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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2. 아버지는 왜 소를 기르셨을까?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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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한 쪽 눈을 실명하시고, 안과 치료차에 서울 오빠집에 들르셨다. 우리 집이 오빠네 집과 멀지 않아서 오신 김에 아버지를 뵈러 갔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과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어린시절에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 당신이 키우시던 아홉 마리의 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어떵행 소를 키우셨수꽈?"

"소 한마리 값이 상당허니, 당연히 키우주."

"아버지, 그거 말고 소 길렀던 이유가 이싱거 같수다. 아버지 소 키울 때 경 행복하게 보였수다. 오름 주변에서 소를 몰멍, 달리기도 경 잘해그네, 그런 거 기억남수다. 취미고치 키운 거지예?"


아버지가 허허 웃으셨다. 한쪽 눈 실명 외에는 아픈 곳이 거의 없으셨기에, 우리는 그 이유를 아버지께서 소를 기르셨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젊으셨을 때 소를 기르느라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늘 오름 주변에서 달리기도 많이 했으니, 성인병이 아버지에게 찾아올리는 만무했다. 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관절도 튼튼하여 70이 넘은 나이에 한라산 정상까지 등반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왜 소를 키우셨을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추운 겨울 외양간에 있는 소들에게 여물을 줄 때도 중얼중얼 소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힘든 농사일을 하는 중에 소들은 아버지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4.3으로 인해 9살 어린 나이에 당신의 아버지를 잃으셨으니, 이후 삶은 먹고 살 걱정에 매우 고단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농사일을 하셨다. 어머니와 결혼 후에도 돈을 벌면 작은 밭들을 하나씩 사들이면서 살림을 넓혀 가셨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소들은 아버지에게 마음으로 위로를 건네지 않았을까. 소들의 큰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뭔가를 말할 듯한 모습이라는 걸 나도 기억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의 한 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제주의 오름 풍경들, 소들, 밭 농작물이 커가는 모습을 아버지께서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리 슬플 수가 없다. 차로 10분만 가면 있을 바다 풍경, 넘실대는 파도와, 바위틈에 붙어 자라는 고메기(보말과 비슷)도 선명하게 보지 못하실 것이다. 과수원에 귤 꽃이 필 때, 향기로만 알 뿐 흐드러진 하얀 꽃들이 흐릿하게만 보일 것이다. 돌담 주변에 핀 수국들, 신작로 주변에 핀 벛꽃들과 유채꽃들은 그 색깔의 화려함이 아버지에게 반은 사그러들 것이다. 겨울에 함박 눈이 내리면 새하얀 함박 눈이 짓눈깨비처럼 보일 까 걱정이 된다.


어린 시절,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따라 목장에 간 적이 많다. 여름이면 목장에 방목한 소들에게 진드기 방제를 꼭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름 근처에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는 수백마리의 소들 중에서 아버지께서는 우리집 소들을 어떻게 그리도 정확하게 찾으시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소들이 번호표를 달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마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색깔과 생김새 만으로 찾을 뿐이었다. 두 세마리를 찾아서 한 곳에 모으면 다른 소들을 찾으러 가셨다. 아버지께서 찾아온 소들을 지키는 게 나와 동생의 일이었다. 하지만 소들이 우리 맘을 알리가 없다. 저 쪽에서 더 맛있어 보이는 풀들이 유혹하면, 혹은 다른 집 소들이 우르르 움직이면 아버지께서 열심히 찾아온 우리집 소들도 그쪽으로 가려 했다. 내가 한 쪽을 막고, 동생이 다른 쪽을 막았다. 그러다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움직이지 않게 목 덜미를 긁어주기도 하고, 사방이 탁 트인 공간에 있기 보다는 개울이나 돌담으로 한쪽이 막힌 곳으로 소들을 몰고 가기도 했다. 열심히 여덟마리 소들을 찾으셨는데, 한마리를 못 찾으시면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지막까지 우거진 나무 숲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니셨다. 마치 집을 나간 자식들을 찾으러 가듯이. 아홉마리의 소들을 다 찾으시고 진드기 방제가 끝나면 다시 소들을 목장에 풀어주었다. 저 멀리 흩어지는 소들을 보면서 매우 흐믓한 미소를 지으시던 아버지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마 소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려운 진드기 없애 주셔서 고마워요.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만나요.'


목장 주변에 갔던 일들이 생생한 이유는 또 다른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말똥 버섯이다. 소를 찾으러 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심심하면 여기 저기 피어 있는 버섯들을 주워 모았다. 소똥에서만 자라는 말똥 버섯들! 독이 없는 식용 버섯이라서 보이는 것마다 열심히 땄다. 먹을 수 없는 비슷한 버섯도 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과 나름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잘 분간할 수 있었다. 한바구니 가득 딸 때도 있어서 그날의 저녁 반찬으로 맛있게 먹기도 했다.


늦가을 날씨가 쌀쌀해지기 전에 목장에 방목한 소들을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이 날은 온 가족이 출동하는 날이다. 목장에서 집 까지 꽤 먼거리를 걸어서 소들을 몰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을에서 몇몇 집이 같은 날에 소들을 몰고 오는 날이면 아스팔트 길을 따라 이동하는 소떼들이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어떤 한 아이가 소들이 오는 모습에 무서워서 달리면서 도망간 적이 있다. 소들의 습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잘 걸어가던 소들이 그 아이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한다. 소들이 달려오니 더욱 무서워서 울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 달리지 말라고 소리 친다. 그러면 소들도 멈출 거라고. 다행히 아이는 달리기를 멈추고, 소들도 멈추고, 소를 몰던 사람들 모두 문제를 잘 해결했다.


아버지는 고요한 밤중에 밖에서 나는 소리를 잘 들으셨다. 외양간에서 소들이 뒤척이는 소리는 특히 더 잘 들으셨다. 음매~ 소리가 달라지면 소들이 뭔가 불편해서 내뱉는 소리인 줄을 단박에 알고는 달려가시기도 했다. 아기들의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끼우시는 어머니처럼, 소들의 진 자리 마른 자리를 잘 알아채고 주기적으로 갈아주시기도 했다. 소거름을 퍼내는 일이 아주 고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일처럼 묵묵히 하셨다.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집중하면 상대의 내면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소리소문 없이 배운것 같다.


겨울에 소들은 아버지께서 손수 베서 말린 풀들을 먹었고, 이따금식 말린 고구마줄기와 귤껍질을 먹기도 했다. 일이 있어서 아버지께서 외출하실때면, 나와 동생이 소에게 풀 주는 일을 맡아서 했다. 속상하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자연스레 나도 외양간으로 향했다. 나도 소들에게 위로받으려 했던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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