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or 18호 #BOPO를 읽으며 밑줄 친 문장들
집에서 매트를 깔고 유튜브에서 재생한 운동 영상에서 유튜버가 '이 운동을 하면 예쁜 청바지를 입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걸 들으며 설득당하는 동시에 '나는 컨텐츠 만들면 저런 말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다.
내 얘기다. 바디 포지티브라는 키워드를 마주하는 지금의 내 상태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특정한 형태의 외모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운 단계. 참 어렵다. 완벽한 정답을 찾아내기도, 그걸 행동으로 연결시키기도 멀어보인다. 다들 어쩌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결의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이 주제는 개인적으로도 어렵지만, 업무 영역으로 들어오면 더 어렵다. 개인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실수가 있어도 크게 상관 없지만 일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아래는 최근 해외 언론에서 받았던 질문들의 일부다.
Are perceptions of beauty changing in Korea?
In the last years we have seen an authentic feminist revolution that ask for equality, freedom... All over the world. We have seen how these demands are generating a great impact in fashion and the beauty industry. Many brands are now focused on diversity, inclusiveness...
어렵다고 해서 고민과 생각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는 이들에게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아는 것은 이제 업무 역량에 속한다. PC의 개념까지 가지 않더라도,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에게 하지 않아야 할 말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맞다.
최근 시작과 동시에 사과문으로 접은 광고나 마케팅 사례 몇 가지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결정권자 중 한 명이라도 하지 않아야 할 말이 뭔지 알았더라면, 문제 의식을 가졌더라면 쓰지 않아도 됐을 사과문이 참 많지 싶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지고 있고 기업 윤리를 살피는 소비자들도 그에 비례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소비하는 브랜드의 가치관이 같은 방향이길 원한다. 나 역시 그 역량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해 관련된 글을 열심히 찾아 읽으려고 한다. 그러던 중 문학잡지 릿터(Littor)가 #BOPO(바디 포지티브)를 주제로 펴낸 18호를 읽었고, 그중 밑줄 친 문장들이 있어 남겨본다. 두고두고 읽어야지.
(전략)
여성들을 옥죄는 지긋지긋한 미적 억압은 탈코르셋 운동과 더불어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의 물결을 거세게 일으켰다. 탈코르셋 운동이 일체의 여성적 아름다움의 규준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자기 몸 긍정주의는 '나는 나이므로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라는 자아 존중감 고양의 메시지다. 뚱뚱해도 아름답다, 키가 작아도 아름답다, 모공이 커도 아름답다, 가슴이 작아도 아름답다 등등.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의 기준은 다양하다는 것. 도달 불가능한 획일적 미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간 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정이 너무 손쉽고 게으르게 이뤄져 왔다. 미의 원본을 정해 두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몸들을 엄격하게 오답 처리해 온 폭력적 세태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을 때도 됐다.
(중략)
남의 몸 긍정은 쉽다. "예뻐, 예뻐. 걱정 마. 하나도 안 뚱뚱해." 자본은 더 쉽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아름다워요. 우리 물건만 팔아 주신다면!" 자기 몸 긍정주의의 정의도 때때로 헷갈린다. 탈코르셋 운동처럼 '아름다움 따위 필요 없다.'라는 것인지 '모든 육체가 다 아름답다.'라는 것인지 의미가 묘연하다. 전자도 후자도 논리적으로는 성립이 불가능한 명제다. 아름다움이 필요 없을 리 없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울 수도 없다.
(중략)
자기 몸 긍정주의의 모순은 몸이라는 단어로부터 파생된다. 몸에 포커스를 맞추면 자기 몸을 긍정하기가 어렵다.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적 분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스텝은 꼬일 수밖에 없다.
(중략)
우리는 외모의 파편화된 세부만을 들여다보는 미의 현미경을 집어 던지고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전략)
큰 키, 낮은 몸무게, 흰 피부의 여성을 사회적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어 내는 건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소비문화가 급격히 발전할 때 계급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기반으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유행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가긴 했지만 앞서 언급한 이상적인 신체의 기준과 표준화 경향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략)
이런 이미지가 미디어에 의해 강화되고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사회적인 압박이 되었다. 이런 모습이 성공을 상징하는 거고 현대인이 자아를 실현하는 방식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러다 보면 그 기준이 각각의 개인에게 내재화된다. 이런 게 멋진 것, 이런 게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현대인의 자세라는 식으로 타인에게 강요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중략)
미국의 미투 운동 이후 여성들은 자신들이 정말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능력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여전히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권리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모델 인권 문제가 있다. 모델 출신인 세러 지프가 이끌고 있는 모델 협회는 쌓여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실제 변화를 이뤄 낼 수 있는 시기라고 판단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래서 미성년자의 모델 채용, 성희롱 문제, 노동 환경 개선 등에 대한 법안을 뉴욕시에 제출했다.
프랑스에서도 모델, 패션쇼, 광고 등에 대한 법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케링과 LVMH는 훨씬 더 과감하게 움직이기 시작해 더 강화된 자체 규제안을 내놨다. 시간을 되돌릴 재주가 없다면 먼저 전향적으로 움직여 호감을 사는 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 된다.
(중략)
이런 규제들이 만들어 낼 결과 중 하나는 기존의 이미지 고착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패션 광고에서 흔하게 보이던 미성년자 분위기가 나는 여성의 섹스어필이 금지되고, 지나치게 마른 모델은 더 이상 광고에 나오지 못한다. 무엇이든 많이 노출되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생각도 그렇게 흘러간다. 이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데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자기 몸 긍정주의는 이 모든 변화의 핵심이다.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건 체중과 체형뿐만이 아니다. 성 정체성과 인종,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문화도 포함된다. 그 결과로 시니어 모델이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늘어나고 있다. 남녀 간 옷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젠더리스 패션, 유니섹스 패션도 마찬가지 시도다. 이런 옷은 성별에 기반해 나뉘어져 있던 옷의 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중략)
한때 도발과 자유로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섹슈얼한 광고를 만드는 브랜드들도 이젠 거의 없을 뿐더러 나와 봐야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뿐이다.
(중략)
자기 몸 중심이라는 건 단순히 '마른 건 안 된다', '플러스 사이즈가 되자.'는 움직임이 아니다. 걸리적거리지 않는 옷이 좋은지, 딱 달라붙어서 몸을 좀 압박하는 옷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취향과 몸 상태 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뜻한다. 각자 알아서 좋은 대로 살면 되고 남은 상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