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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Sep 18. 2018

한 우물을 파면 모든 '본질'을 보게 된다구요,

'전짝시'의 이민석 대표님과 함께한 <스토리의 본질>

"이 책은 불완전한 책이다." 반전이었다. Boolunch 북클럽의 스토리 세션 첫 모임.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라는 책을 추천한 이민석 대표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를 놀라게 했다. 보통 추천한 책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고 찬양을 하기 마련인데, 100번 정도 이 책을 읽었다는 대표님은 오히려 1995년 발간된 이 책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오히려 불완전한 책임을 강조했다.


(+여기서 100번 읽은 책은 ‘삼국지’였고, 이 책은 10번 정도 읽으셨다고 합니다! 흐흐 대표님이 엄청난 삼국지 덕후라고 하셨는데, 저는 삼국지 100번 읽은게 더 놀라운....!)



1995년, 영화의 시대 그리고 영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설과 다르게 만화책은 싸구려 취급을 받으며 엄청난 위기의 상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책이 바로 <만화의 이해>. 만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준 이 책은 무궁무진한 만화의 가능성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하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는 이 책을 보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떠오른다고 했고, 어떤 이는 이 책이 "만화 그 자체"라고 했다. 어쨌든 굉장히 흥미로운 책인 것은 분명하다.




자신만의 어떤 '이야기 도구'를
사용할 것인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고싶은 말이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개인이 찾아낸 이야기 도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다. 이민석 대표님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만의 이야기 도구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영상이, 누군가에게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말이, 또 스콧 맥클라우드처럼 누군가에게는 만화가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이야기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도구를 나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을때까지 단련하는 시간도 물론 필요하다. 단련의 시간을 지나 찾은 나만의 이야기 도구는 가장 최적화된 방법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각자의 시각과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만화의 이해>

북클럽에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참 재미있었던 점은 모두가 각자의 업과 경험에 빗대어 이 책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심리학을, 누군가는 철학을, 누군가는 스토리를, 그리고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우리는 다른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공감했다. 본질은, 결코 다르지 않다.



여백의 중요성

만화에서는 '홈통'이라는 개념이 있다. 병렬적으로 연결된 네모 칸과 네모 칸 사이, 그 빈 사이를 홈통이라 부른다. 이 홈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자를 얼마만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홈통이라는 '틈'을 통해, 만화를 보는 독자는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된다. 앞뒤로 충분한 개연성을 만들어주고 독자 스스로 감정을 이끌어내고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힘. 스토리에서 '개연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엔 독자가 이 만화 속에 자신의 감정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백의 중요성. 단연 만화에서 뿐일까.


여백 = 틈 = 쉼 = 공간


한국수사학회에서 한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정한 수사학이란, 말하는 이와 듣는 이와의 공간"이라고. 그러니까, 너와 나의 말로 뺵빽하게 채워진 대화가 아니라 적절하게 비워진 공간이 우리 앞에 놓여졌을 때, 쌍방향 간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이존재'라는 개념이 다시 한번 등장할 타이밍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사이가 그 본질이다.
-신영복의 <담론> 중-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혹은 어떻게 이야기를 비워두고 채울 것인가? 이 말은 즉, 우리는 독자를 (혹은 청중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 이다. 즉 청중과의 밀고 당기기이다. 즉, 이용자가 작가와 함께 호흡하면서 따라올 수 있게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구조화'로 연결된다.


어떤 것을 채우고 비울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넣고 뺄 것인가.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고 편집할 것인가. 선택된 이야기는 어떤 순서로 배치시킬 것인가. 그리고 이 '선택'은 '주제'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주제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주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스토리는 이 주제( 혹은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고, 이 'One Point Message'가 이야기 선택의 기준이 된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PT를 듣고, 청중이 기억에 남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메시지. 이 메시지를 먼저 전략적으로 정하는 것과 정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짧은 제한 시간에 허투루 쓸 시간은 단 몇 분도 없다. 그 제한시간 안에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고 나와야 한다.


"평소에는 기술을 연마하고, 뱉을 때는 그냥 막."

나만의 이야기 도구. 이 도구(Tool)는 나의 것이 되기까지 어느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에 올라가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배짱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스피치 혹은 프레젠테이션은, 발표자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발표라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뱉을 때는 그냥 막"의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 정해진대로 딱딱한 대사를 외우는 사람은 현장에서 들려오는 말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설령 대본대로 완벽하게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본인은 만족했다할지라도, 듣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무대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완벽히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함께 춤을 추고 있어야죠."

마지막으로 이민석 대표님은 '리듬'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속되는 예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리듬감'이라고. 단연 영상과 만화에서 뿐일까.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이 리듬감은 매우 중요하다. 영상에서의 리듬감이 배우와 소품, 조명으로 완성된다면 프레젠테이션에서의 리듬감은 동일한 반복, 그러니까 패턴을 통해 가능하다. 짧은 시간에 듣는 이의 머릿속에 우리의 이야기를 쉽고 빠르게 인지시키기 위해서는 장수의 레이아웃이나 장수를 맞추는 패턴을 통해 가능하다.



하나의 우물을 파면, 모든 본질을 보게 된다.

보통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대사라며 이야기해준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신기하게 모든 현상에서 어떤 동일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화의 본질. 영상의 본질. 스토리의 본질. 말의 본질. 프레젠테이션의 본질.

본질(本質) ,근본 본에 바탕 질. 어쩌면 이미 이 단어 속에 해답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641578


*스콧 맥클라우드 TED 강연 <만화에 관하여>

https://www.ted.com/talks/scott_mccloud_on_comics?language=ko&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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