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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곳을 다시 걷고, 처음 하는 기록

대만, 그리고 한국 약 2주간의 여행 - 1

by 제이

이번 여행은 대만 7박 8일, 한국 5박 6일.

대만은 남편이 태어난 곳, 한국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두 나라 모두 너무나 익숙한 곳이어서 그랬을까?

그동안 기록을 남겨두자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않은 것 같다.


2024년 4월의 여행이 끝나고, 내가 대만에 여덟 번이나 다녀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며 몇 번이나 글과 그림으로 남겨보려 했지만, 2023년의 한국, 그리고 2024년의 대만 여행에 대한 기록은 끝내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리고 또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비행기 값을 아낄 겸, 아이의 봄방학에 맞춰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계획은 생각보다 야심 찼다.

두 나라를 한 번에 오가는 것도 아이 셋을 데리고 2주 가까이 집을 비우는 것도 처음이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만큼 이번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 대만에 간 건 2007년, 남편과 사귀기 시작한 첫해였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저가 항공권을 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둘이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때 사진 속 우리의 얼굴을 보면, 지금은 믿기지 않을 만큼 앳되다.


연애시절 그리고 결혼 후에도 아직 아이가 없었을 땐 대만에 자주 갔었고, 한 번은 3주 동안 타이난, 타이중, 알리산까지 가며 대만을 여행했고 중국어도 조금 배웠었다.

지금 생각하면 폼만 잡았던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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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시도 우리에겐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명동과 인사동을 쏘다니고, 롯데월드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밤늦게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관광객처럼 다니는 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서로를 더 알아가고 한참 후 가정을 꾸렸다.

두 나라는 첫째 아이가 생긴 뒤에도 여전히 부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아이 셋이 될 때까지 두 나라 모두 가지 못했고, 다시 대만과 한국에 가기 시작한 건 2023년부터이다.

지금까지 아이 셋을 데리고 대만은 세 번, 한국은 두 번을 다녀왔다.

아이 셋, 유모차, 그리고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여행을 다녀오면 남는 건 적당히 찍어둔 사진들과 근육통, 그리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린 나의 영혼...


뭔가 정말 많은 걸 했는데

1년 정도 지나서 돌이켜 보면,

우리가 뭘 했었지?

벌써 기억은 흐릿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진을 뒤적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여러 번 다녀온 도시들인데, 가족과 함께한 소중했던 순간의 기억들이 모래처럼 그냥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했다 할지언정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는데 이렇게 쉽게 기억이 사라져 버리다니.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은

그냥 ‘다녀오는’ 게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스며들어 있던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도착 후 첫 4일 동안은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간단히 글을 썼다.

아이들과 거리로 나갔을 때는 일상적인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카메라 셔터도 열심히 눌렀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평소의 리듬이 깨지기 시작하니 여행 중 매일 기록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고, 거의 기록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마치고 빠르게 책상에 앉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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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의 오감을 자극했던 공간들, 길을 걷다 갑자기 우릴 멈춰 서게 만든 어떤 순간들, 내 안에 반짝 남아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켰던 장면들, 사람들과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


그런 기억들을 잡아두고 싶어서 쓴다.

언젠가는 흐려질지도 모르는 이 기억을, 나와 우리 가족의 일부로 남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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