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직장인의 퇴사일기
*Update: 2016년 2월, 약 1년 넘게 퇴사를 고민하고 드디어 퇴사를 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회사에 사직서를 낸 후 처음으로 쓴 글입니다. 퇴사는 했지만 여전히 직장인입니다. 정규직으로 일하던 저는 퇴사 후 주 2회 동일한 회사에 연봉계약직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퇴사 후 재입사를 한 셈입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누군가에게 퇴사를 장려하거나 누군가에게 나처럼 살아보라고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기업과도 조금 더 자유롭게 계약을 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업에 대한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쉽지 않았던 저의 고민과 고군분투의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 그 당시 회사 내부적으로 이슈가 되어 잠정적으로 중단했던 이야기를 <일과 삶> 코너 속 '프로 직장인의 퇴사일기' 코너로 조금씩 풀어내보려 합니다. 지금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머릿속의 정리 뿐만 아니라 마음의 정리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2020년 3월 29일
글 | 채자영
내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이 나의 멋진 미래와 자유를 억제한다면,
자신만의 카벙클(carbuncle)을 만들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심연>, 배철현-
꿈을 꾸었다. 오래도록 같은 꿈을 꾸었다. 높디 높은 절벽 위에 나는 홀로 놓여져 있다. 지금보다 더 높은 절벽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놓여져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는 아찔하다. 용기를 내어 절벽 끝으로 다가가 발끝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름만이 펼쳐져 있다. 내가 가야만하는 그 절벽은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한다면 간신히 오를 수 있는, 그러니까 오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절벽 아래로 추락해버릴 것 같은 높이였다.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두려웠다. 그 절벽 위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아주 멋진 무언가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가야만 했다. 나는 몇번이고 제자리에서 발구르기를 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커다란 두려움이 나를 덥쳤고 그렇게 꿈에서 깼다.
그 시기에 비슷한 꿈을 여러번 꾸었지만, 결국 나는 한번도 넘어야 하는 절벽 위를 오르지 못했고 그 위에 어떤 멋진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보지 못했다.
처음으로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무언가 나의 가능성이 조직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다.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나는 편안했고, 안락했다. 처음 입사한 순간부터 이곳이 끝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처럼 평생 이렇게 편안하게 살아가는 건 어떨까.
누구나 꿈꾸는 삶일 수도 있다. 주어진 일을 해내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환경과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 적당한 월급, 그리고 보장된 정년까지. 나는 어찌보면 '보통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아니 '보통의 삶'에 스스로가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을 선택한 순간, 나의 성장도 함께 멈추었다. 입사 후 스펀지처럼 많은 것들을 흡수하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축 늘어져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늘어갔다. 내 눈빛은 더이상 빛나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일을 사랑하던 나의 모습은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무료함 가득한 일상이 찾아왔다. 아마도 그때였던 거 같다. '아, 이제 이 조직을 떠야하 할때가 온 것인가'라고 생각한 것은.
epilogue
오늘은 저에게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드디어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첫 발'을 내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퇴직서에 사인한 날입니다. 저에게 찾아왔던 수많은 두려움과 고민, 좌절감과 비참함을 넘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오늘이 오기까지의 제 생각을 풀어내보려 합니다. 2016년 12월 19일, <프로 직장인의 퇴사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