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는 내가 했는데, 선배님의 팬이 되었다.
학기 말, 온갖 쌓여 있는 일들로 바쁜 일과 시간에 교내 북토크를 열었다.
평소 시간선택제 근무로 주 3일만 출근하는 데다, 그마저도 키다리쌤 영어 학습 부진아 수업과 육아 시간을 쓰고 일찍 퇴근할 때가 많아서 학교 행사에는 많이 참여하지 못한 내가 무슨 낯짝으로 학교에서 북토크를 열 수 있었을까.
염치가 없어서 학교 내부에서 사용하는 쿨메신저로 출간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학교 내의 나의 책 홍보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선생님이 내게 여쭤보셨다.
"선생님, 북토크 안 해요?"
"아. 학교에서 북토크를 해도 될까요?"
"하면 되죠. 뭐."
그분은 선배 작가이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오셨던 분으로, 아마도 내 추측에 의하면 글쓰기 신동 출신이신 그 선생님은 보통의 선생님과는 좀 달랐다. 이분과 대화를 하면, 뭔가 내가 말의 뒷면까지 꿰뚫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매 년 책 3권 정도를 써오고 계시고, 늘 머릿속에 어떤 책을 쓸지가 떠오른다고 하신 선배님. 한 학교에 이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언젠가 선배님처럼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맘을 품게 해 주셨다.
용기 내서 북토크를 연다고 쿨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유일하게 나에게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라며 물어보셨다. 이 말이 '도와줄 건 없어요?'라는 걸 북토크를 하는 날에서야 알아서, 도움을 적극적으로 청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선배님께 사회를 봐달라고 부탁드릴걸 그랬다.
예고한 시간이 되었는데, 이 선배 작가님을 포함해 처음에는 두 명만 오셨다.
'아니, 단 한 명만 와도 즐겁게 해야지 했지만 정말로 두 명만 오다니.'
교장선생님은 올해 다리가 아프셨는데, 내 책을 읽고 달리기를 꾸준히 해오셨는데 이 날 하필 출근을 못하셨다. 학교에서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지내던 한 선생님은 조퇴를 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선물만 보내주셨다. 북토크를 어떻게 그렇게 준비하냐고 기특해하던 한 선생님은 출장으로, 달리기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시던 한 분은 연가로 못 나오셨고, 내 책의 가장 첫 독자가 되어주신 보안관님은 근무를 서야 해서 못 오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와주신 분이 11분이 되었다.
바쁜 학기 말, 시간을 내어서 와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이 북토크를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스크립트를 짜고, 남편 앞에서 핀잔을 먹어가며 멘트를 연습했다. 초반에는 '달리기의 힘이 학교로 오다'를 이야기하며 학생들의 반응과 교장선생님의 일화 등, 아는 이야기를 하니까 반응이 좋았다.
선배 작가 선생님은 올해 이미 책 3권을 출간하셨는데, 나는 1권을 내고 요란하게 소문내는 게 민망했지만 그마저도 예쁘게 봐주시고 북토크 젤 가까이에 앉아 평소에 많이 웃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증언했던 그분이 어느 때보다 많이 웃어주셨다.
그런데 가장 흥미 있어할 거라고 생각한 '지속 가능한 달리기의 비밀'로 가며 집중도가 떨어지며 지루해하는 느낌이 느껴졌다. 당황해서 점점 얼굴이 달아올랐다. 질문을 했다. "달리기를 해보신 분 계실까요?" 딱 한 분이었다. 집중이 떨어질만했다. 원래 준비한 내용이 있지만, 급마무리하고 질의응답을 했다.
궁금한 것에 피드백을 하니, 즐겁게 참여하셨어. 책을 낸 스토리도 궁금해하셔서 가감 없이 말씀드렸다. 이 책을 쓰는 데 1년이 걸렸다는 사실과, 원래 달리기 이야기를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공동 육아 이야기를 쓰다가 달리기 이야기로 전환했다는 부분에 역시나 작가 선배님은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초고를 쓸 때는 막상 3달 정도만 걸렸지만, 정작 퇴고하는 데는 6개월 정도나 걸렸다는 것에도 격한 공감을 해주셨다.
작가의 마음은 작가가 안달까. 첫 책을 낸 설렘과 걱정 기대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알고 응원해 주시는 게 느껴졌다. 이런 분과 함께 근무할 수 있다니, 참 행운이다. 북토크를 내가 했는데, 나는 이분의 팬이 되었고, 이 분의 신간 책을 주문했다.
잔소리 탈출 연구소 1~2권 세트 중 2권
2. 나사 풀린 체력을 키워라
마침 달리기 책을 낸 내게 뼈가 되고 살이 될 것만 같은 이야기!! 심지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명의 이름은 나와 이름도 같다. 피자영!
이 책들을 읽고 나면 왠지 나도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고 싶어질 것만 같다.
학교 북토크 막판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며, 점점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쩜 말을 그렇게 잘해. 그래서 책을 냈구나."라는 걸 보니, 적절한 타이밍에 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오늘은 마침 출근하지 않는 날이라, 서초까지 가서 비폭력 대화 수업을 들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서, 나는 어제의 북토크에 대한 내 감정과 욕구를 정리했다.
내가 느낀 감정은 '고마움, 당황, 아쉬움', '유대, 도전, 나눔'의 욕구가 있었다. 나와 오신 분들의 감정과 욕구는 서로 다름을. 그 안에서 서로 만나는 순간을 만들기만 하면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결론은? 참 감사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