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사의 날, 함께 달리다.
10월 5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 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교사의 날이라고 한다. 14년 차 초등교사인 나도 전혀 몰랐던 날. 요새는 스승의 날에는 학교 교사는 감사하는 스승에 속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날이 사라졌으면 속으로 바란다. 그런데 어찌 세계 교사의 날까지 알고 있겠는가.
14년 차 교사가 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과 동시에 교사로서 무력감을 나날이 쌓아가고 있다.
교사가 아이들을 교육하다가 생기는 문제들, 학교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결국 교사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된다. 아동학대의 주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교육을 피해야만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나 또한, 8년 전 한 아이를 '교육'하다가 문제를 만났었다. 부모조차 돌보지 않았던 한 아이는 5학년이 될 때까지 순간순간의 문제만 봉합해 오며 몸만 큰 아이가 되었다. 지금 내가 우리 집에서 4살, 6살과 집에서 하고 있는 훈육과 실랑이를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학교에서 교사엄마가 되었다.
병원 진료가 필요한 아이인데, 아이가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진단을 받지 않은 채 약을 띄엄띄엄 복용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할머니와 아이를 데리고 함께 매주 동행하며 병원 진료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야지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가정이었다.
분노 조절이 어려운 아이라, 크고 작은 상처를 내게 주었다. 화가 났을 때는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내게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화가 멈추고 나면 후회하며 그걸 만회하기 위해 애쓰는 게 안타까운 아이. 그 아이와 함께 1년을 보내며 내가 찾은 정답은 '사랑'이었고, 그동안 멈췄던 종교 활동에 의지하며 그런 상황에서 나 또한 살리기 위해 애쓰는 1년을 보냈다.
학생이 내게 폭력을 행사했을 때 그냥 쉬쉬하지 않았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큰 폭력을 당했다.
"내가 담임이었을 때는 그런 일 없었어요."
"여자 선생님이라 애가 만만해서 그래. 아이를 세게 잡아야지."
"임자영 선생님 몇 살이에요? 몇 살인데 울어요?"
이 모든 것은 동료 교사들이 내게 던진 말들. 아이로 인한 상처보다 동료 교사의 이런 말이 더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런 일이 발생하게 한 무능한 교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일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고 학교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내부에서도 동료 교사에게 지지받기 힘든 집단이 이제는 외부에서 더 쉽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 그럼에도 어떻게든 나를, 이 집단을 지킬 수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초등교사노조'와 '서울교사노조'에 동시에 가입했다. 하지만 매 달 소액의 후원금만 보내고, 활동하는 것 없는 유령 회원이었다.
초등교사노조에서 세계 교사의 날을 기념해 '교사도 시민이지 run' 챌린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름부터 애처로운 교사도 시민이지 run. 교사는 정치기본권이 없다. 물론 투표를 할 수 있는 있지만, 특정 정당에 소속되거나 후원을 할 수 없다. 교사가 정치기본권을 갖는다고 학교에서 정치 교육을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평범한 회사원인 내 남편은 갖고 있는 그런 권리를 가진 똑같은 시민으로서 존재하고 싶음인 것을 말이다.
10km를 달려서 인증하면 되는 개별 인증 챌린지와 11월 4일 국회 앞에서 함께 모여 달리는 오프라인 챌린지가 있었다. 개별 인증 챌린지는 이미 완료했지만, 오프라인 챌린지에 평일 오후, 아이들을 맡기고 가야 하는 일정이라 부담이 되었다.
'나 한 명이 가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이걸 간다고 뭐가 바뀔까.'
내가 문제가 있었을 때 자기 일이 아니라고 외면받은 것과 똑같은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얼마 전 달리기 책인 <달리는 엄마는 흔들리지 않는다>까지 내지 않았던가. 책에 초등교사라고 밝힌 용기를 내었듯, 이번에도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일직 퇴근해서 아이들을 하원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국회로 갔다.
도착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어서 쭈뼛쭈뼛 서 있는데,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정답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아는 분들이랑 같이 와야 하는 거였나.' 하는 중에 "선생님, 서 있지 말고 여기 같이 앉아요."라는 말을 듣고, 정답게 이야기하는 분들 틈 사이에 앉았다. 알고 보니 모두 오늘 처음 본 사이였다. 교사가 시민이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은 채, 각지에서 홀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 마음만은 같았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며 내가 얼마 전 달리기 책을 냈기 때문에, 이 행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말에 놀라며 여러 질문들이 이어졌다. 며칠 전 JTBC 풀 마라톤을 완주해서 성취의 메달을 챙겨 온 누가 봐도 나보다 에너지가 많고 잘 달릴 것 같은 분이 감탄하며 말씀하셨다.
"달리기를 참 잘하시겠네요."
"아니요. 저 아직 하프 마라톤만 달려봤어요."
"아, 그러면 글을 정말 잘 쓰시나 봐요."
단단한 오해가 생겼다. 내가 달리기 책을 낸 것은 달리기를 잘해서 낸 게 아니다. 오히려 달리기를 하기 힘든 아이가 어리고 일을 하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달리기를 이어왔고, 그 달리기 이야기로 다른 엄마들의 하루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으로 조금 부족한 나의 달리기지만 이야기를 썼을 뿐이었다.
'나도 달렸으니, 당신도 달릴 수 있어요.'
빼어난 달리기가 아니어도 그런 진심이 담겨 있다면 책이 될 수 있음을. 그런 용기를 담으려 애썼다. 그 책을 마음에 담고 선생님들과 "교사의", "정치권" 구호를 외치며 달렸다. 내가 학생과 문제가 생겼을 때 무력했던 순간, 이렇게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구나. 함께 달리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는 거기까지 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무력하다고만 여겨왔는데, 함께 소리 낼 사람들이 있는 집단이었다. 문제가 생길 때, 이렇게 든든하게 교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구나. 달리기 행사 하나로 갑자기 교사의 참정권이 생길 리 없지만, 다른 집단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알 것 같지만, 그런 것에 미리 위축돼서 이야기조차 못하는 집단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내 달리기가,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을 담아 계속 써왔듯 이것도 마찬가지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이런 행사가 있다면 더 용기 내서 나와 같이 주저하던 마음을 갖고 있는 선생님과 더 많이 함께할 수 이도록 용기 내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