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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Dec 21. 2016

가장 큰 두려움은 '나'였다

프로직장인의 퇴사일기

*Update: 2016년 2월, 약 1년 넘게 퇴사를 고민하고 드디어 퇴사를 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회사에 사직서를 낸 후 처음으로 쓴 글입니다. 퇴사는 했지만 여전히 직장인입니다. 정규직으로 일하던 저는 퇴사 후 주 2회 동일한 회사에 연봉계약직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퇴사 후 재입사를 한 셈입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누군가에게 퇴사를 장려하거나 누군가에게 나처럼 살아보라고 강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기업과도 조금 더 자유롭게 계약을 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업에 대한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는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쉽지 않았던 저의 고민과 고군분투의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 그 당시 회사 내부적으로 이슈가 되어 잠정적으로 중단했던 이야기를 <일과 삶> 코너 속 '프로 직장인의 퇴사일기' 코너로 조금씩 풀어내보려 합니다. 지금은 꽤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머릿속의 정리 뿐만 아니라 마음의 정리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2020년 3월 29일

글 | 채자영



퇴사를 한다면, 더욱 크게 펼쳐질 나의 미래를 그려봤다. 지금까지 조직 내에서 키워왔던 나의 비전, 나의 가능성을 더 큰 세상에 나가 마음껏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니!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단지, 그동안 조직 내에 있으면서 개인적인 성취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몇몇 일들을 해왔었고, 앞으로는 그런 일들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갑자기 삶이 재미있는 게임처럼 느껴졌다.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 밤 꾸던 꿈처럼, 이런 기대의 순간 뒤에는 기다렸다는듯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도 한 몫 했다. 그 이야기들은 '확김에' 그만두는 폐단을 막아주었고 좀 더 객관적으로 나의 상황을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눈을 키워주었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키우는 증폭제가 되었다. 내가 믿고 있는 나의 가능성. 그보다 더 큰,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실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스핑크스는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자신이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버려야 할 과거이자 
바로 자기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괴물이다.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 즉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을 죽여야만 했다.

-<심연>, 배철현-


무엇보다 나를 가로막았던 것은 나 스스로가 지금의 이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꿈' 하나만 믿고 생소했던 '전문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입사 후 약 3개월 가량은 "내가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인생을 걸고 한 이직이었기에 내 능력의 최대치를 뽑아내고 싶었다. 현장이 좋았고 질타받는 것도 즐겼다.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나를 느꼈다. 그렇게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고, 조금씩 팀원들에게 인정받았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매 순간 실전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나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막 무대에서 내려와 아직도 뛰고 있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아쉬웠던 점들은 '프레젠테이션 노트'에 적어두었다. 이를 통해 나만의 콘텐츠가 하나 둘씩 쌓이기 시작했다. 참 재미있고 뿌듯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좋았다. 하나의 팀이 되어 무언가를 쟁취한 순간, 아이처럼 기뻐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을 겪고나면 그 뒤부터는 서로에대한 연민이 싹튼다. 회사와 개인의 인연을 구분하겠다던 나의 생각이 철저하게 무너진 순간이다. 무엇보다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 감사했다. 지금 함께하는 분들이 믿어주지 않았다면 '채자영 프리젠터'는 아마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임하는 선배들을 보며 몸소 배울 수 있었고, 때로는 협상의 전문가가 때로는 전략가가 되는 회사의 수많은 인생선배들 사이에서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 


차라리 지금의 환경이 아주 불만족스러웠다면, 자신있게 박차고 나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텐데 나에겐 지금도 좋았다. '만약 지금의 이 만족스러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가 평생 후회하며 살면 어떻게 하지?'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며 평생 자책하며 살아가는 것, 그러니까 스스로 한 선택에 대한 책임. 사실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치만 나는 분명 더욱 나아진 스스로를 꿈꾸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락가락 하는 나를 보며 자책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원하면서 선뜻 용기내지 못하는 내 스스로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면의 싸움이었다. 



epilogue

생각보다도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꽤나 많은 양의 겨울비가 내립니다. 그래서인지 제 기분도 꿀꿀하네요. 게리콕스의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또한 자기 혼자 책임져야 하는 선택이다." 냉혹한 선택의 순간을 보여주는 잔인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저의 선택이고, 저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선택'이니까요. 오랜만에 들리는 빗소리와 함께 모두들 좋은 밤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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