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24. 내가 초대받고 싶은 제인 오스틴의 식탁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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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온 가족이 수육을 즐겨 먹는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기도 하고 다른 조리법에 비해 건강에 좋기도 하기 때문이다. 삶은 돼지고기를 상추, 깻잎, 양배추에 싸서 먹는다. 남으면 냉장고에 두었다가 차게 먹는다. 어린 시절에도 제주의 부모님은 그렇게 자주 드셨다. 오늘도 냉육을 먹고 있으려니, 제인 오스틴이 냉육을 자주 먹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냉육이라고 하면 식은 고기를 말했다. 전날 먹다 남은 스테이크 고기 등을 주로 다음날까지 먹었다고 한다. 손님을 초대했을 때도 빼놓지 않고 냉육을 대접하기도 했다. 그런데, 냉육이라고 하면 차가운 고기인데 어떤 방식으로 차가운 고기인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훈연된 고기로 저장된 차가운 고기인지, 전날 먹은 고기가 식은 차가운 고기인지, 소금을 잔뜩 뿌린 염장된 차가운 고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소설에 나온 냉육은 어떤 조리법의 냉육인지는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차가운 구운 소고기(cold roast beef)가 있다. 이는 영국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로 일단 구운 후에 식혀서 얇게 썰어낸 요리이다. 주로 크리스마스나 일요일 정한 이후에 남은 고기를 차갑게 서빙했다고 한다. 프레스트(pressed beef)는 소금에 절인 소고기를 조리한 후 눌러서 식혀 단단하게 만든 고기를 말한다. 얇게 썰어먹었으며 피클이나 겨자와 함께 제공되기도 했다. 브론(brawn)은 돼지 머리를 삶아서 젤라틴화된 육즙과 함께 식혀 굳힌 음식이다. 오늘날의 헤드 치즈와 유사한 음식이다. 콜드 햄(cold ham)은 훈연한 돼지 뒷다리를 조리 한 후 식혀서 겨자와 피클, 꿀과 같이 먹는 음식이다. 송아지 고기와 햄 파이(veal and ham pie)는 고기 파이를 말한다. 휴대성과 보존 성이 좋아서 소풍 음식으로 매우 인기가 있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가드너 부인이 다아시 씨의 펨벌리 저택에서 대접받은 식사를 보면, 냉육, 케이크, 제철 과일들이다. 여기서 이들이 먹은 냉육은 차가운 구운 소고기일 가능성이 높다.


하인들이 냉육, 케이크, 제철에 난 온갖 특상품 과일들을 들고 들어오면서 이들의 방문에 다시 변화가 일어났다....그리하여 포도, 승도복숭아, 복숭아를 피라미드처럼 아름답게 쌓아올린 테이블 주변으로 그들은 모여들었다. (369)


『오만과 편견』에서 키티와 리디아는 하트퍼드셔의 여관에서 샬럿과 콜린스 목사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제인과 엘리자세스 언니 일행을 기다리는데 그동안 오이 샐러드를 만들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언니들이 도착하자 여관에서 준비한 냉육을 대접한다. 여관에서 파는 냉육은 여행객을 위해 준비된 훈제 고기이거나

염장 고기일 가능성이 높다. 리디아 자매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돈으로 언니들을 대접했을 것이니, 돈이 많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훈제 고기를 대접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여행객들이 만약 중산층 이상이라면 차가운 로스트 비프를 먹었을 수도 있고, 일반 서민일 경우에는 프레스트 비프를 먹었을 것이다.


이 두 아가씨는 거기서 한시간 넘게 기다리면서, 건너편의 모자 가게에 들르기도 하고 근무 중인 위병을 지켜보기도 하고, 오이 샐러드를 만드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언니들을 맞이하고 나서, 그들은 여관 식당에서 흔히 내놓는 냉육을 올려놓은 식탁을 의기양양하게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근사하지 않아? 이런 선물 정말 예상 밖이지?"(306)


『에마』에서 6월에 나이틀리 씨는 에마와 엘튼 부인 등 일행에게 돈웰로 소풍을 오라고 초대하면서 돈웰에서 나는 딸기와 고기로 작은 파티를 열겠다고 한다. 돈웰의 정원에 딸기밭이 있어서 딸기를 갓 따서 먹을 수 있으니, 손님들에겐 매우 재미있는 소풍일 것이다. 나이틀리 씨가 돈웰을 찾은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이 먹은 고기는 차가운 로스트 비프이거나, 소풍에 딱 맞는 고기 파이일 수도 있다.


"신사 숙녀의 본성과 소박함은 하인들이 시중을 들고,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방안에서 식사를 대접할 때 가장 잘 지켜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원에서 딸기를 먹다가 싫증이 나면 집안에서 차가운 고기 요리를 먹으면 됩니다."(531)


『설득』의 14장에서 하빌씨의 자녀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에서 젤리같은 머릿고기와 고기 파이가 나온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고기 파이와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머릿고기가 탁자에 차려져 있다. 얼마나 많이 차려졌는지 가대와 쟁반이 휘청거리기 까지 한다.


방의 한 켠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느데 그 주위에 소녀들이 둘러 앉아 금은빛 종이를 자르며 재잘거렸고 가른 한 켠에서는 머릿고기(brawn)와 식은 파이(cold pies)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가대 위의 쟁반 주변에서 소년들이 왁자지껄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전체 광경이 타오르는 크리스마스 화톳불로 완성되었으니, 그 불은 다른 모든 소음을 제압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맨스필드 파크』에서 패니가 친정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인 프라이스 부인은 패니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고, 오랜만에 찾아온 패니를 대접하기 위해 하녀에게 차를 끓이고 토스트를 준비하라고 한다. 이어서 도착한 아들 윌리엄과 패니에게 어떤 요리를 해줄까 어머니로서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좋은 요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말이지만, 과연 스테이크를 준비할 수 있는 형편이었는지는 의문이 생긴다. 패니는 이 말을 들으면서 매우 가슴아파 했을 것이다. 버트람 이모댁에서는 무엇이든지 고급스런 음식을 먹으면서 지냈지만 친정 집의 형편은 너무 열악하다는 것을 직접 목도했으니 말이다.


"가엾은 내새끼들! 얼마나 피곤하겠니! 지금 뭐 좀 먹어야지? 오늘은 못 오나 보다 하고 포기하려던 참이었어. 벳히하고 둘이서 삼십 분 전부터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나저나 요기는 언제 했니? 지금은 뭐가 좋을까? 고기 요리가 나을지 아니면 먼 길을 온 끝이니 차와 간단한 요기가 나을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니면 미리 준비를 해 놓았을텐데. 이제 와서 스테이크를 만들자니 그 사이에 캠벨이 오면 어쩌나 싶고 거기다 근처에 고깃간도 없으니, 이 동네에는 고깃간이 없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냐."(545)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다보니 매우 흥미로운 음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에마』에서 에마 우드하우스는 박스힐 소풍 중에 베이츠 부인 집으로 돌아간 제인 패어팩스에게 호의를 보여주기 위해 칡가루를 보낸다. 하지만 제인은 칡가루를 돌려보내며 에마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 칡가루는 당시 영국에서 소화를 돕는 유동식으로 인식됐는데, 주로 병자나 회복 중인 사람, 노인, 어린이들에게 권장됐다고 한다. 칡가루를 보냄으로써 에마는 제인을 걱정하고 배려한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에마는 곧장 가정부한테 비축된 음식을 조사하게 해서, 아주 뛰어난 품질의 칡가루(arrowroot) 약간을 매우 친근한 쪽지와 함께 신속히 베이츠 양에게 보냈다. 삼십 분 후 칡가루는 베이츠 양의 수천 번 감사하다는 전갈과 함께 되돌아 왔는데, "우리 제인이 이것을 돌려보내는 것을 봐야만 마음이 놓이겠다고 한다. 이건 그 애가 먹기 힘든 음식이고, 게다가 그 애는 자기는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을 전해 달라고 고집했다."라는 것이었다. (567)


제인 패어팩스가 에마가 보낸 칡가루를 거부하고 에마를 만나기를 거부한 것은 큰 오해가 있어서였다. 프랭크 처칠이 제인과 약혼한 사이임에도 에마에게 플러팅을 하는 모습을 제인이 봤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오해는 풀리고, 제인은 프랭크 처칠과 무사히 결혼하게 되고, 에마는 나이틀리 씨와 결혼하게 된다. 여하튼 우리 나라에서도 건강식으로 먹는 칡(칡즙)이 영국에서도 매우 값비싼 건강식이었다니 그 부분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의 여러 주인공들 중에서도 누구의 식탁에 초대받고 싶을까? 단연코 에마의 식탁이다. 분명히 에마는 하루는 그녀의 집에서 정찬을 초대할 것이고, 화창한 날에는 박스힐과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가자고 할 것이다.그녀가 차려내는 식탁에 앉아, 그녀 특유의 발랄함과 재치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다면 그 어떤 음식이건 맛있을 것 같다. 이 지점에서 그녀가 만든 칡가루 음식은 어떤 맛일지 다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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