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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꽂이 만들기

취미 목공 작업

취미로 목공 작업을 시작한 이래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이 만든 소품을 꼽는다면 아마도 잡지꽂이 일 것이다. 잡지꽂이 사진에 2012년이란 날짜가 찍혀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한창 목공 작업에 빠져들었던 시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잡지꽂이는 내 나름대로는 고민도 많이 한, 100%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다. 사람들은 잡지꽂이를 실용성보다는 장식용으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잡지꽂이는 만들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집들이나 어디 방문할 일이 있으면 선물로 만들어 가곤 했다. 선물로 사가는 과일이나 음료수는 며칠이면 없어지지만, 이 잡지꽂이는 쉽게 망가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집에는 이 잡지꽂이가 하나씩은 다 있다. 내가 선물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또 만들어드려 두 개를 갖고 있는 분도 계시다.


제작 방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먼저 주걱처럼 생긴 앞뒤면을 만든다. 이렇게 나무를 곡선으로 자르려면 직소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손잡이를 만드는데, 손잡이는 쉽게 일직선으로 만들어도 되지만 이렇게 약간 곡선으로 만들면 더 폼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양 옆면과 바닥에 나무를 붙여준다. 끝으로 트리머로 모서리를 다듬고 샌딩 머신으로 갈아주면 된다. 말로는 참 쉬워 보인다.


DSCN1899-1.jpg 이런 모양의 잡지꽂이는 2.5세대에 해당하는 소품이다.


나무를 붙이는 방법도 시간이 지나며 진화했다. 초장기에는 그저 나사못을 박아 나무를 고정시킬 수만 있으면 만족해했다. 그 당시에는 튼튼하기만 하면 못이 보이는 것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1세대- 나사못이 보인다).


그다음 단계에서는 이중 기리를 사용하여 나무에 홈을 판 다음 나사못을 박고, 나사못이 보이지 않도록 목심을 사용하여 메워주었다 (2세대- 목심 자국이 보인다). 그래도 못이 보이지 않으니 아마추어 티가 조금은 덜 난다. 사진 속 잡지꽂이는 2.5세대쯤 된다. 양 옆면에는 목심으로 메운 둥근 자국이 남아있지만 손잡이와 바닥에는 목심 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며 잡지꽂이는 더욱 진화를 했다. 그래서 지금 만드는 잡지꽂이에는 (3세대- 못 자국도 목심 자국도 없다) 나사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안쪽에 목심을 사용하여 나무들을 붙여준다. '도웰조이너'라는 공구를 구입 한 이후로는 더욱 쉽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못이나 목심 자국도 없는 잡지꽂이를 보면 어떻게 나무를 붙였였는지 궁금해한다.


물론 쉽게만 만들려면 목공용 본드를 바르고 실타카로 탕탕 박아 고정시켜도 된다 (싸구려 소품의 경우는 대개 이렇게 만든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면 빠르기는 한데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진다. 목심으로 고정시킨 것과는 비교 할바가 아니다. 더구나 요즘은 내가 만든 소품에 이름도 새겨 넣고 있으니 더더욱 허접하게 만들 마음이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목공 작업을 그만두고 말지.


042-2.jpg 바자회 때 판매한 잡지꽂이에는 이렇게 두 가지 색상을 입혔다.


몇 년 전 성당 리모델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바자회를 개최했다. 시골 성당답게 할머니들은 나물을 뜯어다 말리고, 효소를 만들고, 집에서 만든 간장과 고추장까지 퍼오셨다. 남자들도 바자회에 뭔가 기여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원목으로 소품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요?"라는 나의 제안에 사람들이 좋아라 했고, 결국은 제안을 한 내가 총책임자가 되어 실행에 옮겨야 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남자들 몇 명이 우리 집 뒤뜰에 모여 소품들을 만들었다.


대부분이 목공 작업과는 거리가 먼 초보들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힘을 합쳐 만든 소품이 50여 개는 되었다. 소품들의 색상은 흰색을 약하게 입히고 투명 오일스테인으로 마감 처리를 한 것과, 약한 앤틱 색상을 입히고 투명 오일스테인으로 마감 처리를 한 것 두 가지로 만들었다.


내가 처음에 왜 가장 많이 만든 소품이 잡지꽂이라고 했는지, 아래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 같다. 지금도 많아 보이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때 잡지꽂이만 20여 개를 만들었으니까.


025-3.jpg 여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때 잡지꽂이를 20여 개는 만들었으니까.


이런 잡지꽂이를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만들었다. 같은 것을 계속 만들자니 속도는 조금 빨라졌을지 모르지만 쳐다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이렇게 잡지꽂이나 연필통, 스툴, 작은 책상 등 소품 50여 개를 만드는데 거의 석 달은 고생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이후로는 그렇게 대량 생산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바자회 때 우리에게 제공된 가판대. 일부 소품들을 진열해 놓았다.


바자회 때에 그동안 만든 소품들을 팔았다. 어차피 큰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으니, 친한 사람이 오면 값을 깎아주기도 했고 그림이 그려진 작은 소품은 공짜로 끼워주기도 했다. 잘 만들었다는 칭찬에 눈이 멀어, 수사 신부님 한분께는 연필꽂이를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소품들은 대부분 3만 원에서 5만 원 사이로 팔았는데 (작은 책상만 7만 원에 팔았다), 그래도 오후 들어서면서 전체 물량이 매진되었다.


그때 제일 먼저 매진되어 텅 빈 가판대를 쳐다보며 모두들 좋아했다. 혹시 애써 만든 소품들이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도 많이 했으니, 다 팔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어차피 판매한 금액이야 만져보지도 못하고 전부 성당 리모델링 비용으로 들어갈 테니 얼마를 벌었는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바자회 끝나고 품평회에서 사람들이 말했다. "시골에서도 이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니, 도시에서 바자회를 했으면 가격이 더 비싸도 잘 팔렸을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이런 목공예품을 또 만들어 팔 마음은 없다. 원래 이런 수공예품은 제작에 들어간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자면 답이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 그러니 이런 목공 작업은 취미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나는 아직도 잡지꽂이라면 쳐다도 보기 싫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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