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넘지 말고 구부려라

사람이니까요

by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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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넘으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선은 구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선은 팽팽한 실보다는 탄력이 있는 고무줄 같아서, 밀거나 당기면 늘어난다.






나는 <장송의 프리렌>이라는 만화를 매우 좋아한다.

본 작품은 천성적으로 감정이 무딘 엘프, 프리렌이 10년 동안 함께했던 동료, 용사 힘멜의 죽음을 맞이하며 뒤늦게 사람을 알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과정을 그린다. 비록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이나, 핵심 테마가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의외로 정곡을 찌르고, 비수를 꽂는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한 번은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작중 주인공 프리렌 외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마법사 페른과 전사 슈타르크는 둘 다 십 대답지 않게 책임감이 강하고 성숙하지만, 서로에게만은 서투르고 풋풋한 모습을 보여준다.

때는 페른의 생일날. 전에 슈타르크가 생일을 맞이했을 때는 그녀가 먼저 선물을 고르러 가자고 제안했으나, 반대로 자신의 생일에는 슈타르크가 아무 말이 없자, 페른은 단단히 토라진다. 우여곡절 끝에 둘 사이를 중재한 30대 성직자 자인은, 데이트를 나서는 둘 뒤로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과의 거리감을 가늠하게 되면, 충돌할 만한 일도 피할 수 있게 되지.

저런 것은 젊은이의 특권이야."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타인과의 거리를 정확히 가늠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원치 않더라도, 마주하는 모두와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재게 된다.

어릴 때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 그 시기에는 해결이 쉬운 편이다. 진심을 담은 사과만으로도 금세 다시 친구 사이로 되돌아가거나, 오히려 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한다.


대학 시절이 아마 이 "거리감 가늠"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시기가 아닐까 싶다.

대학생은 성인이기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방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지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대학생은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하다. 여태 겪은 사회생활이라고는 학교와 학원이 전부였기 때문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이나 "낌새"를 읽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학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맺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되고,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진심 어린 사과만으로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우리는 거리감을 확실히 가늠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인간관계에 더욱 조심스럽게 된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회사에 들어가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변사람들과 매우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바로, 직장동료이다.

이제 우린 가족, 친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을 동료들과 함께하고, 대화하며, 행동한다.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맞는 소수와는 인간적으로 친해지기도 하고, 업무 외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회사 바깥에서 따로 만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허물 수 없는 벽이 있음을 느낀다.

"공(公)""사(私)"의 개념이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서 독보적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가까워지기 어려움을 깨닫는다. 학창 시절 친구나, 회사 밖에서 만난 이들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안전지대를 파악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신경을 들인다. 그것은 상대방을 위함도 있지만,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자칫 관계를 넘겨짚게 되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직장을 잃는 것은 고사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인생에도 재미는 있는 법이다.

인간관계에 민감한 사람들은 거리감을 잘 가늠한다. 다시 말해, '선'을 잘 파악한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선'의 위치를 잘 파악하면, 그것을 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지만, 그런 만큼 상대와 친해지기 어렵거나,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선'의 위치를 잘 찾아낼 수 있으면, 그 '선'을 내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선은 넘으라고만 있는 게 아니다. 선은 구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선은 팽팽한 실보다는 탄력이 있는 고무줄 같아서, 밀거나 당기면 늘어난다. 정도껏 밀면 상대방이 내게 허락하는 바운더리를 파악할 수 있고, 부드럽게 당기면 상대방을 내 바운더리 안으로 허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을 움직이는 게 나만이 아니란 사실이다. 선은 내가 움직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움직일 수도 있다. 내가 선을 밀어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상대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선은 원위치로 돌아오겠지만, 어느 정도 가까워진 사이에서는 상대가 그 선을 잡아주기도 한다. 내가 침범한 영역의 일부분은 허락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경계가 변형되고, 선의 위치가 바뀐다. 새로운 경계가 고착화될 때 즈음, 다시 한번 선을 구부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상대의 영역 안의 나를 키워간다.


최근에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다. "인간관계는 스며드는 것"이라고.

한여름 장맛비처럼 삽시간에 흠뻑 적시는 것이 아니라 초봄 가랑비처럼 알게 모르게 젖어드는 것이라고.

선은 넘지 말고 구부리자. 구부린 만큼 상대방을 나의 색으로 물들이자.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은 온통 나의 색으로 물들어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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