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21. 컨트리댄스를 결혼에 비유하는 헨리와 대화를 한다면?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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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시대에 사교는 주로 무도회나 펌프룸 등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했다. 무도회장에서는 컨트리 댄스(사교춤)가 빠질 수 없었고 대화의 주제에서 춤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다른 소설에도 무도회와 춤 묘사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주목할만한 것은『오만과 편견』과『노생거 사원』에서의 컨트리 댄스 장면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 부인은 이웃에 이사온 부유한 빙리씨가 무도회를 열어 자신의 딸들을 초대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그녀의 딸 엘리자베스는 무도회에서 처음 본 다아시 씨에게서 오만함을 느끼고 한참동안 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짝을 만나지 못해 춤을 추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춤 요청을 하지 않는 다아시 씨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노생거 사원』에서도 캐서린과 소프 남매, 그리고 틸니 남매와의 만남은 무도회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누구와 춤을 추는지, 얼마나 잘 추는지에 있다. 캐서린은 존 소프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헨리 틸니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오빠께서 어찌나 춤을 잘 추시던지요!" 대화 말미에 던진 캐서린의 꾸밈없는 감탄에, 상대는 놀라면서도 흥미를 보였다.

"헨리 말이지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오빠가 춤을 잘 춰요."(91)


"오빠가 전에 당신을 보았을 때는 바스에 겨우 이틀만 머물렀어요. 우리를 위해 숙소를 잡으려고 왔던 거지요."

"그 생각은 전혀 못했네요. 어디에도 안 보이셔서 당연히 가셨나 했죠. 월요일에 그분과 춤을 춘 젊은 여성이 스미스 양이던가요?"

"네, 휴즈 부인이 아는 분이에요."

"그분은 춤을 잘 추어서 참 좋겠어요. 그분이 예쁘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그렇진 않아요."

"오빠분은 펌프 룸에는 안 오시는 것 같던데요?"

"아니요, 가끔 와요.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아버지하고 말을 타고 나갔답니다."(92)


『노생거 사원』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보자. 캐서린 몰런드는 존 소프를 피해 헨리 틸니와 춤추기를 기다린다. 캐서린은 무도회에서 성급하고 예의없고 다소 이기적인 존 소프가 행여 춤 신청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의 시선을 피해다닌다. 헨리 틸니가 캐서린에게 춤을 신청하자마자 존 소프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짜고짜 자신하고 춤 선약이 있었다고 우긴다.


그리고 이런 군중 속에서 틸니 남매하고 만나리라 기대하다니 자기도 참 바보라고 자책하는 찰나, 불현듯 장본인인 틸니 씨가 말을 건네며 다시 춤을 신청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눈을 반짝거리며 기다렸다는 듯이 그 신청을 수락했는지, 얼마나 뛰는 가슴으로 그와 함께 춤을 추러 나섰는지 쉽게 상상이 될 터이다. 정말 존 소프를 가까스로 피하고 나자 홀연 틸니 씨가 나타나 춤을 신청하다니, 마치 일부러 찾아다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서 이런 큰 행복이 또 올까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붐비는 곳을 겨우 빠져나오자마자 존 소프가 뒤에서 끼어들었다. "야, 이거, 몰런드양." 하고 그가 말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나하고 춤을 출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이상하네요. 신청도 하지 않으셨잖아요."

"하느님 맙소사네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당신에게 신청했는데요. 막 다시 신청하려는 참에 돌아보니 사라져 버리셨더라고요! 이게 도대체 무슨 농간인지, 원! 내가 여기 온 것은 오로지 당신하고 춤을 추기 위해서인데. 월요일 이후로 죽 당신과 선약이 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로비에서 외투를 기다리는 동안에 신청한 게 기억나요. 그리고 여기 아는 사람들 모두한테 이 방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하고 춤을 출 거라고 했는데, 당신이 다른 사람하고 춤추는 걸 보면 추궁이 장난이 아닐 겁니다."(96)


컨트리댄스와 결혼생활을 비교하면서 나누는 다음의 헨리 틸니와 캐서린의 대화는 매우 흥미롭다. 헨리는 컨트리댄스를 결혼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춤도 파트너와 맺는 일시적 약속이고 결혼도 배우자와 맺는 장기적 약속이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고 있고 "충실성과 순종"이라는 의무를 강조하면서 남녀의 전통적 역할 구분도 암시하고 있다. 그의 비유는 춤과 결혼 모두 상호간의 규칙과 의무, 제약이 존재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런데 캐서린은 춤과 결혼은 다르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헨리의 '재치 있는 비유'에 다소 순수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헨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남녀 관계의 불평등 구조를 가볍게 풍자하면서 동시에 캐서린의 순진한 생각을 살짝 놀리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위 대화에서 헨리는 진지한 철학자가 아닌 재치 있는 농담으로 대화를 주도하려 하고,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듯 그는 말재간이 뛰어나고 풍자를 즐기고 있다. 엄격한 사회적 규범일지라도 그것을 위트있게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반면 캐서린은 직설적이고 순수해서 헨리가 의도하는 사회적 암시나 비유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헨리 틸니) 생각에 컨트리댄스는 결혼의 상징이라고 봅니다. 충실성과 순종이 양자의 주된 의무니까요. 춤을 추지 않거나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남자들이야 이웃의 파트너나 부인 들과는 아무 볼 일이 없겠지요."

"그렇지만 춤과 결혼은 아주 달라요."

"그 말씀은 둘이 서로 비교될 수 없다는 의미인데."

"단연코 아니지요. 결혼하는 사람들은 헤어지지 않고 같이 가서 가정을 꾸려야겠죠. 춤을 추는 사람들은 삼십분 동안 긴 방 안네서 서로 맞은 편에 서 있기만 하면 되고요."

"결혼 생활과 춤추기를 그렇게 정의하시는군요.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별로 닮은 데가 없어 보이는군요. 확실히 그러나 이런 식으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요? 음, 이런 점은 인정하실 겁니다. 춤이나 결혼이나 선택권은 남자에게 있고, 여자에겐 거절권만 있어요. 춤이나 결혼이나 남자와 여자가 쌍방의 이익을 위해 맺은 약속이지요. 또 일단 맺어지면 깨질 때까지는 서로에게만 속하고요. 두 사람은 각기 상대방이 한눈을 팔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완벽하지 않을까, 다른 누구하고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최상의 이익이지요. 모두 인정하십니까?"

"네, 말씀하시는 그대로네요. 모두 아주 그럴싸해요. 그렇지만 다른 건 다른거죠. 전 그 둘을 같게 볼수도 없고 같은 의무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한 가지 점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남자는 여자를 부양할 책임을 지고 여자는 남자에게 쾌적한 가정을 만들어 줄 책임을 진다는 것, 남자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을 조달하고 여자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춤을 출때는 그 의무가 반대로 바뀌지요. 남자는 상냥하고 고분고분해야하고, 여자는 부채와 라벤더 수를 장만하지요. 의무의 차이가 있어서 둘의 조건이 비교 불능이라는 말씀이신 데 바로 이런뜻 아닌가요?"

"아니,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렇다면 꽤나 당황스러운 데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야 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건 좀 걱정스럽군요. 당신은 책무에서 어떤 유사성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같이 춤을 추는 상태에서 당신의 의무감은 파트너가 바라는 것만큼 그리 엄격하지 않은 게 아닐까? 이를테면 이런 걱정도 드는 거지요. 방금 당신에게 말을 건 그 신사가 다시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른 신사가 말을 건네면, 당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만큼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소프 씨는 제 오빠의 아주 특별한 친구에요. 그분이 말을 걸면 전 다시 받아야 해요. 그분 말고는 이 방에서 제가 아는 젊은 남자분은 세 명도 안돼요."

"그것이 나의 유일한 안전 대책인가요? 이런 슬픈 일이 있나!"

"아니, 그보다 안전한 대책은 없을텐데요. 제가 아무도 모른다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하잖아요. 게다가 전 누구하고도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고요."

"이제 그만하면 됐다 싶은 안전대책을 마련해 주시네요..."(98-99)


위 대화를 남녀 성차별을 나타내는 대화라든지, 결혼은 여성을 구속하는 제도라고 비판하면서 진지하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식으로 읽었다면 재치와 풍자가 매력인 제인 오스틴 특유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헨리 틸니는 남녀 관계의 불평등 구조를 가볍게 풍자하는 동시에, 캐서린의 순진한 생각을 살짝 놀리는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화하고 있다. 만약 샬롯 브론테가 『제인 에어』에서 이런 식의 대화를 넣었다고 한다면 남녀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려고 매우 진지한 문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에는 위트와 풍자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 소설의 핵심은 재치있고 위트 있는 말들, 풍자와 비유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만약 캐서린이 순수하고 순진한 시골 소녀가 아닌 교양과 센스를 갖춘 성숙한 여인이었다면 헨리 틸니와 어떻게 대화를 했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헨리의 풍자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녀가 어떻게 답했을지 상상해 보면서 대화를 다시 구성해 보았다. 다음의 가상의 캐서린의 답변은 헨리의 풍자에 동조하면서도 살짝 비틀어 되갚는 방식이다. 비유의 허점을 장난스럽게 꼬집기도 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역풍자를 시도하고 있다.


"내(헨리 틸니) 생각에 컨트리댄스는 결혼의 상징이라고 봅니다. 충실성과 순종이 양자의 주된 의무니까요. 춤을 추지 않거나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남자들이야 이웃의 파트너나 부인 들과는 아무 볼 일이 없겠지요."

캐서린의 답변(2가지 버전)>

"그렇다면, 틸니 씨, 제가 춤을 그만두면 이혼을 요구하는 셈이 되나요? 하지만 삼십 분 후에 파트너를 바꿀 수 있다면, 결혼보다는 춤이 훨씬 더 안전해 보이네요."

"그 말씀대로라면, 춤을 거절한 남자는 홀아비가 되고, 춤을 너무 좋아하는 남자는 아내가 셋은 되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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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과 춤추기를 그렇게 정의하시는군요. 그런 각도에서 보자면 별로 닮은 데가 없어 보이는군요. 확실히 그러나 이런 식으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요? 음, 이런 점은 인정하실 겁니다. 춤이나 결혼이나 선택권은 남자에게 있고, 여자에겐 거절권만 있어요. 춤이나 결혼이나 남자와 여자가 쌍방의 이익을 위해 맺은 약속이지요. 또 일단 맺어지면 깨질 때까지는 서로에게만 속하고요. 두 사람은 각기 상대방이 한눈을 팔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완벽하지 않을까, 다른 누구하고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최상의 이익이지요. 모두 인정하십니까?"

캐서린의 답변(2가지 버전)>

"저도 인정해요. 춤이나 결혼이나 모두 한눈팔지 말아야 한다는 건 같겠죠. 하지만 무도회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즐거움의 반인데, 결혼에서까지 그런 자유를 잃는다면 꽤 답답할 것 같네요."

"인정하지요.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있네요. 춤은 파트너를 바꾸려면 음악이 멈춰야 하는데, 결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좀처럼 연주를 멈추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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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점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남자는 여자를 부양할 책임을 지고 여자는 남자에게 쾌적한 가정을 만들어 줄 책임을 진다는 것, 남자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것을 조달하고 여자는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춤을 출때는 그 의무가 반대로 바뀌지요. 남자는 상냥하고 고분고분해야하고, 여자는 부채와 라벤더 수를 장만하지요. 의무의 차이가 있어서 둘의 조건이 비교 불능이라는 말씀이신 데 바로 이런뜻 아닌가요?"

캐서린의 답변(2가지 버전)>

"말씀대로라면, 춤에서 남자가 상냥해야 하고 여자가 부채와 라벤더를 챙긴다면, 결혼에서도 가끔은 그 역할을 바꿔야 공평하지 않을까요? 남자가 부채를 들고 여자가 상냥하게 대접받는 식으로요."

"오히려 완벽하게 닮았네요. 춤에서는 여자가 부채로 시원하게 해 주고, 결혼에서는 미소로 시원하게 해 준다니… 결국 남자들은 늘 바람 쐬는 걸 여자에게 의존한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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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꽤나 당황스러운 데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야 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성향이 있다는 건 좀 걱정스럽군요. 당신은 책무에서 어떤 유사성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같이 춤을 추는 상태에서 당신의 의무감은 파트너가 바라는 것만큼 그리 엄격하지 않은 게 아닐까? 이를테면 이런 걱정도 드는 거지요. 방금 당신에게 말을 건 그 신사가 다시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른 신사가 말을 건네면, 당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만큼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캐서린의 답변>

"만약 그런 신사가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틸니 씨가 질투하라는 신호일 테지요. 제가 굳이 신호를 만들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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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의 유일한 안전 대책인가요? 이런 슬픈 일이 있나!"

"아니, 그보다 안전한 대책은 없을텐데요. 제가 아무도 모른다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하잖아요. 게다가 전 누구하고도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고요."

"아니에요. 틸니 씨께 드릴 가장 안전한 대책은 하나예요. 제가 파트너를 바꿀까 걱정되시면, 아예 절대 놓치지 말고 끝까지 제 손을 붙들고 계시는 거죠."


헨리 틸니와 캐서린의 상상의 대화를 만드는 동안 제인 오스틴의 글쓰기를 극찬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의 글들이 생각났다. 글쓰기가 고된 노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워했던 제인 오스틴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에게 브런치스토리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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