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22. 나에게 가드너 부인같은 외숙모가 있다면

by 제이오름

제인 오스틴 시대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스콧(1771~1832)은 제인 오스틴 소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번 이상 읽으라는 말을 했다. 나 역시도 그녀의 소설을 여러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이전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인물이나 이야기가 인상에 남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을 때 매우 인상깊었던 인물은 가드너 부인이다. 베넷 씨 부인에게는 동생 필립스 부인와 가드너 씨라는 남동생이 있다. 베넷 씨 딸들에게 외숙모가 되는 가드너 부인은 그의 딸들에게 여러가지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매우 친절하고 우아한 여성이다. 베넷 부인이나 필립스 부인 보다 어림에도 불구하고 총명하고 합리적이어서 소설에서 주변 인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로 나온다. 그녀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녀가 베넷 씨 딸들에게 어른으로서 얼마나 많은 조언을 했을지 잘 느껴진다. 특히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런던에 사는 가드너 부인댁을 자주 방문하여 그 집에 머무르곤 했다. 외숙모의 집을 방문하면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을 자주 들었을테니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여유와 성숙함이 괜히 길러진게 게 아니다.


베넷 부인이나 필립스 부인보다 몇 년 손아래인 가드너 부인은 상냥하고 총명하며 우아한 여성이었고 롱본의 조카딸들 모두 그녀를 많이 따랐다. 특히 그녀와 맨 위 두 조카딸 사이에는 각별한 존경과 애정이 있었다. 두 조카딸들은 전에 자주 런던을 방문하여 그녀의 집에 머무르곤 했다. (200)


베넷 부인은 두 딸들 때문에 이래 저래 속상하다. 큰 딸 제인이 좋아하는 빙리 씨는 네더필드를 떠났고, 엘리자베스는 콜린스 씨의 청혼을 거절했으니 말이다. 베넷 부인은 이 사실을 올케인 가드너 부인에게 털어 놓는다. 그런데 가드너 부인은 이미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편지를 통해 그 소식을 이미 전해 들은 바가 있어서 베넷 부인에게는 적당히 대답해주고, 조카들의 입장도 생각해서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엘리자베스와 단 둘이 있을 때 두 조카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현실을 제대로 즉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가드너 부인과 엘리자베스가 사람의 감정에 대해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감정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표현은 너무나 진부하고 의심스럽고 막연해서 감이 잘 안 잡혀. 진정으로 탄탄한 애정만이 아니라 단 반시간 동안의 만남에서 생겨난 감정에도 종종 그런 표현을 쓰곤 하니까 말이야. 빙리 씨의 사랑이 도대체 얼마나 열렬했는데?"(202)


"저(엘리자베스)도 그분한테 말을 걸었다가 두 번이나 대답을 듣지 못했어요. 그보다 더 뚜렷한 증후가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사랑에 빠졌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요?"

"그래 맞아!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제인에 대해 느꼈을 그런 유의 사랑의 증거겠지. 불쌍한 제인! 정말 안됐구나. 걔의 성격으로 봐서 쉽게 극복하지 못할 텐데. 리지, 너한테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차라리 나을 뻔했는데. 너라면 더 빨리 웃어넘겨 버릴 테니까. 그런데 내가 런던에 돌아갈 때 제인더러 함께 가자고 하면 어떨까? 장소를 바꿔보는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고. 집에서 조금 벗어나 보는 것도 다른 것 못지않게 도움이 될 것 같고."(203)


가드너 부인이 롱본에 일주일 머무를 때 베넷 씨 집에서는 계속해서 연회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카 딸들이 들뜬 마음으로 쉽게 사랑에 빠지거나 즉흥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지 주의깊게 관찰한다. 이 장면 묘사를 보면 조카 딸 들 중에서 가드너 부인은 누구보다 엘리자베스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에서 연회가 있을 때는 언제나 장교들 몇이 함께했고 그때마다 위컴 씨가 빠지지 않았다. 가드너 부인은 엘리자베스가 매번 그를 열렬히 칭찬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관계를 미심쩍게 여겨 두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두 사람이 심각하게 사랑에 빠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이 너무나 명백해서 다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녀는 하트퍼드셔를 떠나기 전에 엘리자베스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호감을 키우는 게 얼마나 경솔한가에 대해 말해 주기로 결심했다. (205)


가드너 부인이 진심으로 엘리자베스에게 조언해 주는 다음의 대화 장면에서 엘리자베스는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일이든 신중히 행동하겠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엘리자베스가 위컴에게 성급하게 빠지지않고 다아시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면모를 제대로 알게 되는 작은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가드너 부인의 모습처럼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서두르지 않은 조심성을 갖추고 지혜롭게 행동하게 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확신을 갖게 된다. 사람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신중해지는 것이다. 또한 다음의 대화는 인생을 좀 더 살아본 선배로서 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소설에서 가드너 부부는 런던의 그레이스처치가에 살고 있는데 이들이 사는 지역은 상류층 지역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가계 상황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 아님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니, 가드너 부인은 조카딸이 경제적인 부분은 외면하고 사랑만을 쫓아서 하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가드너 부인은 엘리자베스와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자마자 차근차근 알아듣게 주의를 주었다.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말한 뒤 그녀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리지야, 넌 경고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질만큼 분별력이 없는 애는 아니니 솔직히 말할게. 심각하게 하는 말인데, 단단히 조심했으면 좋겠다. 재산이 없기 때문에 경솔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사랑에 스스로 휘말려들거나 상대를 끌어들여서는 안돼. 사람만 본다면 나도 나무랄 데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오히려 아주 호감이 가는 젊은이지. 그리고 만일 당연히 얻기로 되어 있었다는 수입만 지금 가지고 있다면 나도 그보다 더 좋은 상대도 없다고 생각하겠어. 그렇지만 현실이 현실이니 만큼 감정에 휩쓸려서는 절대 안 돼. 네게는 분별력이 있고 우리 모두 네가 분별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하고 있어. 네 아버지도 네 단호한 성격과 방정한 품행을 신뢰하고 계실 테고.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려서는 절대 안돼."...

"외숙모에게 약속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뿐이에요. 저야말로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라고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을께요. 그 사람하고 함께 있을 때에도 그걸 바라지도 않을 거고요. 어쨌든 최선을 다할께요."

"그 사람이 지금처럼 너희 집에 자주 오지 않도록 한다면 아마 그것도 좋은 방법일 텐데. 최소한 어머니께 그를 초대하자고 상기시켜 드리지는 말아야지."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이번 주에 그이를 자주 초대한 건 외숙모 때문이었거든요. 어머니가 친지들이 우리 집에 머물 때 항상 손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걸 외숙모도 아시잖아요. 그렇지만 진심으로, 그리고 제 명예를 걸고, 앞으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노력할께요. 자, 이만하면 이제 만족하셨겠지요."

외숙모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가 친절한 충고에 고맙다고 인사한 수 두 사람은 헤어졌다. 기분을 상하지 않고서 이런 문제에 대해 충고를 한 훌륭한 본보기였다. (208)


위 대화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드너 부인은 조카딸과의 대화가 얼마나 즐거웠을까. 가드너 부인에게 엘리자베스는 분별력과 신중함이 있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고칠줄도 알고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이니 말이다. 대화는 이런 식으로 해야하고, 상대가 진심으로 말하면 그 말을 새겨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위컴이 다른 여성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위컴을 완전히 단념하게 된다. 다시 만난 가드너 부인은 엘리자베스가 위컴에게 차였다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인다고 조카딸을 칭찬한다. 그리고 가드너 부부의 여름 여행 일정(잉글랜드 북부의 더비셔 위쪽에 있는 호수 지방)에 엘리자베스를 초대한다. 조카딸의 기분 전환을 시켜줄 목적이 컸을 것이다. (소설을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이 여행은 소설에서 매우 중요하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저택을 둘러보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참된 모습과 진심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니 말이다)


어떤 계획도 그보다 더 엘리자베스를 기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초대를 아주 기꺼이,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오, 고마운 외숙모님." 그녀는 황홀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기뻐요! 이렇게 좋을 수가! 외숙모 덕분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얻게 되었어요. 실망스럽고 울적한 일이여, 모두 안녕! 바위와 산들에 비하면 남자들이 다 뭐에요? 아! 얼마나 황홀할까요!"(221)


외숙모가 초대한 여행에 동참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울적함과 실망스러움을 심각하지 않게 바라보는 이 산뜻한 가벼움이 너무 좋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러기를 바라고, 나도 또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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