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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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오만함을 뒤돌아보고, 부끄럼을 느끼고, "절망의 골짜기"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표라는 것을. 우리가 삶의 지혜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꾸준히 깨달음을 쌓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을.
최근에 대니얼 키스(Daniel Keyes)의 고전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SF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수상한 이 대작은, 지체 장애를 가진 주인공 찰리가 실험적 수술의 도움으로 단시간에 지능이 증폭되며 대인관계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추악한 진실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찰리가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인류와 처음 조우한 외계인처럼 말이다.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지능이 낮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새삼 신기해하며 설명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굉장히 인상 깊은 구절을 읽었는데, 바로 이것이다.
"Now I understand one of the important reasons for going to college and getting an education is to learn that the things you've believed in all your life aren't true, and that nothing is what it appears to be.
(이제 나는 (우리가) 대학에 가고 (고등) 교육을 받는 중요한 이유를 하나 깨달았다. 그것은 우리가 평생 믿었던 사실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다시 말해, 모든 것은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이 촌철살인 독백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찰리는 비크만 대학의 네무어 교수와 스트라우스 박사가 개발한 지능 향상 수술을 받고, 주기적으로 네무어 교수 연구실에 방문하며 경과를 보고하고 있다. 철자도 엉망진창이고, 문법의 개념조차 몰랐던 찰리는 시간이 지나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학교도서관에 드나들며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찰스 디킨스 등의 명작을 읽는 동시에, 주변 대학생들의 대화를 엿듣는데 재미를 들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학생들 사이에 흥미로운 토론을 듣게 된다. 바로 신(神)의 존재에 대한 토론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여태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신은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런 그에게 이 대화는 청천벽력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신'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며, 자신이 철석같이 믿었던 사실이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을, 그 무시무시한 가능성을, 깨우치게 된다.
대학원생들 사이에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학부생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무지하며,
석사과정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시기이고,
박사과정은 자신의 무지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아가는 시기이며,
박사 후 과정은 자신의 무지함을 실제로 채워가는 시기이고,
교수는 그제야 뭔가 좀 알 것 같은 사람이다."
우스갯소리라고 했지만, 실제 심리학 이론이 뒷받침되는 발언이다.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전문적 자신감'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수준'에 따라 나타낸 그래프를 의미하는데, 낮은 지식수준에서 자신감이 천정에 달했다가, 급격히 떨어지고, 이후에 서서히 증가하는 형태를 띤다.
위에 말했던 것처럼 학부생 수준의 적은 지식으로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무지한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신감은 극에 달한다. 더닝-크루거 효과에서는 이를 "무지의 산(Mount Stupid)"이라고 부른다. 이후에 지식을 더 쌓으면, 곧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바닥을 치게 되는데, 이는 "절망의 골짜기(Valley of Despair)"라고 불린다. 여기서 더 지식을 쌓게 되면, 자신감이 서서히 증가하는 "깨우침의 경사(Slope of Enlightenment)"를 지나, '근거 있는 자신감'이 뒷받침되는 "지속성의 고원(Plateau of Sustainability)"에 도달하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학부 졸업생 신분으로 취업시장에 뛰어든다.
이 시기에는, 대학에서 배운 것들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도 "무지의 산" 구간에 도달한다. 젊음의 패기라고나 할까. 모든 것을 깨달은 것만 같고, 남들보다 월등히 아는 게 많은 것 같고, 험난한 세상을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때, 우리는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상사"와 "사수"라는 독특한 관계가 생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사(社)와의 관계를 따져보면 결국엔 아군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유형의 인간관계는 여태 만나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부모와 자식, 선생과 제자,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명확한 방향성이 존재한다. 한쪽이 대체로 공급하고, 다른 쪽이 대체로 흡수하는, 화살표로 이어진 관계이다. 그러나, 상사, 사수와의 관계는 다르다. 화살표가 아닌 작대기로 이어진 관계이다. 일을 시키고, 명령을 하달하고, 때로는 압박도 가하지만, 결국 사(社)에서 보수를 받고 일을 하는 입장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내가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듯, 그들도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해 몸부림치고, 내가 동기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을 걱정하듯, 그들도 옆 부서와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인다. 그리고 모두 해고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바로 나이와 경력이다.
회사에서 보낸 세월도, 인생을 살아온 시간도 나보다 십 년 이상, 때로는 수십 년 더 길다.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지혜 역시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다. 그것을 엿볼 계기가 많이 주어지진 않지만, 분명 기회는 찾아온다. 특히, 그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회사에 대한 고민이든, 업무에 대한 고민이든, 아니면 건강이나 돈, 가족 등 일상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든, 나보다 수십 년의 내공을 더 가진 그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논의할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조언은 학창 시절 선배의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오만함을 뒤돌아보고, 부끄럼을 느끼고, "절망의 골짜기"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표라는 것을. 우리가 삶의 지혜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꾸준히 깨달음을 쌓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을.
인생은 우리가 평생을 들여 익혀야 할 과목이다. 학창 시절, 인생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마치 내가 인생이라는 과목을 이미 정복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인생에 대한 지혜와 경험이 월등히 높은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우치게 된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부끄러움은 틀림없는 성장의 증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