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23. 제인 오스틴과 바스 거리를 같이 걸어요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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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자주 묘사되고 있는 사교 모임의 중심지는 바스(Bath)라는 도시였다. 로마인들은 어디를 가나 목욕탕을 지었는데, 그들이 점령한 영국의 이 도시는 온천이 나는 곳이었으니 목용탕 짓기에 더 안성맞춤이었고 그래서 도시 이름을 바스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즉 바스는 고대 로마인들이 발견한 온천 도시로서 휴양의 중심지였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요양과 치료를 위해 바스를 찾았다. 건강이 안좋아지면 의사들은 바스에 가서 요양할 것을 권하기도 하는 등 이런 문화가 제인 오스틴 소설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많은 상류층 귀족들은 휴양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사교를 위해 바스를 찾았다고 한다. 특히 귀부인들은 주름이 잡힌 고대 그리스풍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사교장을 찾아서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고 한다. 제인 오스틴 또한 바스에 살았던 당시에 무도회에 자주 참석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인생에서 손꼽히는 진지한 연애를 경험했다고 하니, 바스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교와 만남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바스는 18세기를 대표하는 도시의 하나로서 근대적 여가 문화가 정착됨에 따라 순회도서관, 각종 수입품 가게, 편의 시설들이 들어섰다. 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사치품과 수입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도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당시 그랜드 투어를 통해 이탈리아, 로마, 그리스 등을 다녀온 귀족들의 취향을 반영하여 가게들도 고급 물품들을 구비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이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구경만해도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이러니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지 않았을까. 가족이나 아는 친척 중에 바스로 같이 가자고 권유하면 이를 거절할 소녀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 몰런드처럼 말이다.


교구 목사직을 은퇴하고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오스틴 가족은 모두 바스로 이사(1801~1806년까지 거주)하게 됐지만 제인 오스틴에게 바스는 좋은 기억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바스에서 제인 오스틴은 아버지 조지 오스틴 목사의 죽음을 겪기도 한다. 그녀에게 바스의 첫인상은 어둡고 삭막한 곳이었다.


화창한 날 본 바스의 첫 풍경은 기대만큼 근사하지 않았어. 비 오는 날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사방이 해를 가리고 있고 킹스다운 꼭대기부터 보이는 전경은 전부 수증기, 어둠, 연기 그리고 혼란뿐이야...바스는 점점 공허해져서 별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검은 거즈로 만든 겉옷이 다른 것들만큼 닳았어.(84)


바스는 화려한 복장의 귀족들이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시끌법썩한 곳이었으니 조용한 시골 소녀 제인 오스틴에게는 적응이 안됐을 것이고, 때로는 귀족들의 부유함이 질투도 나고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어린 여성이었으니 모슬린 가게에서 화려하고 멋진 모슬린과 보니를 얼마나 많이 사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이 도시는 제인 오스틴에게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인상적인 것들이 넘쳐났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설득』이나 『노생거 사원』의 중심 이야기는 주로 바스를 배경으로 하거나 바스에서 일어난 일들로 구성됐다. 사후 발표된 『왓슨 가족』도 바스에서 머물렀던 당시 쓰여진 소설이다.


『노생거 사원』에서 몰런드가가 사는 윌트셔의 마을 풀러턴의 주변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앨런 씨는 의사에게서 고질적인 통풍치료를 위해 요양차 바스에 가라는 권고를 받는다. 앨런 부인은 캐서린 몰런드를 에뻐하여 그녀를 바스에 같이 데려가기로 한다. 앨런 부인과 캐서린은 바스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참석하여 매력적인 신사가 다가와서 춤을 권하지 않을지 설레면서 기다리기도 하고, 바스의 순회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한다. 사람들이 휴양차 몰려드는 곳이었으니 순회도서관이 인기를 끌었고, 캐서린은 그곳에서 만난 이자벨라와 함께 그들의 취향인 고딕소설을 빌려서 읽고 그 내용을 공유한다. 캐서린이 말한 것 처럼 바스에서 싫증을 느낄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바스에 도착했다. 캐서린은 기쁜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이 도시의 멋지고 놀라운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이어 마차가 호텔로 가는 길 내내, 그녀의 눈길은 이곳저곳 모든 곳에 미쳤다. 행복하자고 온 곳에서 그녀는 이미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18)


"오! 그래요. 앨런 부인이든 다른 누구하고든 이야깃거리가 절대 부족하지 않겠네요. 다시 집에 가면 바스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테지요. 바스가 너무너무 좋으니까요. 아빠, 엄마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여기에 같이 있으면 정말 행복할 텐데! 큰 오빠 제임스가 와서 정말 기뻐요! 우리가 여기서 막 친해졌던 바로 그 가족이 이미 오빠의 친한 친구들이라서 더욱 기쁘고요, 오! 누가 대체 바스에 싫증을 낼 수 있겠어요?"


"당신처럼 이곳에서 온갖 신선한 감흥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죠. 그러나 바스를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들 대다수에게는 아빠니 엄마니 오빠니 친한 친구들이니 모두 벌써 한물간 일인 거죠. 이들에게는 무도회와 연극과 날마다 다니는 관광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도 다 지나가 버린 겁니다." (101)


『설득』에서 월터 엘리엇 경은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 켈린치 홀에 더이상 살 수가 없어서 경비 절약을 위해 이사를 결정한다. 엘리엇 경 가족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바로 바스였다. 그런데 왜 바스였을까. 엘리엇 경 가족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레이디 러셀의 집과 그리 멀지 않아서 그녀와 자주 만날 수 있기도 하고, 런던으로 가면 월터 경의 소비 습관상 지출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켈린치 홀 지역의 다른 집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굴욕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바스로 최종 결정이 됐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가족들의 건강과 사교를 위해 바스가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요양과 사교의 도시, 바스였으니 말이다.


런던과 바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지역의 다른 집이라는 세가지 가능성이 논의되었다. 앤은 세 번째 안이 채택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인근의 자그마한 집에 산다면 레이디 러셀도 지금처럼 자주 뵐 수 있고, 메리와도 지근거리에서 오갈 수 있으며, 가끔씩 켈린치 홀의 잔디밭과 정원을 보는 낙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결론은 앤이 바라는 바와 반대로 났다. 그녀가 바스를 좋아하지 않으며 자신과는 잘 안 맞는 곳이라고 여겼으니, 그녀가 바스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월터 경은 처음에는 런던에서 더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셰퍼드 씨는 월터 경이 런던에 살 경우 그의 소비를 신뢰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바스를 택하도록 유도했다. 월터 경과 같은 곤란에 처한 신사분에게는 바스가 런던보다 훨씬 안전한 장소다. 바스에서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도 중요한 인물로 행세할 수 있다. 또 런던에 비해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이 있다. 켈린치 홀에서 5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아 거리상 훨씬 편리하고 레이디 러셀이 겨울마다 일정 기간 그곳에 가서 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월터 경과 엘리자베스는 바스로 이사를 하면 체면도 잃지 않고 재미있게 지낼 수도 있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으 이사 장소로 처음부터 바스를 선호했던 레이디 러셀의 마음에 드는 결과이기도 했다.

레이디 러셀은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자신이 총애하는 앤의 소망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월터 경에게 당신이 살던 마을 인근의 작은 집으로 줄여서 이사를 가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당장 앤부터도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굴욕감을 느낄 거라고 보았다. 월터 경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너무나 끔찍한 해결책이었다. 레이디 러셀은 앤이 바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편견이나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삼년 동안 바스에서 기숙 학교에 다녔고 그 뒤로도 딱 한번 레이디 러셀과 거기서 겨울을 보낸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당시 그녀의 건강이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요컨대 레이디 러셀은 바스를 좋아했고, 따라서 그들 모두의 필요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 장소라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앤의 건강으로 말하자면 더운 계절에는 켈런치 로지에서 자기와 함께 지내면 되니 건강을 상할 염려는 없다고, 그리고 실제로 바스로 이사를 하면 앤의 건강이나 기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고 다른 사람들과도 별로 어울리지 않았으니 기분이 저조할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며 지내면 그녀의 기분도 좋아질 것이다. 그녀가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24-25)


그런데 제인 오스틴이 직접 언급한 것처럼 바스는 삭막함을 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공장지대에서 나온 연기와 수증기로 가득찬 도시, 날씨가 흐리면 그 광경은 더욱 울적하고 공허함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요양과 휴양하는 동안 잠시 머물렀던 이들에게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시적인 관계였을테니, 그 만남은 진지하지 않고 피상적인 속성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 『에마』에서 이 부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에마』에서 프랭트 처칠은 엘튼 씨 부부가 바스에서 몇 주 정도 사귀고 결혼한 사실을 드러내며 그들은 서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채 결혼했다는 것을 비판한다.


그들(엘튼 씨 부부)이 안 들리는 데까지 가자마자 프랭크 처칠이 말했다. "어쩌면 저렇게 잘 어울리지요! 참 운도 좋네요. 오로지 공공장소에서만 사귄 채 결혼한 사람들인데 말예요! 알고 지낸 것도 바스에서 몇 주 정도라던데요! 운이 별나게 좋네요! 배스나 그런 공공장소에서는 사람의 성격을 제대로 알기가 절대 불가능하잖아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요. 바로 자기 집에서 평소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있는 평소 모습을 보아야 어떤 여성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지요. 그렇지 못할 때는 모두 짐작과 운일 뿐이고..."(540)


그러나, 그녀의 소설 대부분에서 바스가 나오고 있으니 제인 오스틴에게 바스는 매우 큰 영감을 준 도시라 할 수 있다. 바스가 소설 속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건, 부정적인 영향을 주건, 많은 여행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시골의 저택과 산책길, 목사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봐야 매일 매일 크게 다르지 않은 지루한 일상이었으니,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갈등 사건이 일어나거나 흥미있는 사건을 전개시키기에는 번잡한 도시로의 이동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더군다가 바스는 제인 오스틴 또한 가족들과 몇년 간 살았던 곳이기에 작가가 이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스라는 도시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그녀의 소설 반쯤은 다 아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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