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겨울 오후의 눈송이처럼, 맑고도 소슬한 고요로 가득하다.
흰 겨울 오후의 눈송이처럼, 맑고도 소슬한 고요로 가득하다.
한 편의 소설이지만 동시에 수필이고 연작시와도 같은 이 글은 한강의 문장으로 가득하다. 일백 퍼센트 순수한 한강의 글. 거룩한 종이의 흰 바탕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는 듯, 최소한의 잉크로 쓰인 글.
그 문장들은 수없이 정제된 것이다. 그녀는 이 글을 고쳐쓰는 데만 1년이 걸렸다고 했다. 꽤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어떤 순서로 읽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조각글의 순서를 그녀는 세심하게 배치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이토록 순백의 작품이 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흔히 간결한 문장은 단편적인 묘사나 선언 또는 직설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녀의 문장은 그것들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그녀의 간결한 문장은 민첩하게 독자를 특정한 장면으로 데려간다. 마치 그게 아주 쉬운 일인 것처럼 자연스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독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문장은 무심히 독자의 명치를 건드린다. “커튼 없는 북동쪽 창이 짙푸른 박명을 들여보내듯.”
흰색은 삶과 죽음에 모두 관여한다. 인간은 생명을 시작하며 흰 배내옷을 입고, 생명이 다할 때 흰 수의를 입는다. 자식의 결혼을 앞둔 망자는 무명 소복을 선물로 받는다. 죽음의 상징은 대개 검정이지만, 흰색 역시 죽음이었다. 새삼스럽게도, 흰색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하면서도 처연하고 적막한 흰.
이토록 흰 글을 그녀는 삶과 죽음을 맞바꾼 그녀의 그녀에게 바친다.
아름다움이 밴 세상의 모든 흰 것들을 위한 헌사를.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라는 말로 시작하는 기도문을.
그녀는 하얗게 웃으며, 비로소 자신 안의 무언가와 결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