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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Jan 24. 2018

'라틴어'를 통해 보는 로마의 고상함

좋아서 하는 공부 <로마편>_'라틴어 수업'에서 본 로마의 지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감사한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데 유난히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상무님께서 책 한 권을 추천해주신다. '로마'에 대해 깊은 감흥을 받고 왔다고 하니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이 있는데 한 번 읽어보라며- 자리로 돌아와 주저없이 책을 구매했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의 변호사인 <라틴어수업>의  저자는 서강대학교에서 했던 '라틴어 강의'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의 라틴어 강의는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일반인들까지 청강하러 찾아오는 등 최고의 명강의 평가를 받았다고. 



유난히 아껴읽고 싶은 책이 있다. 책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 아껴두었다가 정말 필요할때 꺼내 읽고 싶은 책. 한동일 저자의 <라틴어 수업>이 나에겐 그랬다. 침실로 들어가기 전 꼭 옆에 끼고 침대에 눕던 책. 오랜만에 찾아온 햇살 가득한 오전 시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하는 날, 항상 옆에 두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한동일 교수님의 수업이 단지 '언어'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이 수업에는 단순히 문법적인 라틴어가 아니라 그 당시 로마인들의 사상과 생활양식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로마인의 지혜, 그들의 지혜와 문화가 담긴 라틴어 문장 3가지를 소개해본다. 


(사실 더 많이 소개하고 싶었는데 정리하다 보니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다른 주제로 소개해드릴게요 :) 좋은 내용 정말 많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사서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1) Magna puerilitas quae est in me. 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


라틴어가 배우기 매우 까다로운 언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리고 '카르페디엠!'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에서 한 학생이 자살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외우던 것이 바로 라틴어 동사 변화였다!! (이런 걸 보면 라틴어를 배울 엄두가 싸-악 사라진다) 여하튼 라틴어의 문법은 굉장히 복잡하고, 동사의 다양한 어미변화는 물론 수동태의 어미변화는 더욱 복잡해서 사람들은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라틴어가 공용어였던 로마 제국에서조차 라틴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제국의 확장에도 라틴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문맹률은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라틴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많다. 저자는 매 학기 초 학생들에게 '왜 라틴어를 듣는가?'에 대해 묻다보면 자연스레 '공부는 어디에서, 무엇에서부터 시작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거시적인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삶의 긴 여정 중의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칭찬받고 싶은, 전체하고 싶은 그 유치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 뭔가 거창한 목적마저 있어야 한다면 시작하기 전부터 숨이 막힐지도 모릅니다. 


처음에 라틴어를 배우려는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 '있어보이려고' 혹은 '칭찬 받고 싶어서' 등 유치한 이유였다고 한다. 그 어려운 라틴어를 이런 유치한 이유에서 배우겠다고?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사실 이런 유치함이 위대한 것이라고. 처음 생각했던 혹은 결심했던 마음. 우리는 이를 '초심'이라고 부른다. 그 처음 마음이 유치하더라도 그걸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까, 끝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상해 보라고 권유한다. 이 글을 본 순간, 매번 두려움이 닥칠 때마다 내가 떠올리던 안창호 선생님의 글이 생각났다. 


모든 큰일은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크게 어려운 일은 가장 쉬운 것부터 풀어야한다.

-도산 안창호, 1919 상하이 연설 중-


사실 우리가 말하는 '큰일'이라는 것이 결코 처음부터 '큰 일'이 아니었음을,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글을 보며 알 수 있다. 너무 높아 오르지 못할 것 같은 산도, 한 발 한 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발걸음부터 시작하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의 시작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대단한 걸 하겠다고 '시작'한다면 시작조차 하기 전에 두려움에 짖눌려버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시작에 내 안에서 솟아난 처음의 그 마음, '위대한 유치함'이 있기를 바라본다. 로마인은 이미 알았던 걸까. 우리가 웃고 넘어가는 '유치함' 속에 어쩌면 '위대함'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다는 것을. 




2) De Elegantiis Linguae Latinae. 라틴어의 고상함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언어 속에 아름다운 기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문장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서구어의 부정 부사와 관련이 있는데 서구어의 'no, non, nein' 등의 부정 부사는 고대 인도 유럽어의 '부정'을 뜻하는 개념, '밤에 흐르는 물의 모호함'에서 나왔다. 옛 사람들은 깜깜한 밤을 밝은 바다의 움직임이 끝나고 어두운 바닷물이 땅으로 흘러와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뭘 봤니?"라고 물으면 "물(na)"만 보았다"고 대답했다. 결국 "물만 보았다" = "아무 것도 못봤다" 라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인도 유럽어의 물을 상징하는 '나na'라는 음소에서 '아니다'라는 부정부사 'no,non'이 유래했다. 


이렇듯 라틴어는 오늘날 거의 모든 유럽어의 모언어이다. 그런데 이런 라틴어는 아시아어라고 할 수 있는 '인도 유럽어'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 모두 유럽 문화의 출발이 그리스, 로마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특히 기원전 6세기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사상은 플라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고, 플라톤의 사상은 스토아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어요. 그런데 피타고라스의 사상 역시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통해 전해진 인도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신국론> 중-


위의 글을 보며 현대 '서구 중심의 사회'라는 것 속에 아시아의 문화가 깃들어 있는 걸 알 수 있다. 서구 중심 지배 사회는 인류의 전 역사를 본다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고 이 또한 지나가는 역사의 한순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는 구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쨌든 라틴어는 로마제국의 확장과 함께 제국의 공용어로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순수 인문학자이자 수사학자, 교육가였던 라우렌티우스 발라는 언어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 소통과 문화 변용을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바탕으로 <라틴어의 고상함에 대하여>라는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올바른 방법이 모든 표현의 기초가 되고,
그것이 참다운 지적 체계를 형성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이 말은 사실 소통을 넘어서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올바르게 설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언어의 고상함. 언어란 결국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타인에게 표현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 


저자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가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예의바른 언어라는 인식이 강한데 반해 존댓말 자체가 없고 상대방과 평등하게 말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존댓말의 예의바름과 존중이 강압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라틴어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려다보지 않고 수평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거 로마의 식민지들이 로마에게 '지배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 로마인들이 식민지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사회 전반에 기용하고 동일하게 투표권까지 주었던, 식민지조차 자신들이 로마의 시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 이러한 로마의 문화가 아마도 사고의 틀인 '라틴어'의 수평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라틴어가 고상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문화 속에 있다고 말이다. 




3)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포스트 코이툼 옴네 아니말 트리스테 에스트.

모든 동물은 성교(결합) 후에 우울하다.


처음보면 누구든 부끄러워질 문장. 하지만 이 문장의 진짜 의미를 알고나면, 이 문장이 단순한 부끄러움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명문은 그리스 출신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 클라우디오스가 한 말이다. 어떤 이는 그가 로마시대 검투사gladiator의 외상 치료 전문의라고 했다는데, 로마시대의 검투사 곁에 있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 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인간이 느끼는 고독함, 인간이기에 느끼는 외로운 개인의 실존. 특히나 윤리적인 인간이 비윤리적인 사회에서 고통받을 때 인간은 영적인 동물로서 '이성적 인간'이자 '종교적 인간'을 지향하게 된다고, 종교학에서는 이 문장을 해석하여 말한다. 




나는 대학교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던 청춘이었다. 그래서인지 소위 이른바 '스펙'이라 말하는 대외활동도 원없이 하고 이 직업을 갔다 저 직업을 갔다, 적저 않게 사회에 나와서도 방황했다. 사실 '꿈'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지 않아도, 나는 내가 그저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어떤 방식인지 궁금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질문과 방황은 지금의 내 '일' 앞에 멈춰섰다.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직무(하고싶은 일)라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직'업'이라는 타이틀만 쫓던 나를 벗어나 드디어 진짜 원하는 일 속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갔다. 잠을 못자도 좋았다. 배울 수 있는 모든게 새롭고 즐거워 시간이 얼마간 흐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텅 빈 공허함이 날 찾아왔다. 그토록 원하던 삶 속에 들어와 있는데, 도대체 왜이리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공허한 걸까. 그토록 원하던 삶이었는데. 나의 이 허무함과 공허함의 원인을 찾기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나의 다음(next)'이 없다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너무 좋은데, 그 다음? 넥스트는? 학창시절 방황해서 찾던 '일' 말고, 이제는 새로운 10년 뒤를 위해 지금 나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할 '새로운 미래'의 의미가 필요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이때 느꼈던 나의 감정이 떠올랐다. 



인간이 원하고 목표하던 사회적 지위나 명망을 취한 뒤 느끼는 감정은
만족이 아니라 우울함이다


저자는 이 명문을 우리의 일상과 접목했을 때 위와 같은 해석이 나온다고 말하며 "실제로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력하게 지나가고 나면 인간은 허무함을 느낍니다."라고 다시한번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꼭, 이 감정을 경험해보라고 권하며 하는 그 다음 이야기가 내 가슴을 쿵쿵, 때렸다. 


그 달리기 끝에서 느끼는 우울함이나 허망함 같은 감정들은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달려본 사람만이 압니다. 또 그게 내가 꿈꾸거나 상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만큼 불필요한 집착이나 아집을 버릴 수 있어요.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 


그만큼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렇게 치열했던 모습도 치열함을 놓고 안락하게 살고 싶던 마음도, 모든게 다 나인 것을. 그것은 내가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또 다른 세계가 열린 순간이었다. 



이 세 가지 문장 외에도 좋은 문장들이 참 많다. 그래서 좋아하는 이들에게 종종 이 글귀를 적어 보내준다. 각자 자신에게 가장 좋은 라틴어 문구를 찾아보았으면 한다. 로마가 위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 중 하나는 지금도 유럽어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라틴어의 힘이 아닐까 싶다. 라틴어의 문장을 보면 그 안에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굳이 라틴어가 아니더라도, 오래 전 인류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의 생각보다 더 깊고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은 여전히 내 침대 맡에 있다. 



2017. 01. 24

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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