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Like Father, Like Son, 2013)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과장이나 가식이 없다. 조금은 잔잔한 선율로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치 옆집에 늘 있었던 이웃집 이야기를 보듯 영화를 본다. 있는 힘껏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려는 영화보다는 힘 빼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독으로서 장점이 가장 극대화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 한 켠을 짠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솔직하고 가감 없는 우리 시대 한 아버지의 성장기이다.
너무나 다른 두 가정, 그리고 각각의 가정에서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 6년 만에 애정을 듬뿍 쏟아 함께 지내던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는 별 다른 고민없이 친자와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과연 료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극적인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지만, 그만큼 섬세하게 배우들의 감정선이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살아난다. 결국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도 아닌, 단지 입술을 달달 떨며 울음을 참는 장면에서, 그만 오열하고 말았다.
성장은 아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매일 새로운 일상을 마주한다. 매일 마주하는 이 아침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오늘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무언가 달라진 현실을 마주한다. 이 새로움을 익숨함이라는 그늘 아래 두고, 마치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세상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 반짝이는 눈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와 더불어 우리의 성장은 환영 받지 못한다. 마치 어른이 되고 난 이후부터는 처음 하는 일도, 처음 마주한 새로운 일도, 아주 태연한 척하며 견뎌야 한다. 슬픈 현실이다. 청년이나 아이들에게 성장을 이야기할 때 꼭 함께 따라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성장통’이다. 무언가를 이루며 나아가기 위해 꼭 수반되는 것, 하지만 어른의 성장에서는 이 ‘통’이라는 단어가 사라진지 오래이고 왠지 모르게 가려야 한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을 경험하는 어른들에게 아픔은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감내해야 하는 통증이 있다.
나 어릴 적엔, 나의 성장기에만 관심이 있었다. 나와 함께하면서 성장하는 부모의 모습은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나도 어른이 되고,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니 비로소 부모의 성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담대한 어른의 모습이, 사실은 혼자 감내하는 슬픔 후에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어른이 된 나와 함께 우리의 부모님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이럴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나.
그때 할머니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제 알겠어.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할머니가 된 지금에서야 과거 자신의 엄마를 알게 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부모 역시 '당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통해 진짜 부모가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릴 적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채자영
스토리디렉팅그룹 필로스토리 대표
이야기의 힘을 믿는 '스토리 덕후'입니다. 8년 째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시지화하여 전달하는 국문학도 기획자이자, 못생기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쾌락주의자예요.
* 왓챠플레이(WATCHAPLAY) 공식 브런치 코너 '취향공복엔 왓챠 브런치'에 기고한 칼럼의 원문 글입니다. 왓챠플레이팀에서 편집한 글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Nov 08. 2019
글 | 채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