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제인오스틴은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있는가
일상에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오늘만 해도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엄마가 왜 김밥을 만들었는지 막내딸에게 설득을 해야 했다. 막내딸은 김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의 설득을 받아들이면서 딸은 맛있게 김밥을 먹는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누군가를 잘 설득해야 하고, 또 누군가의 설득을 받아들일 줄도 아는 것이 우리 삶에서 매우 필요한 것임을 아이들과 나누었다.
제인 오스틴 소설 『설득』은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상대를 설득시키고 상대로부터 설득당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독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매우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라임의 코브 방파제에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할 때 제인 오스틴은 보이지 않는 독자를 상상하면서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앤과 웬트워스 대령이다. 앤과 웬트워스 일행이 라임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라임의 코브 방파제에서 루이자(앤의 동생인 메리의 시누이)가 떨어져 다치는 일이 발생하고,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앤의 차분함과 성숙함이 돋보인다. 다른 일행들은 모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데, 앤은 해야 할 일들을 차분하게 지도하면서 위기 상황을 수습한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웬트워스가 이러한 앤의 행동에 깊은 인상을 받고 마음 속에 그녀를 향한 애정을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중요한 모먼트가 되는 사건이기에 제인 오스틴도 사건 묘사에 공을 들인다. 무엇보다 그들이 왜 하필 11월 중순에 여행을 떠났으며, 왜 방파제로 산책을 나가게 됐는지 사건의 유기적 연관성에 대해 독자들을 잘 설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독자로서 다음의 묘사를 통해 제인오스틴의 독자를 설득시키는 필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모두들 라임 주변 전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그의 말에 열렬히 귀를 기울인 후 자신들도 라임에 가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함께 라임에 가기로 계획까지 세웠다. 젊은 축들은 모두 당장이라도 라임으로 달려가고 싶어 했다. 게다가 웬트워스 대령 자신이 다시 라임에 가고 싶어 했다.(라임에 친한 하빌 대령 부부가 머무르고 있었음) 어퍼크로스에서 17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데다, 11월이긴 해도 날씨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142)
여관을 숙소로 잡고 저녁 식사를 주문한 다음 곧장 바다를 향해 산보를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들이 라임에 온 시기는 공적인 오락이나 유흥거리가 제공되는 기간이 끝난 비수기였다. 사교장이나 공연장은 문을 닫았고, 숙박객들도 별로 없었으며, 주민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건축 양식엔 특이한 점이 없었으므로, 외지인들의 눈길을 끈 것은 읍이 자리한 지형의 탁월함과 간선 도로가 바닷물을 향해 서둘러 가는 모습, 제철엔 이동 탈의실 따위로 활기 넘칠 귀여운 작은 만을 에두른 코브 방파제를 향한 산책로, 방파제의 오래된 경관과 새롭게 개수된 아름다운 모습, 읍의 동쪽으로 뻗어 나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벼랑의 선 등이었다. 라임을 둘러싼 자연 경관은 외지인이라면 누구나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143)
11월이었지만 날씨가 나쁜 편이 아니었고, 그들이 사는 어퍼크로스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곳이라 라임에 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웬트워스 대령이 라임에 가고 싶다고 주장한다. 라임에 도착했더니 "공적인 오락이나 유흥거리"가 이미 끝난 비수기이고 공연장도 문을 닫았기에 앤의 일행이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산책을 하기로 결정한다. 또한 이 곳의 건축양식이 별로 특이한 점이 없어서 탁월한 지형과 풍광을 자랑하는 바닷가쪽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제인 오스틴의 독자를 향한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제인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누가 설득을 잘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 초반에는 앤의 가족 일에 큰 영향을 주는 레이디 러셀의 설득을 인상깊게 그리지만, 이 또한 앤의 설득 방식이 더 성숙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적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앤의 설득 방식으로 독자들을 서서히 끌어들이기 위해 레이디 러셀과 앤을 중간중간 대비시키는 방식, 혹은 상대방의 설득을 귀담아 듣는 앤과 상대의 설득을 무시하는 성급한 루이자를 대비시키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다면 레이디 러셀의 설득 방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다음의 헨리에타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의 설득방식은 카리스마와 지성을 통한 설득이다. 마음이 여리거나 지성이 부족한 인물들은 그녀의 설득에 그냥 넘어 간다.
"레이디 러셀께서 어퍼크로스에 살면서 셜리 박사와 가까이 지내시면 정말 좋을 텐데요. 모두들 레이디 러셀만큼 다른 사람을 잘 설득하는 분도 없다고 하거든요! 그분이 설득하시면 누구든 무슨 일이라도 할 거에요!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전 그분이 무서워요. 아주 무서운 분이에요. 정말 똑똑하시니까요. 하지만 대단히 존경스럽기도 해요. 어퍼크로스에도 그런 이웃이 계시면 정말 좋을 텐데요!"(155)
한편 루이자는 어떤 인물일까. 가장 설득을 못하고, 설득을 받아들일 줄도 모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앤의 일행이 방파제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 위험하니 방파제에서 뛰어내리지 말라는 웬트워스 대령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루이자는 이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뛰어내리다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은 이 소설의 인물들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되고, 소설의 주제인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고 듣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확연하게 대비시켜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앤의 깊은 성찰과 성숙함이 돋보이고 그녀의 설득 방식이 주변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앤의 설득에 가장 큰 감명을 받고 앤의 사람됨을 알아본 사람은 바로 웬트워스 대령이다.
그들의 논의가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앤이 가만히 루이자의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열려 있던 응접실 문 너머로 다음과 같은 말이 새어 나오게 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됐네, 머스그로브." 웬트워스 대령이 외쳤다. "자네가 여기 남고 내가 자네의 동생을 부모님 댁으로 모셔다 드리면 되겠군. 하지만 나머지는, 다른 분들은, 만일 한 분이 남아 하빌 대령 부인을 돕는다면, 한 분 이상 남는 것은 무리니까, 머스그로브 부인은 물론 아이들 때문에 돌아가고 싶어 하시겠지. 하지만 만일 앤 양이 머문다면, 앤 양만큼 유능하게 일을 잘 처리할 사람도 없을 것 같아!"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그의 평을 듣고 감정을 추스르느라 잠시 발길을 멈췄다. (171)
다음의 구절은 웬트워스의 생각이지만, 제인 오스틴이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때로는 남의 설득을 받아들일 줄 아는 성격이 단호한 성격만큼이나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가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175)
한편, 윌터 엘리엇 경을 묘사할 때도 제인 오스틴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설득을 하고자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엘리엇 경을 "허영심으로 시작해서 허영심으로 끝나는 사람"이라고 묘사하지만 그 허영심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윌터 엘리엇 경은 철두철미 허영심으로 시작해서 허영심으로 끝나는 사람이었다. 바로 외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으로 말이다. 젊었을 때도 빼어난 미남이었지만 그는 쉰넷에 이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보기 좋은 인물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그만큼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드물 정도였다. (9)
"연세를 생각하면 꽤 멋을 내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울이 얼마나 많던지! 세상에! 사방 어디를 보아도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소피의 도움을 받아서 거울을 모두 다른 방으로 옮겼습니다. 이제 한쪽 구석에 면도용 거울 하나와 큰 거울 하나만 있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큰 거울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합니다."(186)
엘리엇 경 가족은 경제적인 이유로 레이디 러셀의 충고를 받아들여 바스로 이사가기로 결정하는데 그 집에는 크로포드 제독 부부가 이사오게 된다. 이사 온 크로포드 제독의 위 대사는 엘리엇 경이 외모와 지위에 대해 얼마나 허세가 많은 사람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엘리엇 경의 집에 이사 온 크로포드 제독이 집을 둘러보면서 알게 된 엘리엇 경의 이전 삶의 흔적을 묘사한 위 구절을 통해 제인 오스틴이 엘리엇 경을 묘사하면서도 얼마나 독자들을 잘 설득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위 구절은 독자로서 매우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다시 소설의 중심 서사인 앤과 웬트워스 대령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예전에 약혼했다가 깨진 사이였던지라 앤과 웬트워스가 다시 연모의 정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에 있었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하고, 생각의 차이을 좁힐 일들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웬트워스 대령에게는 해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인 하빌 대령이 있었고 그들은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하빌 대령에게는 자신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벤윅 대령과 결혼할 사이였지만 결혼 전에 죽고 만다.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 어느 쪽의 감정이 더 강한가, 그리고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상대를 빨리 잊는가의 문제로 하빌 대령은 앤과 설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장면도 매우 흥미있었다. 하빌 대령은 여자의 감정이 더 강하다고 하면서 여동생을 옹호해주고, 앤은 남자의 감정도 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앤은 여자는 남자를 빨리 잊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편지를 쓰면서 이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웬트워스의 감정이 얼마나 벅찼을까.
"여자는 분명히 남자가 여자를 잊는 것만큼 남자를 빨리 잊지 않아요. 그건 아마도 우리 여자들의 장점이라기 보다 운명일거에요."(336)
위 대화는 앞서 라임의 방파제 사건 만큼이나 웬트워스가 앤에게서 설득을 받게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아예 웬트워스는 두 사건에서 앤의 탁월함을 확인하는 계기다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웬트워스는)코브(방파제)와 하빌 대령의 집에서 그녀(앤)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이가를 확인했다.)(349)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 웬트워스의 마음 속에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앤과 웬트워스의 오해의 찌꺼기들이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둘이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제인 오스틴의 아주 세련된 소설적 장치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후에 앤과 웬트워스의 대화는 감정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
"증명할 수 없지요. 그런 문제(남성과 여성 중 누가 더 변덕스러운가)에 관해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견해의 차이이고, 증명이 불가능한 문제에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성에 관해 편파적인 견해들을 갖고 논의를 시작해서 그 기초 위에 주변에서 일어난 우호적인 예들을 모두 쌓을 테지요. 그런 예는 하나하나가 다 남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고는, 혹은 어떤 면에서는 얘기되어서는 안 될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제시될 수 없을 거고요." (339)
"전 남자도 결혼 생활 중에 모든 위대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남자도 목적만 있다면 모든 중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모든 가정적 관용을 베풀 능력이 있다고요. 다시 말해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이 살아 있고, 또 그 남자를 위해 살고 있다면 말이지요. 제가 여자에 대해서 주장하는 특권은 상대나 희망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오래 사랑하는 특권입니다."(340)
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북받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웬트워스의 편지는 압권이다. 자신은 한번도 앤을 잊은 적이 없다고, 바스에 온 이유는 오직 앤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말이다.
앤은 웬트워스에게 왜 자신이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해서 그와 헤어져야 했는지 고백한다. 당시에는 설득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무였기 때문이고 지금은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는 의무의 문제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앤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이제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혹은 타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고자 하고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잘 읽어내면서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알고 있다.
"제가 한때 설득당했던 게 잘못이었다 해도, 그건 무모한 짓을 부추기는 설득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설득이었다는 걸 기억하셨어야지요. 제가 그 설득을 받아들인 건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의무의 문제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요. 제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건 무모한 짓이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니까요."(353)
앤의 말을 듣는 웬트워스 또한 성장한다. 앤과의 결혼을 막은 적은 과연 레이디 러셀 뿐이었을까? 아니다. 바로 자신이었다고 고백한다. 웬트워스는 문제의 원인이 자신의 자존심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그는 이별의 탓을 외부의 원인으로, 레이디 러셀 때문에, 혹은 레이디 러셀의 설득을 당한 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레이디 러셀 말고도 적이 한명 더 있었던게 아닌가. 그건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오. 내가 1808년에 몇 천 파운드의 재산을 가지고 라코니아호의 선장이 되어 영국에 돌아왔을 때 만일 당신에게 편지를 했다면 당신이 답장을 했을까요? 다시 말해서 그때 다시 나와 약혼을 했을까요?"
"했겠지요!" 그녀가 한 말은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억양은 충분히 단호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이었소. 내 자존심 때문에 다시 청혼할 수가 없었소. 당신을 오해했던 거요. 아니 당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거지..."(357)
가장 제인 오스틴 다운 소설의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설득하려면 이런 식으로 설득해야 하는 거야라고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이런 소설적 장치와 흐름으로 독자를 설득시키는 제인 오스틴의 필력에 충분히 설득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