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누가 더 최악의 결혼인가요?
20대 나이에 『오만과 편견』을 읽었을 때, 나는 샬럿 루카스의 선택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녀가 콜린스 목사와 결혼을 결정했을 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을 억누르고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가정에 충실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일까 의문을 느끼게 했다. 아무리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고 해서도 말이다. 거기다가 빙리 씨나 다아시 씨 정도는 못되도, 그 비슷한 수준의 이성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집세고 편협적이며 가부장적인 콜린스 목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엘리자베스가 보기에도 샬럿이 너무 아깝다. 엘리자베스는 "콜린스 씨의 아내 샬럿," 그것은 창피스러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에 대한 샬럿의 견해가 자기와 꼭 같지만은 않다는 건 그녀도 언제나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녀가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희생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리고 친구가 창피스러운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건 샬럿이 자기 스스로 선택한 운면 속에서 웬만큼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181)
그런데 나이들어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이 서서히 달라짐을 느꼈다. 내가 그동안 샬럿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절한 나이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력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수동적으로 이끌려 가면서 결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이런 선택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매우 만족해 한다. 샬럿은 무엇보다 결혼을 통해 여성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녀의 결혼 후, 엘리자베스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엘리자베스는 샬럿이 꾸민 집안 내부 가구의 배치 및 방의 구조 등을 자세히 살피는데, 샬럿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샬럿의 현명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샬럿은 집 안에서 남편과의 적절한 동선거리를 생각하며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고자 노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샬럿을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숙녀들이 지내는 방은 뒤쪽에 있었다. 처음에 엘리자베스는 샬럿이 평소 때 사용하는 방으로 식당을 겸한 넓은 응접실을 택하지 않은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방은 크기도 더 넓고 전망도 더 좋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곧 그녀의 그런 결정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콜린스 씨의 방과 똑같이 쾌적한 방에서 지낸다면 콜린스 씨가 자기 방에서 훨씬 더 적은 시간을 보냈을 건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배치는 살럿의 현명함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239)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 오스틴과 같은 시기에 살았다면, 그녀 또한 샬럿에 대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샬럿이 결혼을 통해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삶을 선택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 점은 매우 현명하다고.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얼마나 버지니아 울프가 강조했던가. 결국 샬럿은 결혼을 통해 자기만의 거실이 생겼으니 반은 성공한 셈이다.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주체적 결정을 잃지 않은 그녀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샬럿과 다르게 리디아 베넷과 위컴의 결혼은 더욱 더 충격적이다. 누가 봐도 금새 파탄날 것 같은 위태로운 만남이다. 리디아와 위컴 모두 허영심 많고, 경제적 관념 없이 일단 돈이 생기면 쓰고 보는 낭비벽이 있다. 베넷 부인은 딸의 이런 성향을 알면서도 제대로 훈육하지도 못하고, 오냐오냐 감싸돌기만 한다. 리디아와 위컴은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빽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서인지 모든 일에 무대책이고, 심지어 무작정 사랑의 도피를 떠나 가족들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아내가 남편의 극단적인 면모를 바로잡아 주거나, 남편이 아내의 무절제함, 허영심을 조절해 줘야 하는데, 이들 모두 조절력이 없는 사람들이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아시씨의 경제적 도움으로 그들의 결혼은 파국에 이르지는 않는다.
『이성과 감성』에서 루시 스틸과 로버트 페라스의 결혼도 마찬가지다. 루시 스틸과 로버트 페라스의 관계는 순전히 돈벌이에 의존한 결혼이다. 루시 스틸은 에드워드 페라스와 사귀었지만 그가 상속권이 박탈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버리고 더 부유한 그의 동생 로버트 페라스를 택한다. 그녀는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가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소위 말하면 두 인물 모두 자기중심적이고 저속하며 허영심에 가득차 있다. 루시의 모습은 『맨스필드 파크』에서 메리 크로포드를 닮아 있다. 그녀에게 에드먼드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미래의 남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고 세련된 매너를 지닌 여성인 척하지만 그녀의 인격은 매우 저속하다. 나중에 그녀의 실체를 알게된 에드먼드는 패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메리 크로포드가) 잔인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좀 생각이 다른데. 아니, 잔인한 성품은 아니야. 내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그런 것은 아닐거야. 문제는 그보다 깊은 곳에 있지. 그런 말이 상처가 되는 그런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한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울 만큼 마음이 아주 뒤틀린 것, 그게 문제야.....그릇된 삶의 원칙이 문제야, 패니. 섬세함이 무뎌지고 정신이 썩고 타락한게 문제야.(658-659)
가장 최악의 상대는 『이성과 감성』의 윌러비라 할 수 있다. 윌러비는 메리안과 만나면서 마치 그녀만을 사랑할 것처럼 맹세하지만, 결국 그녀를 배신하고 만다. 그녀와 지진하게 사랑에 빠진 척하며 그녀에게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국 약혼을 파기하고 떠난다. 메리안은 그 충격으로 열병이 나서 앓아 눕는다. 윌러비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재정적 지원이 풍부한 가문과의 결혼이었다. 심지어 윌러비는 메리언을 만나기 전에도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던 적이 있었다. 그가 한때 만났던 여성은 브랜든 대령에게는 매우 가슴아픈 기억을 가진 이였다. 브랜든 대령은 일라이자라는 여성을 사랑했었는데, 일라이자는 변심하여 브랜든 대령의 형과 결혼하게 된다. 그 형은 난봉꾼이었고, 일라이자는 낭비벽으로 그들의 결혼생활은 온전치 못했고, 결국에는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한다. 일라이자는 죽기전에 그녀의 유일한 어린 딸을 브랜든 대령에게 맡긴다. 그 딸은 12살쯤 무렵에 친구를 잘 못 사귀면서 브랜든 대령의 애를 태우고, 이때 윌러비를 만나면서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윌러비는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힘없는 여성을 이용한 뒤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브랜든 대령이 그의 옛사랑의 딸을 버린 윌러비의 부도덕한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다음 대목을 보자.
"그 사람(윌러비)은 어리고 순결한 한 소녀를 농락하고는 극도로 비참한 상태로 그대로 버려둔 것이지요. 마땅하게 갈 곳도 없고, 도움을 받을 데도 없고, 친구도 없고, 자기의 연락처도 없는 상태로 말입니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긴 했다더군요. 그렇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편지도 주지 않았고 구해 주지도 않았어요." (275)
윌러비가 엘리너에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내용에도 윌러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인지 잘 알 수 있다. 결국 돈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 여인을 버리고 부유한 여성을 택했으니 말이다.
우리는(윌러비와 소피아) 약혼을 했고, 모든 것이 준비 중이었고, 거의 날짜까지 잡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바보 같은 소린지. 준비라니요! 날짜라니요! 까놓고 말해서, 저한테 그 사람의 돈은 필수였고 제 처지에서는 일이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했습니다!(436)
"그 사람(소피아)은 당신의 동정을 받을 가치도 없습니다. 결혼했을 때부터 제게 아무런 애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여간 우리는 결혼했고...(437)
소설 마지막에 이처럼 윌러비의 불행한 결혼 생활이 묘사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처럼 보인다. 그가 사귀는 여성들은 그의 이기적인 목적의 희생양이었고, 나중에 윌러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뉘우침과 변명을 해도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윌러비와의 결혼은 제인오스틴 소설의 여러 커플들 중에서 가장 최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리안이 그래도 실연을 딛고 일어나 브랜든 대령과 결혼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