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자영 Nov 01. 2020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조건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을 찾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나이가 몇 살이냐는 둥 호구조사를 안 해서 너무 좋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왜 해외에서는 이런 정보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그 광활한 대지에서는 아무리 나이가 몇 살이든, 어디에 살든,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정보도 (한국에 비해)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잖아요. 그 시대에 어디에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한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죠. 예를 들어 IMF를 같이 겪은 동갑내기라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거잖아요. 어쩌면 한 사람을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을 표현하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일 수 있는데 해외에 비교당하면서 좋지 않은 행동으로 치부되어 버리니 좀 안타까워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IMF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몇 살이었더라. 1997년이니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아빠는 희망퇴직으로 사표를 내고 중산층이었던 우리 집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그 여파인지 결국 두 분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각자의 길을 택했다. 지금이야 '돌싱'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이혼에 대해 자유로운 관념이 존재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혼'이라고 하면 '무언가 잘못된 가정'이라는 주홍글씨가 낙인찍히던 때였으니 얼마나 힘겨운 결정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그게 IMF 때문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가정은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는 IMF를 직접 경험한 세대로서 각자의 아픔과 그 당시의 경험을 아주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저 우울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약간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롯데리아에서 판매했던 고기 패티 대신 롯데 햄이 들어가 있는 'IMF버거'까지 약간의 애정이 담긴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래 나도 알고 있어’와 같은 온화한 기류가 흐른다고 해야 할까. 같은 세대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유쾌하게 흘러가는 경험. 나는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왔기 때문


IMF라는 하나의 주제라 하더라도 그 당시 직장에 다니던 사람과 아이였던 사람, IMF가 무엇인지 책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의 대화는 크게 다를 것이다. 단지 동시대를 살아냈고, 또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어떤 느슨한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연대가 생기는 것이다.


미생의 김태호 작가는 만화 속 인물을 설정할 때, 태어난 연도별로 그 인물이 겪었을 사건들을 나열하며 캐릭터를 조금 더 심도 있게 구상했다고 한다. 그 인물이 몇 살에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에 따라 캐릭터가 가진 성격이 더욱 달라지기 때문이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어떤 이를 처음 만나면 언제나 그렇듯 나이가 궁금했다. 습관적으로 묻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나와 같은 나이에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많아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와 비슷한 지적 혹은 감성적 형성과정을 경험했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문제를 껴안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또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은 나와 어떤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친구’와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나의 질문이 나이로 인한 서열 구분 짓기로 폄하되는 것 같아 조금 서글펐다. 나이로 인한 서열 짓기라니.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생각 아닌가.


물론 나이와 같은 숫자 말고도 한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는 다양하다. 좋아하는 것, 자주 가는 곳, 어떤 취향이 될 수도 있고 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취향이나 꿈 역시 마음만 먹는다면 더욱 쉽게 구분 짓기가 가능한 분야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나이를 묻는 문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이를 통해 그 사람을 쉬이 평가하고 내 마음대로 단정 지어버리는 문화가 잘못된 것이다. 하나의 단서만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한 사람을 모두 아는 듯이 재단하고 구분 짓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나는 오히려 ‘해외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오랜 시간 지켜오고 성장해온 우리만의 문화가 있는 것인데 이는 생각하지 않고 해외의 것이 좋은 것인 마냥 들여오자고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신 사대주의가 아닐까.


JOH라는 브랜드 컨설팅 회사를 만든, 이제는 카카오의 의장이 된 조수용 대표는 매월 각각의 브랜드에 대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깊이 있게 다뤄내는 B매거진의 팟캐스트, B캐스트 <서울 편>에서 이런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유난히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과거 우리의 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는 편인데  이유인 , 식민지라는 아픈 문화를 경험했고 과거에 경험했던 우리의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편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던 보이’처럼 일본과 서양과 한국 전통의 문화가 혼용되어 만들어진 식민지 시절의 문화는 역사의 한편에서 깊이 조명되고 있지 못한 채 마치 빈 공백처럼 애매하게 서 있다. 그러니 그저 ‘해외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우리가 만들어온 우리만의 문화를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볼 일이다.



대화(對話)란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는 뜻이다. 대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對)’ 행위 외에도 ‘이야기(話)’가 시작될 수 있는 맥락이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그 시작을 잡는 단초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맥락을 잡는 요소 중 하나로 ‘나이’가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세대 한정적’인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공통된 우리만의 공감대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더욱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