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기억산책 프로젝트 1주차
세월호 유가족 분들과 생존자가
참가할 수도 있어요.
2014년 4월 16일. 우리를 모두 충격에 빠뜨린 사건. 전국민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사건.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린 일. 입에 담기 두려울 정도로 슬펐던 현실. 아직도 생생한 그 날의 기억.
‘안산시 고잔동’의 이야기를 하나의 여행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되었다. ‘기억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안산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생산활동을 만들어내고 자립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프로젝트다.
필로스토리는 그 중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스토리 워크숍’을 3주 과정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안산의 주민들과 만난다는 이야기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스토리툴킷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때, 분위기가 어떨까?
사람들의 과거 다양한 기억을 꺼내는 것이 괜찮을까?
그들은 괜찮은데 괜히 우리가 지레짐작 걱정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너머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도, 필로스토리에게도 매우 의미가 있었다. 처음 필로스토리라는 그룹을 만들 때 '잔짜'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가진 자들의 메시지로만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서
스토리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채자영과 김해리는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살아 있을 때 더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읽고 쓰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서울에서 활동하며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또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 궁금해졌다.
어반플레이 <포스트코드> 인터뷰 중
세상을 둘러보면 보통 가진 자들의 이야기가 더 부각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많고, 대기업의 이야기가 중소기업의 이야기보다 많고, 잘 나가는 브랜드의 이야기가 관심을 끌지 못하는 브랜드의 이야기보다 많다.
세상을 조금 더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 우리가 가진 이 능력을 조금 더 가치 있게 사용하는 방법. 이 모든 것이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안산시 고잔동의 주민들과 만나는 날. 생각보다 고잔동은 다양한 이야기 자산이 숨어있는 곳이었다. 단원이라는 이름이 조선시대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단원에서 왔다는 것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안산시 고잔동. 이 마을은 참 아름다웠다. 오래된 마을, 한적한 시골 동네. 마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평화로웠다. 커다란 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그 강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그저 마음이 좋았다.
마을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필로스토리에서 직접 개발한 스토리툴킷을 통해 각자 무심코 지나쳤던 과거의 나, 우리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고 재발견하는 시간이다.
매번 스토리워크숍을 할 때마다 누구에게나 참 다양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다들 어찌나 말씀을 잘하시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다양한 이유로 고잔동의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가진 ‘캐릭터’를 찾아보기로 한다. 내 삶의 키워드 100가지를 적어보고 그 중 핵심 키워드 10가지를 뽑는다.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10개의 키워드만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는데. 웬 걸! 10개의 키워드 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게 되고 예측 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저 묵직한 목소리로 읽는 10개의 단어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스토리워크숍 1주차의 미션은 직접 콜렉터가 되어 보는 것! Be a collector의 미션을 남기고 워크숍은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즐거웠고 또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워크숍을 마치고 우리는 안산시 고잔동의 이야기 숨어있는 공간들을 방문했다.
짙은 주황빛 삼각 지붕의 연립 빌라 단지부터 걷기 좋은 단원 고등학교로 가는 길, 고잔동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준 명성교회의 정원, 그곳에서 바라본 단원 고등학교, 그리고 기억교실까지. 주민들이 살아가는 곳을 걷고 또 쉬며 바라보았다.
명성교회 옥상 정원에서는 단원 고등학교가 한 눈에 보인다. 유가족 분들이 아이들이 그리워 학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때, 누구나 마음껏 와서 아이들을 추억하라고 이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새삼 진정한 종교의 힘이란 것이 무엇인가 깨닫는다. 진정한 나눔, 이웃을 위한 보듬음, 위로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또 이곳에서는 고잔동이 한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옛동네를 한 눈에 바라보니 참, 아름다웠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오래된 동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기억할 수 있는 416 기억 전시관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유품이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울렸던 것은 지인들이 희생자 학생들에게 쓴 편지였다. 그 편지를 읽으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오래도록 그 편지를 바라보았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한참을 훌쩍이며. 마음이 너무 아파 힘든 시간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교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공간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고 있는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한민국에서 2014년 있었던 세월호라는 사건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마을 주민 분들을 만나고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416 기억 전시관과 기억교실을 둘러보고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떠올렸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날의 장면들.
놀라움과 안도와 배신감과 희망, 다시 상실을 반복했던 그 날의 감정을 절대 잊을 수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기억하며 그 날의 기억이 나에게도 큰 상처였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프다고 해서 그저 멀리하거나 지워버리면 안되는 기억들이 있다.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세월호가 그렇다.
안산시 기억여행 프로젝트는 세월호만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큰 아픔을 겪었고 또 그 곁에 함께 있었고 그 곳에서 여전히 생을 살아가고 있는 안산시 고잔동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이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다. 우리는 그 사건을 조명한다기 보다 한 사람의 삶을 그리고 생을 바라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똑같은 우리네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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