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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침대 만들기

더블 말고 싱글 매트리스 두 개를 주문해!

편안한 하루를 보내려면 잠자리가 중요하다며 침대에 큰돈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우리 집에서는 침대가 우선순위에서 한참이나 밀려나 있었다. 시골로 이사 와서 물건을 새로 구입한 적이 거의 없으니 많은 제품들이 서로 먼저 교체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당탕거리는 세탁기 소리에 아내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윙윙 거리는 에어컨은 두들겨 맞아야 조용해진다.


이렇게 바꿔야 할 물건이 많으니, 아직 삐걱거리지도 않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침대까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침대를 바꾼 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적어도 15년이 넘은 것만은 확실하다). 나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침대 회사는 다 망할 것 같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침대도 제법 가격이 나가던 침대였는데 (예전에 돈 잘 벌 때 구입한 거니까), 지금은 자고 나면 몸이 좀 불편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침대가 오래된 탓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좁아서!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줄곧 퀸(Queen) 사이즈 침대를 사용해왔으니 어찌 보면 불편한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무슨 신혼부부도 아니고, 둘 다 몸매가 길이는 줄어들고 옆으로만 늘어나니 가뜩이나 좁은 침대가 더 좁아진 것 같다.


그래서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내가 찜해둔 침대 매트리스 세일을 한다는 광고를 봤다. 이번에는 좀 큰 침대를 사려고 폭이 180cm짜리 침대 매트리스를 주문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 명령이 떨어졌다. "이왕이면 90cm짜리 싱글 매트리스 두 개를 주문해. 침대가 들썩거려 잠 깨지 않도록 말이야!" 이제는 아예 독립을 하겠다는 얘기다. 부부가 30년 넘게 살다 보면 이렇게 변하나 보다.


매트리스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침대 프레임까지 구입한다는 건 내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그까짓 침대 프레임쯤이야 바로 만들 수 있으니까. 디자인을 고민하다가 최대한 단순한 구조로 만들기로 했다. 침대 아래에 서랍장까지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집에 있는 자재만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요즘은 농사일도 많아 바쁜데 공연히 사서 고생할 마음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빨리 해치우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사실 아마추어가 집에 있는 자재만으로 적당히 만들면서 디자인이 어떻고 해 봤자 거기서 거기다. 그저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 특히 침대는 프레임과 다리를 연결하는 부위가 약한 법인데, 행여 나중에 육중한 무게로 인해 삐걱거리면 그 책임은 100% 제작자에게 돌아간다.


"어째 엉성해 보이더라" 이런 소리 듣지 않으려면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침대 프레임을 다리 위에 올려놓는 형태가 나을 것 같다. 만약 연결부위를 못으로 고정을 시켜주면 처음에는 튼튼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못이 헐거워진다.


20210525_110233브런치.jpg 다리 위에 침대 프레임을 올려놓는 구조로 만들어야 튼튼하다. 화살표는 같은 부위임을 의미한다.

침대 프레임은 2x6" (폭 14cm) 구조목을 사용했고, 다리는 2x4" 구조목 조각 2개와 2x6" 1개를 붙여서 만들었다. 다리는 침대 프레임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ㄱ'자 형태로 만들었는데, 가운데 약간 긴 나무가 침대 프레임과 접합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침대 갈빗살은 1x4" 판재를 사용했다. (구조목: 목조주택 지을 때 뼈대용으로 사용하는 나무)


프레임 옆에는 갈빗살을 올려놓고 고정시킬 수 있도록 2x4" 구조목을 반으로 쪼개어 붙여주었다. 참고로 갈빗살을 붙일 때에는 양쪽으로 같은 크기의 나뭇조각을 올려놓고 붙이면 쉽게 간격을 조정할 수 있다.


20210525_114921브런치.jpg 나뭇조각을 대고 갈빗살을 붙이면 일정한 간격으로 붙일 수가 있다.

침대 프레임에는 투명한 천연 린씨드 오일을 발라주었다. 그래도 나무를 장기간 보호하려면 오일을 발라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렇게 똑같이 생긴 침대 두 개를 만들었다. 침대는 매트리스가 침대 프레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매트리스 규격보다 약간은 크게 만들어야 한다. 주문한 매트리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침대 프레임 두 개를 펼쳐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일단 침대들을 거실에 포개어 놓았다.


20210525_123554blog.jpg 임시로 침대 프레임을 거실에 포개어 두었다.

이렇게 똑같이 생긴 침대 두 개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방에 놓여있는 침대를 보면 우리 부부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이가 좋을 때는 침대를 붙여놓고 싸웠을 때는 저만치 떼어놓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 보면 자칫하면 앞으로는 아예 침대를 떼어놓고 살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집에 있던 값싼 구조목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원목 침대다. 다 만들고 나니 싱글 사이즈로 두 개를 만든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침대를 폭 180cm짜리 하나로 만들었으면 무거워 움직이지도 못할 뻔했다. 아직 매트리스가 도착하지 않아 텅 빈 침대만 찍으려니 조금은 아쉽다.


이제 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으려나?


<대문사진> 예전에 청산도 여행 갔을 때 찍은 영화 세트장 침대 사진이다. 나중에 흉내 내어 만들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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