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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3. 소풍가는 날

by 제이오름
ChatGPT Image 2025년 7월 25일 오전 10_57_49.png


방학이 되어 아이들 점심으로 김밥을 싸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홍차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소풍가는 날이다. 소풍은 김밥 싸기 먼저 시작된다. 김밥이 없는 소풍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 동네에는 구멍가게가 두 곳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주신 돈을 꼭 쥐고 김, 분홍 소시지, 단무지, 계란을 사온다. 그런데 그 구멍가게에서 파는 김밥용 김은 다소 성근 김이었다. 소풍을 간다는 벅찬 마음에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녀 오면서 내가 산 김이 어떤 김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어머니께서 김밥을 말 때에 비로소 그 김의 품질을 알게 된다. 다소 원망도 했다. 왜 우리 마을의 구멍가네는 좋은 품질의 김을 팔지 않는 걸까. 그래도 어머니는 있는 솜씨를 잘 발휘하여 밥알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잘 마셨다. 김밥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한 내 마음을 아셨는지 최선을 다해서 김밥을 완성해 내셨다. 김밥이 온전치 못하면 소풍의 즐거움도 반은 사라질 것이라고 미리 아셨던 것이다.


누나 사이다 샀어?

아니.

김밥은 사이다랑 먹어야지.


동생이 사이다를 사러 다시 구멍가게에 갔다. 누가 김밥을 사이다랑 같이 먹으라고 정해 줬을까. 그렇게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그렇게 먹으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다. 마들렌과 홍차를 같이 먹었던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말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분명 사이다의 탄산은 우리들의 마음을 좀 더 들뜨게 해주니까.


소풍 가는 길은 그리 간단한 여정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목적지 오름 근처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한다. 전교생이 줄을 지어 질서정연하게 걸어갔다. 부모님께서 일하고 계신 과수원 옆도 지나가고, 밭을 갈고 계신 친구네 집 밭도 지나간다. 이따금씩 오가는 자동차들도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지나갔다. 모두가 우리의 소풍길을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소풍 다음 날에 학교 선생님은 꼭 그림을 그리게 하셨다. 제목은 소풍가는 길이었다. 아이들 모두 학생들이 줄 지어 목적지 가는 가는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비슷비슷한 풍경이다. 그 풍경이 지루해서 난 조금 다르게 그려보았다. 질서를 지키면서 목장 근처로 소풍 가는 길에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연히 개미떼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면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참을 보다가 행렬을 놓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본 아름드리 나무,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남자 아이들은 분명 올라갔을 것이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처럼 말이다. 나무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 나무 중간 쯤 올라가서 먼 풍경도 보았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싫어했을 그런 일탈의 상상을 토대로 나만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을 본 친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라고 물어본다. 그냥 상상해 본거야. 나무에 매달려서 즐거워하는 아이가 있는 그림이 너무 좋아.


드디어 마을 목장에 도착했다. 오름 근처에 있는 마을 목장이다. 어? 그런데 이곳이 낯설지 않다. 이 주변에 소들을 방목하셨던 아버지따라 와 본 곳이다. 저 먼 곳을 보며 생각한다. 아버지는 저 곳에서 소들을 몰았고, 나는 달려가다가 넘어졌었지. 또 다른 곳을 보며 생각한다. 저 나무 근처에서 말똥 버섯을 땄었는데. 지금도 그 버섯이 있을까. 아버지는 이 곳을 소풍처럼 오셨을까.


오름 근처 들판에서 한참을 논 뒤에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앉아 김밥을 먹었다. 친구들의 김밥은 다 제각각이었다. 어느것 하나 같은 김밥이 없다. 어머니가 만드신 김밥은 그렇게 예쁜 비쥬얼은 아니었지만 맛은 제일 좋았다. 내 김밥을 꼭 먹어보겠다고 하던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어머니의 김밥 맛을 기억하고 있던 친구이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된다. 보물찾기에 귀신인 아이들이 있다. 나는 하나도 못찾았는데 벌써 네 개 씩이나 찾았다고 자랑한다. 선생님은 보통 덤불 속이나 돌멩이 안, 바위 틈에 숨겨 놓으셨는데, 이건 너무 쉬우니까 더 깊숙한 곳에 숨겼을거야 추측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에 찾지 못한 것이다.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음을 본 선생님께서 내게 눈짓을 보내신다. 바로 옆에 있는 덤불 쪽으로. 달려가서 하나를 찾았다. 보물찾기, 그냥 놀이인듯 하지만 깨달음을 줬던 기억이기도 하다. 삶은 의외로 가까이 있는 곳에서 간단한 해결책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장기자랑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각자의 솜씨를 뽐낸다. 노래와 춤이 기본이고 개그를 하는 친구도 있다. 이들의 장기자랑은 미리 준비된 것이었고, 아이들의 열띤 호응으로 잘 마무리가 됐다. 시간이 조금 남으면 사회를 보신 선생님께서 즉흥적으로 몇 몇 아이들을 지목하여 노래를 시키셨다. 행여 선생님께서 나를 볼까봐 고개를 숙였는데,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신다. 잘 하는 노래 한 곡을 부르라는 것이다. 꼭 불러 세울 것을 알기에 안 나갈 수가 없다. 또한 아이들의 집요한 시선을 거절할 수 없어서, 나는 '해당화'를 부른다. 음악 교과서에서 기억이 나는 동요이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그래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는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해당화가 어떤 꽃이었지? 그 때는 어떤 꽃인지도 모르고 불렀었네. 기억해보니, 나의 해당화, 잘하든 못하든 그래도 용기를 주었던 시간이었다.


22382_33993_2535.jpg 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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