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창문세는 어떤 세금일까?
창문세(window tax)는 1696년에 제정되어 1851년에 폐지된, 창문 수에 따라 집주인에게 부관된 세금, 일종의 부유세를 의미한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태어나 1817년에 사망했으니, 생애 동안 그녀는 창문세를 직접 경험해 봤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의 소설에도 이 세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창문세가 생기고 폐지되기 까지의 그 내막을 알려면 17세기 영국의 조세제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662년 찰 2세 재위 시절에 법으로 난로세가 부과됐다. 잘사는 집일 수록 난로가 많다고 봤던 것이다. 찰스 2세는 전쟁자금 조달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난로세는 집안에 있는 화덕, 벽난로, 난로 1개당 1실링을 연 2회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었다. 난로세는 세금을 걷기 위해 징수원들이 집안 곳곳을 뒤져야 해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1688년 명예혁명으로 왕이 된 윌리엄과 메리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난로세를 전면 폐지했다. 그러나 혁명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빌린 돈과 스코틀랜드에 남아있는 제임스 2세의 잔당을 없애기 위해 돈이 필요했으니, 해결책으로 창문세를 도입하였다. 징수원들이 굳이 집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창문의 수만 세면 되니, 프라이버시 침해도 없었고 징수도 매우 간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사람들은 창문세를 피하기 위해 하나씩 창문을 없애기 시작한다. 흐릿한 영국 날씨여서 창문이 있어야 그나마 있는 햇살도 집안으로 들일 수 있는데, 세금을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창문을 없애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창문을 막으면서 사람들은 우울증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창문세를 '햇빛과 공기에 물리는 세금'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결국 여러 저항에 부딪혀서 창문세는 1851년에 폐지된다. 빅토리아 재위(1837-1901) 시절까지 이 세금제도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창문세 세금 제도가 실시된다면 사람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햇빛과 공기와 바람에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창문세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는 문학 작품 곳곳에도 반영되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에서도 창문의 갯수가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이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콜린스씨는 캐서린 영부인의 저택이 얼마나 웅장하고 고급스러운지 창문의 숫자에 빗대어 말한다. 그는 캐서린 영부인의 집이 크고 창문이 많기 때문에 창문세가 비쌌을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그가 저택 전면에 있는 창문의 숫자를 하나하나 세고 처음에 그 유리를 끼우는 데 루이스 드 버그 경이 얼마나 큰 돈을 썼는지를 알려주는 것을 듣고도 그다지 감탄하지 않았다.(230)
또한 『맨스필드 파크』에서도 창문세가 언급된다. 버트람 경의 딸인 마리아 버트람과 결혼하는 러시워스 씨 집을 둘러보면서 패니는 러시워스 부인의 설명을 매우 귀담아 듣는다. 소더턴의 웅장한 대저택에 대한 설명, 가문의 옛 시절, 가문의 발흥과 융성, 왕족들의 방문과 충성스러운 업적들에 대해 러시워스 부인이 늘어 놓는 이야기를 매우 관심있게 듣는다. 반면 메리 크로포드나 헨리 크로포드는 매우 심드렁하니 듣는 시늉만 한다. 다음 구절은 소더턴 저택의 창문이 많아서 세금을 많이 내야 함을 풍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창문세가 늘어나고 하녀들 일거리나 만드는 것 말고는 전혀 쓸모가 없어 보이는 많은 방들을 더 둘러본 후 러시워스 부인이 말했다. "이제 예배소로 갈 거에요. 격식대로 하자면 위쪽으로 들어가 위에서 봐야 하겠지만, 오늘은 가까운 분들뿐이니 괜찮으시면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127)
이처럼 제인 오스틴은 귀족들, 혹은 신흥 부자들이 소유한 영국 시골의 저택들을 묘사하면서 당시의 창문세라는 세금 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제인 오스틴이 사회문제를 깊이 비판하면서 창문세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창문세나 창문의 갯수를 통해 대저택을 소유한 부유한 가문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 그들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19세기 말 영국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찰스 디킨스와 큰 대조를 이룬다. 찰스 디킨스는 1850년에 "창문세가 부과된 이후로 공기나 빛은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창문세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실 찰스 디킨스와 같은 비판자들이 많았기에 영국 사회에서 창문세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1851년에 창문세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1851년까지 창문세가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햇빛과 바람과 공기에 세금을 부과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앞으로 부자들에 대한 과세 제도는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