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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여름 방학

대만은 언제 가도 푸르르다 - 2

by 제이

새벽 5시, 긴장되는 하루의 시작


이른 아침 비행기는 아니었지만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할까 봐 밤새 뒤척이다 5시에 눈을 떴다.

대만과 한국을 함께 가는 약 2주의 일정.


이번 여행은 지난번 오키나와 여행처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전날부터 짐 싸기에 매달렸지만, 아직 마르지 않은 세탁물과 출발 바로 전까지 써야 하는 세면도구나 칫솔류는 당일 아침 정리해야 했다.


가족들이 자고 있는 사이, 약 40~50분 동안 조용히 꼼꼼히 체크하며 짐을 정리했고, 짐정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언제나처럼 아들이 먼저 일어났다.

가볍게 아침을 먹고, 지난번에 깜빡했던 충전기, 지지난번에 놓쳤던 칫솔과 치약까지 체크리스트에 표시하며 자신 있게 캐리어를 닫았다. 드디어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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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진 버스 - 여유 없음, 공항 - 여유 있음


7시 30분, 15분 거리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하네다 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7시 8분에 집을 나섰다. 이번엔 비행기 출발시간을 10시 40분으로 조금 여유 있게 잡았더니 평소처럼 일어나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았다.


34개월인 막내는 무엇을 타고 어디를 가도 굉장히 힘든 나이이다. 택시에서도 버스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이번에도 리무진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어떻게든 조용히 시키고 싶었지만 안전벨트를 푸르라며 때를 쓰고 맘대로 버스 안을 이동하려고 해서 진땀을 뺐다. 만 4살 정도 되어서 말도 통하고 주의를 주면 잘 알아듣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조용히 시키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


사실 아이가 있으면 2시간 반 전에 공항에 도착해도 늘 시간이 빠듯하지만, 나라에 따라, 공항에 따라 아이 동반 승객은 패스트 트랙(Priority Lane)을 이용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3.png 비행기를 보고 있는 아들 -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매일 비행기가 어떻게 뜨는지 궁금한 아들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분명 “뭐 먹고 싶다”며 때를 쓰는 아이에게 음식 사주고, 배변 때문에 화장실 들리고, 기저귀를 가는 것도 시간이 빡빡하다. 예전처럼 공항에 도착해 여유롭게 면세점 쇼핑을 하거나, 커피 한 잔 마시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ㅎ


하네다 공항에서는 패스트 트랙 덕분에 온라인 체크인 후 짐을 부칠 때도 거의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보안 검색대도 수월하게 통과했다. 내가 게이트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보고 있는 동안 남편이 친지분들에게 드릴 작은 선물을 살 수 있는 짧은 여유도 있었다.


순조로운 비행


2.png 비행하며 드물지만 가끔씩 볼 수 있는 후지산이 보였다


하네다 - 송산은 약 3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인데, 이번 좌석 배치는 다행히 막내와 나, 둘만 앉는 2인석, 그리고 남편이 위의 두 아이와 함께 앉는 3인석이어서 좋았다. 3인석에 막내와 둘이 앉아야 했다면 막내 때문에 옆의 승객이 신경 쓰여 굉장히 피곤한 여행이 되었을 거다. 막내에게 이착륙 시 가만히 벨트를 매고 앉아 있으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과자와 영상으로 어찌어찌 달래며 위기를 넘겼다.


Eva Airways를 타는 건 이번이 3~4번째인 것 같은데, 어린이 동반 탑승객에게는 꽤 친절한 편이다.

일단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먼저 나눠주는데 그걸로 30분 정도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png 너무나 푸짐한 키즈메뉴


특별식을 신청하면, 이륙 후 기류가 안정된 뒤 일반식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겐 아주 유용하다. 만 3살인 막내에겐 양이 많았지만, 식사도 푸짐해서 위의 두 아이는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까지 마치니 이륙 후 2시간쯤 지났고, 그동안은 항공사 영상화면만 켜두고 있었는데, 슬슬 지루해진 아이에게 아이패드에 저장해둔 뽀로로를 틀어주고 나는 졸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졸다가 막내를 보니 그윽한 눈빛이다.

아이도 노곤해졌는지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아 조심히 재우기 시작했고,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할 즈음 아이도 깨서 벨트를 채울 수 있었다. 너무나도 순조로운 비행이었다.


대만 입성 - 송산 공항이 좋은 이유


대만 입국 전, 항상 온라인 입국 카드를 미리 작성한다.

이걸 안 하면 손으로 써야 하는데, 가족 다섯명분을 쓰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기 때문이다.

온라인 입력도 시스템이 너무 별로라 사실 꽤 귀찮지만, 비행기 안에서 그것도 아이들이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종이로 일일이 쓰는 것보다는 낫다.


송산공항을 이용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그전엔 타오위안 국제공항을 주로 이용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셋이 되고 나서는 나리타–타오위안 루트가 아무리 저렴해도 빠르게 걷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이동하기엔 나리타도 타오위안도 공항이 너무 넓었다. 그래서 지금은 되도록 작은 공항을 선택하고 있다.


송산 공항은 도심 아주 가까이 위치해 있는 작은 공항이라 비행기 한 대만 도착해도 입국 심사장이 바로 가득 찬다. 그러니 입국 심사를 받으려면 꽤 기다려야 하는데, 아이들이 있으면 우선 심사 대상이라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도 아이들이 몇십 분씩 기다리며 때를 쓰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빨리 보내줘도 사실 금방 공항을 출발하지는 못한다. 화장실 가고, 기저귀 갈고, 짐 찾고… 입국 심사장은 5분 만에 통과했는데 결국 도착 50분 후에야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여행의 피곤함이 사라지다


송산 공항은 도심 한복판에 있다 보니 지하철은 9호선이 지나고, 택시를 타면 시내까지 10~15분 거리.

택시비는 만 원도 안 나올 정도로 가깝다.


택시를 타고 에어비엔비 숙소로 향하며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1.png 파릇파릇 우거진 가로수 길


내 마음속의 대만은 언제나 여름방학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진짜 여름에 오면 힘들다… 예전에 9월 중순에 갔을 땐 너무 더워서 죽는 줄 알았음…)


대만은 언제 와도 푸르다. 열대 기후 특유의 짙고 울창한 나무들이 도시 곳곳에 우거져 있고, 그 아래로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느긋하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나까지도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7박8일의 시작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숙소가 있는 Da'an(大安)에 도착했는데 아차...

도착해 보니 에어비앤비가 바쁜 거리 한복판에 있었다.

이번엔 시부모님도 1~2일 함께 계실 예정이라 평소보다 큰 숙소를 잡았는데, 주변 환경 체크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


도보도 없고, 차는 쌩쌩 다니고, 2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내가 왜 이걸 몰랐지? 이구...‘나 실수했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집은 넓고, 지내기 편하게 잘 되어 있었다.


남편은 도착하자마자 신이 나서 바로 음식을 사러 나갔고, 잠시 후 시아버지도 친구분과 함께 잠시 들르셨다. 아이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구경하고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평소에 못 보던 TV를 보며 쉬고 있었고 나는 짐을 풀고 정리했다.


친지 방문으로 꽤 빡빡하게 일정이 잡혀있는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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