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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자영 Nov 01. 2020

'어른'이 되면 말할 수 있어

모든 것의 끝은 말하기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정작 본인은 가장 어둡고 치열한 날들을 보내는 시기. ‘취준생’이라는 명목 하에 본인의 가능성을 재단당하고 증명해내야만 하는 시기. 단순히 ‘취업하기 위해서’ 수업을 들으려 했다지만 알고 있다. 그 내면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야만 하는 삶의 큰 숙제를 꽉 쥐고 있다는 걸.



말하기 수업의 마지막 날, 30명의 다양한 얼굴이 빠짐없이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수업마다 열성적으로 눈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부터 조용히 구석에 앉아 무언가를 써내려 가던 얼굴까지,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 앞에서 해보는 누군가에게는 작고 누군가에게는 큰 무대인 셈이다.



밤이 깊을수록 생각의 깊이는 깊어진다.


밤이 깊을수록 생각의 깊이는 깊어진다. 한 마디 한 마디 묵직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나는 나인데, 나를 증명해야 할 때. 나는 그냥 나인데,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때. 그리고 그것이 조금 어긋났다고 느낄 때, 스스로 존재의 부정을 하는 순간이 가장 슬프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불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가 되어라.’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스페인어로 들으며 마무리하는 하루.


자주 웃고 종종 눈시울이 붉어졌다.




학생들을 보면 대학생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이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가장 힘들었을 대학생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지금이라도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많이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글쎄 뭐랄까.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면 그 시절의 채자영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집 밖을 나선다. 가장 힘들었고 가장 치열했고 어쩌면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예뻤을 그 시절, 나는 나에게 뭐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괜찮다고, 그리고 진짜 생각한 대로 이룰 수 있다고’ 정말 한 번만 해보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시인 릴케는 ‘쓰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진짜 끝은 ‘말하기’다. 아무리 힘든 상황도 누군가에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때 끝이 났음을 실감한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말하는 순간 과거 일어났던 사건과 내가 이미 분리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 많이 나의 상처를 말하고 실패를 나누자고, 마음으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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