저 담장 못에 찔릴 텐데......옷이 찢어질 수도 있고 자칫하면 해자에 빠질지도 모르잖아. 가지마, 언니."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이 사촌 언니는 이미 반대편으로 무사히 내려서서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패니. 하지만 나도 내 옷도 다 무사하네. 그럼 나중에 봐."

패니는 다시 혼자 남았는데, 기분이 영 좋아지지 않았다. 방금 목격한 일들이 거의 다 마음에 걸렸고, 버트럼 양의 행동에 놀라고 크로퍼드 씨한테 화가 났다. (149)


이어 나타난 마리아의 동생인 줄리아 조차 허락없이 산울타리를 넘어간다. 자신 몰래 언니와 크로포드 씨가 오붓한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못마땅했던 줄리아였다.


그러면서 줄리아는 곧장 울타리를 타고 넘어가더니, 크로퍼드 양과 에드먼드를 못 봤느냐는 패니의 마지막 질문은 들은 척도 안한 채 멀어져 갔다. 이제 패니는 러시워스 씨 얼굴을 볼 걱정에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다른 두 사람 생각마저 뒷전으로 밀릴 정도였다. (150)


이 장면에서 산울타리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한계를 벗어남, 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감 등을 상징하면서 이후 마리아가 보여줄 방종함, 도덕적 탈선, 헨리의 유혹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씨와의 약혼 관계를 무시하고 헨리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도 하고, 스스로 유혹을 자초하기도 한다. 이들의 경계 넘기 행위는 나중에 실제로 불륜이라는 도덕적 탈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제인 오스틴의 산울타리 장면은 어떤 독자들이라도 매우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잠시 상상해 보았다. 가족과 시골길을 산책하면서도, 바스의 휴양지를 산책하면서도 자연 풍경과 사물을 그냥 놓치지 않고 어떻게 흥미있게 이야기 속에 녹여볼까 고심했던 제인 오스틴의 표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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