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나?

취직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by 일생

2013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풋풋하던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좋았던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식을 마치고 사진을 찍을 때 마치 강의실을 옮겨놓은 듯 학우들로 북적였던 기억이 있다.


군 제대 후 엠티에서 처음 만난 아내는 아기처럼 티 없이 순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엠티 조장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하였고, 거듭된 작업의 결과 아내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였다.


20대 초반 혈기왕성한 우리는 서로에게 금세 빠져들어 불같은 연애를 시작하였다. 같은 과, 같은 학년이었기에 모든 수업을 함께 들으며 껌딱지 마냥 붙어 다녔고, 학교에서의 시간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부모님 몰래 동거한 지 2년이 되었을 즈음 불시에 방문하신 장인어른께 발각되어 호되게 혼이 나고는 상견례 후 두어 달 만에 결혼하였다.


양가 부모님이 결혼 의사를 물어봤을 때 철없던 우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알지 못한 채 해맑은 얼굴로 결혼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신혼집은 보증금 삼천만 원짜리 대학가 원룸이었고, 생활비는 부모님께 의지한 채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부부가 되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내와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졸업에 다다랐을 무렵 결혼하였음에도 부모님께 생활비를 의지하는 형편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처가에 가서도 돈을 벌지 못하는 학생의 신분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빠른 취업을 위해 오만 곳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당시 내 경력이라곤 몇 번의 공모전 입선과 반년도 안 되는 중소기업 인턴 생활이 전부여서 그런지 어느 회사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점점 초조해지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지도 교수님께 찾아갔다.


교수님. 저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 취직을 못해서 많이 힘듭니다.

혹시 아는 회사에 소개를 부탁드릴 순 없을까요?

안돼. 섭섭하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네가 아무리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너에게만 특혜를 줄 순 없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앞으로 더욱 힘든 일들이 많을 거야. 잘 헤쳐나가 봐.


상담을 마치고 복잡한 감정에 풀이 죽어 있는데 마침 반대편에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가 동기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었다. 그 친구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했고 내 모습과 대비되어 부러움과 침울함이 교차했다.


저녁에 친구와 축하주를 마시면서 조심스레 내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기술직 공무원은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다며 조심스레 공무원 시험을 추천해 주었다. 생각해 보니 내겐 뾰족한 수가 없었고, 더 이상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는 일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빨리 취업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평생 돈 걱정 없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군말 없이 자기가 대학 조교와 학원 강사를 하며 돈을 벌 테니 나에게는 아무 걱정 말고 시험 준비에 전념하라고 하더라. 대신 꼭 한 번에 붙으라는 약속과 함께.


그 후에는 학교 수업도 빠져가며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다. 방학 때는 독서실 총무를 하며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공부했고 밥 먹을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에 들기 전에는 그날 배운 것들을 혼자서 읊다가 잠들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무언가에 가장 집중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땐 매일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서 행복도 불행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대망의 합격자 발표날. 6개월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날의 감격이란. 아직도 온몸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너무 흥분해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속에 있던 것들을 다 게워냈다. 옆에 있던 아내는 함박웃음을 지었고 부모님은 아들 자랑을 위해 주변에 전화를 돌리시기 시작했다. 그제야 합격의 안도감과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감정이 복받쳐 한참을 울었다. 무엇보다 나를 믿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정말 고마웠고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 죽기 살기로 덤벼들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용 후에는 열심히 일했던 기억밖에 없다. 시청 건축과에 발령받아 건축 인허가 업무를 담당했는데 건축법은 왜 이리 어려운지 법령을 제대로 숙지하는 데만 반년이 걸렸고, 결재를 올릴 때면 꼭 놓친 것들이 하나씩 있어 선배들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어떤 날은 신고된 컨테이너 농막의 철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 중턱까지 걸어 올라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를 했고, 어떤 날은 식당 옆에 건축허가를 내주어 영업방해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또 어떤 날은 외지인의 건축허가를 설명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갔다가 수십 명의 어르신들께 포위되어 평생 먹을 욕을 다 들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기뻤고 내 일이 국가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묘한 만족감에 온몸을 바쳐 일했다. 그러자 실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민원 응대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지자체에서 주관한 여러 공모나 대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하여 2년 반 동안 일곱 번의 포상을 받았다. 나는 서서히 일 잘하는 공무원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동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이나 부탁도 거절하지 않으며 솔선수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차가 되니 임용 후 첫 다짐과는 달리 직업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은 도무지 견디기 힘들었고, 행정직에 비해 많은 업무량에도 뒤처지는 진급은 일할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전입시험을 통해 상급기관으로 전입했다. 그런데 상급기관으로 와보니 오히려 일이 더 힘든 것이 아닌가. 업무량은 전에 있던 시청만큼이나 많았고 광범위하면서도 신속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8년 차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나 혼자만 집중을 못 하고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이 길은 내 길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날부터 퇴직일기를 쓰며 계획을 세운 지 6개월쯤 되었을 무렵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가진 채 퇴직하였다.


나는 그렇게 8년 전 합격의 떨림을 뒤로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만약 8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 공무원 시험을 치기 전에 적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면 지금 내 상황이 다를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적성을 고민했다 한들 결국 공무원 시험을 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알지 못한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겠으나 수많은 회사에서 이력서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황과 가장이라는 역할 속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선택한 것이 한계이자 최선의 판단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생각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고 어떤 길을 가더라도 반대편의 결과는 알 수 없기에 자신을 믿고 내 선택이 항상 옳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선택이 아닌 결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업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움이다. 생각과 환경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건축직 공무원이었던 내게 작가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꿈이었다. 미래의 생각과 환경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까운 미래에 또 어떤 꿈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내게 가장 큰 성공 요인이자 위험 요인은 나 자신인 것이다. 새로운 생각과 환경에 부딪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뿐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업으로 삼으면 싫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일이 내 길이 아니라면 불편한 마음이 신호를 보내줄 것이다. 마음에 솔직하면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변화를 위한 인위적인 계기나 이 일을 지속해야만 하는 극한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겐 사회적 관계와 책임이 있어 의도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당장 문제에 뛰어들 용기나 여건이 부족할 때는 여유를 가지고 기록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이기에 조급한 마음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고 기록이 없다면 더욱 깊은 생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안정된 상태에서 기록을 통해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누구보다 이 일을 좋아했었고 시들어지자 다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려 온갖 노력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적어도 나에게는 마음가짐을 달리하여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라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뿐이다. 새로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내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야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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