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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달리기 책을 냈어?

하프1회 완주자가 달리기 책을 내다니.

by 다우

"저 이번에 하프 마라톤 뛰었어요."

"얼마에 들어왔어?"


"기록은 별로 안 좋아요. 그냥 끝까지 완주만 했어요."

"그래. 계속 뛰면 좋아져."


"저, 그런데 이번에 달리기 책을 냈어요."

"뭐라고? 벌써 달리기 책을 냈어?"


달리기를 하며 발목이 아파서 일부러 집에서 꽤 먼 곳의 달리는 의사선생님이 계신 정형외과에 찾아갔다. 가면 체외충격파치료과 물리치료를 받는데, 동네 병원과 다른 점은 진료 전 의사 선생님의 코멘트였다.


"이번엔 몇 키로 뛰었어?"

"발목이 괜찮아서 5키로 뛰었어요."

"응. 잘했네."


의사선생님은 진료를 보기 전에 발목 상태보다도 몇 키로를 뛰고 진료를 보러 왔는지 물으셨다. 흡사 달리기 코치님 같으신 분이었다. 풀마라톤도 모자라 100km가 넘는 울트라마라톤을 여러번 완주하신 의사선생님도 아직(?) 달리기 책을 쓰지 않았건만, 고작 하프마라톤을 1번 그것도 딱 완주만 한 환자가 달리기 책을 썼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을까. 처음에 내가 달리기 책을 쓸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벽 또한 비슷한 이유였다.


내 달리기는 빠르지도, 길지도 않다.


그런 달리기로 글을 썼고, 그 글을 믿고 세상에 나오게 해 준 출판사를 만났다. 이제는 그 책을 읽고 자신의 몸을 일으키는 독자들을 만났다. 어제는 출간 한 달만에 1쇄의 오탈자 점검을 반영한 중쇄본을 받아 보았다. 유명하지도 않고, 아이 둘을 키우고 일하며 틈틈이 시간을 내어 달리고 글쓰기 또한 틈틈이 해서 만난 한 엄마의 이야기가 이뤄낸 순간이다.


달리기를 하고 오면 마음이 건강하게 차올랐고,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었다. 약골이라 이런저런 운동을 해왔는데, 살면서 이런 운동은 처음이었다. 달리기가 내 삶의 동아줄인 것은 맞지만,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쓸 자격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쓰고 싶은 마음에 공동육아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자꾸만 달리기 이야기가 불쑥튀어나왔다.


'너는 좀 나중에 나와. 아직 내가 쓸 이야기가 아니야.'


스스로를 억눌러도, 여름의 무성한 잡초처럼 자꾸만 싹이 자라났다. 스스로를 달래던 중에 두 번이나 완주했던 책과강연의 백일백장에 세번째 도전만에 완주하고 진단 코칭의 기회를 만났다. 나조차도 의구심이 있던 글에 확신있게 '엄마의 달리기 책은 없잖아요. 그래서 작가님이 쓸 수 있고, 써야하는 글이예요.' 말씀해주셨다.


'내가 써도 되는 글이구나. 아니 내가 써야만 하는 글이구나.'


찾아보니 엄마의 달리기 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들을 일으킨 달리기는 많이 있었지만, 유명하지는 않았다. '내 글이 나의 혼잣말이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새롭게 생겼다. 글이 뭐라고,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을테지만, 일기장에 혼자 끄적이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되길 바랬다.


달리기 책을 쓰며 여러 책들을 읽었다. 글을 쓰며 좋았던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독서를 깊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제목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이렇게 진솔하고 따뜻한 이야기라니,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하며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통해 쑥쑥 자라났다.


하루는 내가 존경하는 러너작가 정승우 작가님의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를 읽으며 용기를 다시 내기도 했다. '그래, 정말로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충분히 읽힐 의미가 있으니까.'


틈틈이 달리는 엄마의 달리기를 쓴 이야기는 "너 달리기 책을 벌써 썼어?"라고 자기검열의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나, "그래. 너의 그 이야기가 가닿을 곳이 분명이 있어."라고 토닥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믿는다.


"그 글을 지금 써도 됐어. 아니 지금이어서 울림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어. 용기 내길 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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