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살롱 Be my B:reak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했을 때,
나와 같은 마음 혹은 나보다 더 기뻐해줄 수 있는 마음과 만난다는 것.
멘붕이었다. 우리는 분명 '서산'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내가 예약한 숙소의 주소를 '다시 보니' 화성이었다. 8월 마지막 주라는 여름 휴가의 피크 타임과 맞물려 안그래도 웬만한 숙소는 예약이 가득 찬 상태였다. 12명의 인원을 한꺼번에 받아줄 숙소도 여유치 않았다. 이 마저도 예약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우대님을 빠르게 재촉해 결제한 곳이었는데...서산이 아닌 화성시 서신면이라니.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일주일 전, 서둘러 모든 여행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백미응서재'라는 이름의 이 고택은 터는 500년, 지어진 지는 120년이 된 오래되고 낡은 공간이다. 한 눈에 봐도 느껴지는 넓은 마당과 이 고택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세련되고 모던한 숙소보다는, 처음부터 모두를 이곳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곳이 서산이 아니라 서신이었던 것이다.
멘붕이 된 나를 다독여준 것은 함께 Be my B:reak를 기획하는 상우님이었다. 상우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어떡하죠?.... 어떡하죠?...진짜 죄송해요!"를 백번 외치는데 상우님은 정말 차분한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넌지시 말했다. "아, 괜찮아요. 여기에 가면 낚시도 할 수 있고, 전곡항에 가서 회도 먹을 수 있고, 또 여기에 사강 시장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와, 이렇게 고마울 수가! 마음을 가다듬고, 더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된
Be my B:reak <OLD IS NEW HIP>
먼저 우리의 핵심 컨셉을 '백미응서재'라는 공간으로 잡았다. OLD한 공간에서 새롭게 즐기는 HIP한 경험들. 최근 레트로가 유행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옛것에 대한 그리움을 다양한 형태로 소비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던 시절 옛 것을 버리고 무자비하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사회가 이제서야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볼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나는 3년 전 처음으로 간 유럽에서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멋진 레스토랑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물을 보고서야 드디어, 한국의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끼고 조심히 다뤄야 할 새 것과는 다르게 손 때가 묻고 세월의 때가 탄 것들은 왠지 모를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창호지로 덧댄 격자무늬의 나무 창. 가지런히 열을 맞춰 서있는 서까래. 오래된 처마 밑에서 옹기 종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당.
이 공간에서는 함께하는 멤버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서로를 바로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Day 1. 우리들의 빚는 시간, 익어가는 시간
여행의 기획자이자 코디네이터인 상우님과 나를 제외한 10명의 멤버를 2개의 팀으로 나누고 첫 째날 전체 일정을 진행해나갔다. 이 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로그램 속의 프로그램처럼 '친해지길 바라' 컨셉으로 12명의 멤버 중에서도 덜 친한 것 같은 멤버로 팀을 구상했다. 흐흐. 더. 워터멜론인만큼 수박 겉조와 수박 속조로 나눠 4개의 미션 봉투를 각 미션 수행지에서 전달한다. 우리의 첫 일정은 용인 <샘터> 양조장에서 전통주 빚기 체험. 함께 만드는 경험, 우리의 전통주를 이해하고 직접 만들어가는 경험이다.
우리 손으로 빚은 미완의 전통주에 서로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술은 왜 '만든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할까. 누룩이라는 녀석을 생명처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주인장의 말을 듣고는 '빚는다'는 어감 속에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반죽하고 만져나가는 정성스러움이 묻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함께 맨손으로 고두밥과 수곡을 주물주물하는 정성의 시간을 지나, 쓰는 순간 '어머니' 혹은 '브로콜리'가 되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위생모의 양조장 투어 시간에도, 우리는 꽤나 낄낄거리고 웃었다. 선생님 말씀 안듣는 말썽쟁이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기분. 술을 빚기 전 주신 알싸한 시음주 역시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 몫했다.
그렇게 양손 무겁게 우리 손으로 직접 빚은 전통주를 안고 '백미응서재'로 향했다. 태양은 마치 처음 태어난 듯 밝게 빛났고 그런 태양에 걸친 구름이 멋진 장관을 만들어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40분쯤 달리자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백미응서재와 마주했다. 이미 도착한 멤버들은 백미응서재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안주를 부탁해> 경진대회가 시작되었다. 심사는 백미응서재의 주인 분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는, 주인 아저씨의 말 속에 건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을 지켜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깊은 산골, 그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백미응서재. 이곳에서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리고 이어진 진짜 우리들만의 시간. 다시 보는 우리, <우리가 깊어지는 시간>이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진 한 장을 현장에서 찍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요리하는 남자 차대표님과 창균 덕에 잘 시즈닝된 꽃등심과 와규살을 먹으며 우리의 이야기는 깊어져갔다. 그 공간, 그 시간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모두의 말과 맛있는 식사와 긴장을 풀어주는 약간의(?) 술, 밝은 보름달과 별빛. 그리고 바람이 불면 실려오는 풀내음까지. 그저 충만하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 이런 시간이 얼마만인지.
120년이라는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고택의 마당에서 우리는 1930년대의 재즈를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는 밤. 그 누구보다도 이 여행을 기획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밤이 깊자 조금씩 추위가 밀려왔다. 장작으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무중력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하늘을 보며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몇몇 이들은 함께 동이 트는 순간을 바라보며 닭이 우는 아침을 맞이했다고.
Day2. 채우고, 다시 비우고, 그저 가만히.
여유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쿵,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이 도시 속에서 도대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찾을 수나 있는 걸까.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에도 잠깐의 틈이 생기면 핸드폰으로 곧장 시선을 빼앗겨 버린다. 이것이 진정한 쉼이 아닌줄 알면서도. 그렇게 24시간 바쁘게, 빠르게, 무언가에 홀린 듯,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둘 째날은 온전한 쉼을 위한 시간.
그저 가만히, 무언가를 응시할 수 있게.
각자 가져온 책을 꺼내본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책을 읽어나간다. 늘어지게 갖는 자유시간. 나는 홀로 마당에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백미응서재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대청마루에 앉아 책을 읽는다. 또 누군가는 방에 들어가 세상 모르게 깊이 잠든다. 촉촉하게 비내리는 일요일 오전. 처마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 비오는 백미응서재는 또 다른 얼굴로 우리를 품고 있었다.
느지막히 일어난 일요일 오후, 출출해질쯤 바닷가 곁에 있는 전곡항으로 가 회 한 접시 거나하게 먹고 함께 부둣가를 걷는다. 문득, 혼자였다면 이렇게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가족이나 연인과는 나누지 못할,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브랜드살롱 Be my B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감성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이다.
백미응서재로 돌아오니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진다. 우리는 또 다시 처마 밑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누구하나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
어두운 밤, 우리는 백미응서재에서 가장 큰 바깥 방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넷플릭스를 켰다. 함께 보고 싶은 영화의 해시태그를 이야기하고, 추천 영화의 티져를 함께 보았다. 바로, 별빛 영화관 타임. 누군가는 훌쩍이고 누군가는 코를 골고 누군가는 대박!을 외치며 바로 앉는 그런 우리만의 영화관.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무르익는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한다는 것. 그렇게 무르익은 시간의 힘.
그렇다. 이 글은 '감성의 결'이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찬양이다.
감성(感性). 감응하고, 느낌이 통하고, 감동할 '감'자와 타고난 사람의 천성, 바탕, 본질을 뜻하는 '성'자가 만난 단어.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감성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이다.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했을 때, 나와 같은 마음으로 혹은 나보다 더 좋아해줄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생을 살아가면서 잘 해내는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과정'에서의 즐거움. '과정'에서의 배움. '과정'에서의 감동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이고 싶다. 서툴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즐겁게 배워나갈 수 있는 마음은 어쩌면 매 순간 처음인 생을 살아나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힘이 아닐까.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도 좋았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그 곁에 항상 비슷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위로가 되었던 이번 여행.
승우, 상우, 미경, 원, 희정, 현지, 진영, 동훈, 창균, 상우, 그리고 멀리서 함께한 지우까지.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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