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그동안 개인적인, 깊은 이야기를 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보는 작업을 하며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기에 공유해봅니다. 여러분들께도 잊고 있던, 깊은 마음속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올려봅니다.
명상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돈에 대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다각도로 돈에 대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깊은 마음을 보니, 근본 원인은 돈에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공황장애 그리고 사람에 대한 공포증에서 시작했습니다.
공황장애는 사람에 대한 공포증,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통제하고 지켜본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됐습니다.
어쩌다가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을까요. 대학을 가며 다른 지역의 사범대에 진학했어요. 서울에서만 살았던 저의 삶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사범대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로 어딜 가나 저의 행동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학과 행사는 끊임없이 있었으며 억지로 행사에 참여하느라 온 몸은 긴장상태로 지냈습니다. 그들에게는 개인 일정 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전화하면 바로 나가야 한다는 괴상한 룰이 존재했습니다. 학교 내에 있으면 눈에 띄기에, 방에 틀혀박혀 핸드폰을 일부러 꺼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한 마디의 말이라도 와전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들은 지어냈습니다. 도대체 본인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가끔 보이는, 방치되어 자란 성인들을 보며, 세상을 향한 사랑과 신뢰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곳에 살면, 얼마든지 큰 사건은 조직적으로 은폐가 가능하겠구나. 라는 마음에 생존에 대한 불안감마저 생겼습니다. 저는 그 시기를 떠올릴 때 구역질 난다, 토할 것 같다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삶을 계속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에 휩싸여있을 때 한 교수님께서 우연히 저를 부르셨습니다.
볼 때마다 제 표정이 굳어있으니, 너무 힘들다면 학교를 쉬어보며 여행을 다녀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곳의 마지막 날 기억입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체육대회랍시고 축구를 합니다. 흙탕물에서 공이 튀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요. 억눌리고 억눌리던 감정이 폭발하여 2시간 넘게 눈물이 멈추지 않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아. 이 곳은 더 이상 있을 곳이 아니었습니다.
영화 <이끼>를 보면서, 이 영화는 실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으로 억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그저 구역질 날 뿐입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주변에서 만나보지 못해서 더욱 괴로웠습니다.
감정 체계는 완전히 무너져서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제발 세상에서 나를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충 배낭을 들고 여러 여행지를 떠돌아다닙니다.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을 찾아서요.
그러다 한 시골 마을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어디가서 자야할까 고민하던 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며 따뜻한 밥과 숙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느껴졌습니다. 학교에서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사람들 나름의 즐거운 인생이 있는데, 나는 왜 학교를 다니고 고통받으며 살아왔을까. 임용고시는 안 봐도 되고 더 이상 학교 사람들과 인생에서 엮이기 싫다. 는 생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인생에서 어떤 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집에서는 쉬지 말고 편입 학원을 다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불안했으니 그랬겠죠. 악으로 깡으로 세상을 살아온 부모님이시니까요. 안 되도 되게 해야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그 시기는 결국 제 인생에서 원흉이 되어버렸습니다.
편입 학원을 다니며 약을 늘 소지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공황 상태가 올지 모르니까요. 다행히, 학원을 다니며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황장애 후유증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편입 시험을 보는 동안, 문제가 하나씩 틀릴 때마다 가슴에는 대못이 날아와 박혔습니다.
저의 소원은 단 한 가지 였습니다. 공황 증상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한 학교 사람들을 삶에서 영원히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번호를 바꾸어버리고, 학교와 연관된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저를 모르는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급한 대로 병원에 다녔습니다. 독한 약을 먹은 후엔 정신이 끊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문자 내역이 찍혀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마음에 병원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약을 복용 후, 기억이 끊긴 경험은 저만 겪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감하게 약과 병원을 끊었습니다.
마음공부 모임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전부 가족에 대한 이슈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갑자기 안 맞는 이상한 집단을 만나며 삶이 뒤집어진 사례는 없었습니다. 저의 상황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문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행히도 그룹 상담을 통해, 두 달 만에 공황 증상은 말끔히 나았습니다.
그렇게 잊혀져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학교를 옮겼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를 오랜 시간 찾아 온 학교 친구와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부르셨던 교수님께서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마지막 대화가, 마치 마지막 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학과에 좋지 않은 사건이 터졌고 sns에서 논란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황장애와 사람에 대한 공포심이 남아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억눌리고 괴로운 감정은 잔해가 남아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싫어지는 경험을 하니, 함께 있어도 마음 어딘가에서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유튜브를 시작하며 명상을 하게 됐습니다. 유튜브를 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공포증은 남아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알려지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요. 그래서 조회수가 떡상하면 무서워서 유튜브를 아예 삭제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저를 좀 더 보여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지만 무서웠습니다. 이제야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돈에 대한 힘든 감정이, 사실은 공황장애를 얻으며 생겼던, 사람에 대한 공포감이 원인이었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돈이 흐르는데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이 뿌리 깊이 남아있던 것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얻고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도, 미움 바탕에는 사랑이 존재함을 알게 됐습니다. Oneness 상태에서는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깊은 고통을 꺼내어본 후, 명상을 해보니 그들은 저에게 웃음 지으며 행복 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에겐 그 삶이 최선이었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완전히 해소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잔해가 아직 남았어도 어쩌겠습니까. 이번 경험을 통해 여러분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바라보고 치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읽기 힘든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늘 좋은 말만 올릴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글과 인연이 닿는 분들께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