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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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성공과 인간관계에서의 성공 모두 우리에게 중요하다. 물질적 성공을 이룩해도 탄탄한 인간관계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우울할 수밖에 없으며, 끈끈한 의리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없는 법이다.
최근에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을 보았다.
인터뷰에 따르면 그 시작은 주연 배우 맷 데이먼이 대학 졸업과제로 집필한 스크립트였다고 하는데. 하나의 씬에 기승전결을 모두 담은 '원 씬 연극(one scene play)'를 써오라는 말에 맷 데이먼은 굿 윌 헌팅의 도입 신을 구상하여 제출하였고, 본래 과제의 의도와 달랐기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 우려했지만, 그가 쓴 스크립트의 가치를 알아본 교수는 그에게 A를 주며 "계속 써보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구조가 잡히고, 내용도 나름 탄탄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그는 현재까지도 친한 친구인 배우 벤 애플렉에게 그 스크립트를 보여주었고, 둘은 그것을 끝내 영화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제작비 지원을 도맡아줄 스폰서를 찾는데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그 스토리는 영화가 되었고, 영원히 사랑받는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로 빚어진 굿 윌 헌팅은 맷 데이먼이 본래 구상한 이야기와 방향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맷 데이먼은 주인공, 윌 헌팅(Will Hunting)이 본인의 비상한 두뇌와 대조되는 0의 의욕을 극복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자수성가 스토리를 고안했는데, 영화 제작 과정에서 윌 헌팅의 물적 성공보다는 그와 그의 심리치료사, 숀 맥과이어(Sean Maguire)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로빈 윌리엄스가 되었다.
천재적인 수학(數學) 능력을 가진 맷 데이먼은 일평생 보스턴을 벗어나보지 않은 스물한 살의 남자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매우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유하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즐기지만, 전문적인 배움에 대한 의지가 박약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건설업 일용직으로 살아간다. 영화 초반에 그는 MIT 공대 청소부로 일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 필즈 메달(Fields Medal) 수상자인 제럴드 램보우 교수가 복도 칠판에 적어놓는 수학 난제를 척척 풀어내는 기행을 보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램보우 교수가 그를 학생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나, 윌은 친구들과 보스턴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기 일쑤여서 재판을 통해 감금된다. 램보우 교수는 사비를 들여 그를 가석방시키는 데 성공하는데, 법원은 그에게 두 가지 조건을 부여한다: 첫째로, 윌은 램보우 교수 밑에서 꾸준히 수학을 연구할 것, 그리고 둘째로, 윌은 매주 전문 심리치료사와 면담을 하며, 치료사는 수시로 보고서를 작성해 보낼 것. 윌은 수학을 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었으나,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고, 여러 치료사를 거친 끝에, 램보우 교수는 그의 오랜 친구인 숀에게 도움을 청한다. 숀은 램보우와 대학시절 룸메이트였을 정도로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나, 자신의 선택으로 심리학을 추구하였고, 필즈 메달을 수상한 친구와 달리 조그마한 전문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윌과의 첫 만남은 삐걱거렸지만, 숀은 그를 결코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결국 그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한다.
단언컨대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숀)가 등장하는 모든 신은 명장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고르라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벤치 모놀로그" 혹은 "'네 탓이 아니야'". 첫 번째의 경우, 위태로웠던 윌과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두 번째로 그를 만나는 날에 숀이 그를 보스턴 퍼블릭 가든(Boston Public Garden)의 한 벤치로 데리고 나가 호수를 바라보며 긴 독백을 통해 윌을 무장해제시키는 중요한 장면이다. 실제로 영화 촬영을 앞두고 포 시즌즈 호텔(Four Seasons Hotel)에서 첫 번째로 대본 리딩을 진행한 장면이라고 하는데, 두 페이지 가량의 스크립트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뱉어내는 로빈 윌리엄스를 보며 맷 데이먼은 감탄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중, 숀과 윌이 서로가 겪었던 가정폭력에 대해 공유하며, 숀이 "네 탓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는 한 마디로 윌을 통곡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맷 데이먼의 리얼한 눈물로 같이 슬퍼할 수밖에 없는 신이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윌을 두고 램보우와 숀이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다.
전말은 이렇다. 윌이 수학에 실증을 느끼고 홧김에 램보우와 연락을 끊자, 램보우는 숀을 찾아와서 그를 나무란다. 숀은 램보우가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일침 하는데, 램보우는 그런 감성적인 이야기는 필요 없다며 화를 낸다. 역으로 숀은 램보우가 윌의 천재성을 지렛대 삼아 성공하려는 것 아니냐며 정곡을 찌르고, 둘은 언성을 높이다, 윌이 방으로 들어오자 램보우가 서둘러 자리를 비운다.
로빈 윌리엄스(숀)와 스텔란 스카스가드(램보우)의 완벽한 연기도 한 몫했지만,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각본에 있다고 생각한다. 숀과 램보우는 오랜 친구 관계이며, "윌의 성공"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만, 둘이 생각하는 "성공"의 의미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램보우는 개인의 출세에도 욕심이 있었지만, 결국 윌이 학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NSA와 같은 엄청난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는 성공을 바란 반면, 숀은 그가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등에 세운 가시를 내림으로써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성공을 바랐다.
언쟁을 벌이는 도중, 램보우는 그렇게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도 고작 동네 전문대학에서 강의나 하는 숀을 두고 "실패작"이라고 비난하였으며, 반대로 숀은 필즈 메달을 수상한 데다 열렬한 추종자까지 있는 램보우가 아직도 출세에 눈이 멀었고,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윌을 두고 시작한 언쟁은 서로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는데, 말다툼이 마무리될 때 즈음 결국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윌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 초반에 앞서 언급한 "벤치 모놀로그" 장면에서 윌이 고아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후에 그가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것은 양부에게서였던 것이었다. 때문에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은 램보우와 숀이 윌의 부모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식 같은 윌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두 사람이 서로의 자존심까지 긁어가며 언쟁을 벌인 까닭은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물질적 성공과 인간관계에서의 성공 모두 우리에게 중요하다. 물질적 성공을 이룩해도 탄탄한 인간관계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우울할 수밖에 없으며, 끈끈한 의리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없는 법이다.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두 가지 성공을 모두 이루기를 기도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도 부모 사이에 심한 언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두 성공 사이의 비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물질적 성공이 중요시되는 특성이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이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은 모두가 추구하는 바이지만, 한국에서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넘어 상대방과의 비교에도 물질적 성공이 지표로 사용되기 때문에, 특히나 더 비중이 큰 듯하다. 학창 시절, 수학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정승제 선생님의 말 중에서 굉장히 공감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벌이 물질적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에, 우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대학 이름값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나온 대학 이름이 평생 꼬리표가 되어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때문에 국내 학부모들은, 중국, 인도와 함께 전 세계에서 역대급으로 수입의 막대한 부분을 사교육에 투입하고 있다. 학벌은 직장과 연결되고, 좋은 직장은 곧 물질적 성공을 의미하기 때문에. 굳이 학부모뿐만 아니라, 10대, 20대에서도 개인의 물질적 풍요가 가족, 친구의 행복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결코 혼자만으로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낼 수 없으며,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없다. 맹목적인 물질적 성공 추구만으로 이룰 수 있는 부(富)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며, 사회적 성공 역시 한정적이다.
이는 단순히 상호 간의 도움과 협력의 이유뿐은 아니다. 가까운 인간관계는 서로 동기를 부여하고, 고무하고, 격려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듯, 우리 모두에게는 '라이벌'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라이벌을 바라보며 성장의 결의를 다지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라이벌이 없이는 더 높은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라이벌은 바로 주위에서 찾는 것이 좋다. 비슷한 위치, 비슷한 상황에서도 들이는 노력에 따라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출발점이 다른 라이벌과 겨루는 것은 불필요한 고통일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상상 이상의 물질적 성공을 이룩하고, 높은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결코 인간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나를 노력하게 만드는 '라이벌' 관계도 포함한다.
자식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라면 단순 물질적 부(富)를 넘어, 긍정적인 인간관계 역시 빌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