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1위 유튜버는 나에게 니체를 가르쳐주었다.

사람이니까요

by 제이

<미리 보기>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무엇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지, 무엇이 나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지 말이다. 니체는 개인의 의지, 창의력, 독창성에 입각해서 개인의 가치를 직접 만들기를 조언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끊임없이 성장하고, 극복하고, 창조하기를 바란다.






퓨디파이(PewDiePie)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13년 8월부터 2019년 초까지, 거의 6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이었으며, 개인 유튜버로는 2022년 7월까지, 장장 9년을 세계 1위를 지킨 사람이다.

게임플레이, 이슈 유튜버, 반응 유튜버 등 여러 장르를 거쳐온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유튜브에서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현재는 간간히 육아 브이로그나 개인 프로젝트(ex. 그림 배우기, 컴퓨터 만들기)만을 업로드하고 있다.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위치에 반해 매우 겸손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15년의 세월 동안 그는 늘 자신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감상을 표현했으며, 지나치게 콧대가 높아지지도, 오만해지지도 않았다.

또한, 그는 10대의 마지막, 20대 전체, 그리고 30대의 절반을 유튜브와 함께하며 한 명의 사람으로서 확실한 성장을 보여줬다. 인터넷이 지금보다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던 2010년대 초반, 온라인에서 만난 현 아내 마르지아(Marzia)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나는 대담함을 보여줬으며, 2018년 한 해에만 721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꾸준히 독서를 실천하고, 일본의 문화를 동경하여 언어가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일본으로 이민을 가는 추진력도 보여줬다.


나는 그가 유튜브를 시작했을 무렵인 2011년에 그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공포 게임을 하며 재미있는 코멘터리와 반응 때문에 그의 영상을 시청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가 유튜버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그를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나 역시 독서를 시작했고, 그로 인해 내가 처음 집어든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철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퓨디파이는 철학을 매우 즐겨 읽는다. 실제로 그의 영상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책이 플라톤의 "국가론"이다. 그리고 그는 니체의 철학을 좋아한다.

언젠가 그가 이 "멋진 콧수염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한 영상을 보고, 나도 니체를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서점에 들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매했고, 10분의 1 정도 읽고 내려놓았다.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신은 죽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10년의 수행을 통해 자신이 신의 경지에 오른 차라투스트라의 행적을 담은 성경(bible) 형태의 책이다. 보통의 철학서처럼 철학가가 직관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성경을 읽는 것처럼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독자가 직접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저명한 책 요약 웹사이트인 스파크노트(SparkNotes), 클리프노트(CliffsNotes)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매우 유명한 책이기에 다행히 해석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니체의 철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니체의 철학은 흔히 "낙관적 허무주의"로 대변된다.

매우 게으르고 무책임한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왜 그의 철학이 시대를 관통하는지 알 수 있다.

니체는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세계는 산업혁명을 겪었다. 새로운 시장과 자본주의의 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종교와 문화, 예술의 가치는 비교적 퇴색되었고, 자본과 생산의 가치가 비상했다. 한 마디로, 가치 혼란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이전까지 최고의 가치는 선(善)과 아름다움이었다면, 이제는 기계화의 뒷받침으로 생산력과 돈이 새로운 가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니체는 이런 가치 격동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종교의 세력 감쇠를 포착했고, 자본이 매개하는 격차를 실감했다. 궁극적으로 더 이상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모두가 획일화된 가치를 추구하지 못한다면 개인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이 그의 철학을 낳았다.


"낙관적 허무주의"에서 "허무주의"는 앞서 말한 '모두가 추구할 수 있는 획일화된 가치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낙관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이 "허무주의"를 어떻게 "낙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획일화된 가치는 사라졌지만, 상심하지 마라. 가치는 개인이 직접 만들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사라졌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직접 설정함으로써 분명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낙관적" 허무주의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무엇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지, 무엇이 나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지 말이다. 니체는 개인의 의지, 창의력, 독창성에 입각해서 개인의 가치를 직접 만들기를 조언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끊임없이 성장하고, 극복하고, 창조하기를 바란다.

그는 허무주의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자신에게 도전함으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더 높은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위버멘쉬(Ubermensch, Overman)"와, 고통을 피하고, 얕은 행복에 만족하며, 남을 추종하는 "라스트맨(Last Man)"이다. 변화를 꾀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환영하고, 고통을 반기며, "힘을 위한 의지(Will to Power)"를 가지고 가치를 창조해야 된다. 니체는 우리 모두가 위버멘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아직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명확히 정립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내 가슴을 확실히 뛰게 만드는 것들을 놓치지 않게 된 것 같다. 현재로서 그중에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무엇이든 깊이 사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한 줄이든, 영화의 한 대사이든, 노래의 한 가사이든,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뿌리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그곳에서부터 뻗어나갈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의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결국 진정한 나만의 가치를 정의하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에 순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직접 조각하고, 그 가치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정의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고,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끝으로 니체의 유명한 생각실험을 인용하겠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똑같이, 영원토록 되풀이해야 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전 04화선은 넘지 말고 구부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