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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l 29. 2021

처음으로 심었던 양파

세상에 만만한 농사는 없다

농사를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한 번도 심어보지 못한 작물도 꽤나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식구들이 즐겨먹는 흔한 채소나 양념거리만을 심어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를 아예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처음으로 심었던 콜라비는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했는데 식구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가 않았다. "콜라비가 다이어트 식품이래!" 나의 유혹에도 식구들은 영 시큰둥하기만 했다. 사실 내 입맛에도 별로이긴 했지만. 지금도 수확한 콜라비가 저장고에서 뒹굴고 있으니 앞으로 우리 집 텃밭에서 콜라비를 구경하기는 힘들 것 같다. 반면 올해 처음으로 심어본 브로콜리는 우리 식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우리 식구가 즐겨먹고, 또 흔히 볼 수 있는데도 일부러 심지 않은 작물도 있다. 바로 양파가 그중의 하나다. 그동안 내가 양파를 심지 않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해마다 양파 가격이 엄청나게 쌌으니까! 내 기억으로는 몇 년 전 한 번을 제외하고는 양파 가격이 비쌌던 적이 없다. 양파는 재배하기 쉬운 작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너도 나도 손쉬운 양파를 심었고, 따뜻한 겨울 날씨로 양파가 풍작이 되면 가격은 자동으로 폭락했다. 


농사 잘 지어놓고도 비싼 인건비 주고 나면 모종 값도 안 남는 게 양파 농사라고 한다. 그러니 힘들여 고생하지 말고 차라리 조금 사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다른 농산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풍년이면 물량이 많아지니 가격이 폭락하고, 행여 흉작이 되어 농산물 가격이 비싸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난리가 난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곧바로 대규모로 수입을 할 터이니, 풍작이든 흉작이든 어차피 농사지어 먹고살기에는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


널려 있는 게 양파다. 이렇게 양파를 수확하니 값이 쌀 수밖에. (사진 출처: Pixabay)


작년에 지인으로부터 자색양파 한 자루를 얻었다. 집에서 키운 양파라며 주셨는데, 큼직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견물생심이라고 막상 양파를 보니 욕심이 생겼는지 아내가 단호하게 말을 했다. "우리도 양파 키워야겠어!" 이 말은 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양파 모종을 사다가 심으라는 명령이다. "양파 값싼데..."라고 말을 하다가 아내의 표정을 보고 멈추었다. 그래, 심자! 매번 비싼 작물만 심으란 법은 없으니까!

     

우리 집도 양파를 심으려 한다는 말을 들은 지인은 전문가답게 조언을 해 주셨다. "양파는 키우기 아주 쉬워요. 가을에 비닐 터널만 만들어주고 심으면 돼요." 내가 보기에도 양파 키우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어렵다는 마늘도 잘 키우는데 그까짓 양파쯤이야! 


그런데 막상 가을에 밭을 만들고 비닐 터널을 씌우려니 귀찮아졌다. 과수원 일로 한창 바쁜데 그까짓 돈도 안 되는 양파 때문에 매달려 있어야 하다니... 더구나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확이 끝나 노는 땅도 있었다. 비닐하우스나 비닐 터널이나 비닐이 씌워진 건 똑같으니 양파가 얼어 죽을 리는 없다. 그래서 융통성이 넘쳐나는 나는 '비닐 터널 대신에 비닐하우스 안에 심어도 되겠지'라고 해석을 했다. 


이렇게 넓은 간격으로 심었건만 양파는 크지도 못했다. 뒤늦게 물을 주었지만 이미 늦었다.


장에 가서 5천 원 주고 양파 모종 반 판을 사 왔다. 봄에 풀 걱정을 덜 하려면 비닐을 씌워야겠는데 일일이 비닐에 구멍을 뚫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이미 구멍이 뚫려있는 마늘 비닐을 대신 사용하기로 했다. 마늘 비닐은 간격이 너무 촘촘한 것 같아서 양파를 대충 한 줄 건너 심었다. 재식 거리가 좀 넓어 보이긴 했지만, 그 대신 나중에 큼직큼직한 양파가 열릴 거라고 기대를 했다. 예상대로 양파는 겨울에 얼어 죽지도 않았고, 이른 봄이 되자 파릇파릇한 싹이 올라왔다. 참 쉽다! 그때만 해도 양파 농사는 대풍인 줄 알았다.

     

'농사는 물장난'이라고도 하는데, 비닐하우스는 농사짓기에 만만한 공간이 아닌 것 같다. 노지에서야 비가 오면 땅이 젖고 새벽이면 이슬도 내린다. 한 여름 뜨거운 햇빛만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땅이 알아서 습도를 조절해준다. 다시 말해서 내가 물을 주지 않더라도 잘 자란다는 말이다. 하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내가 물을 주기 전에는 얻어먹을 곳이 없다. 아마도 비닐하우스 안에서 양파는 절대적으로 수분이 부족했나 보다. 양파가 크지도 못하고 잎 끝이 말라버렸다. 아차 싶어서 뒤늦게 관수시설을 해 주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올해 수확한 양파. 모종 값도 못 건졌다.


수확을 해보니 그 쉽다는 양파 농사가 엉망이 되어있었다. 간격을 그리 넓게 심었건만, 큰 양파는 고사하고 전체 수확량이 작은 바구니 하나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도 상품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작은 양파들로. 누가 보면 수확이 끝난 양파 밭에 뒹굴고 있는 버린 양파들을 주워온 것 같다. "올해는 양파 모종 값도 못 건졌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아내가 굳이 확인까지 시켜 주었다.     

     

자존심이 상해 올가을에 다시 양파 재배에 도전할 생각이다. 이번에는 전문가 말대로 노지에서 비닐 터널을 만들어주고 심을 생각이다. 봄이 되어 비닐만 걷어주면 굳이 물을 주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양파 농사 망친 데는 물 부족 이외의 다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그 쉽다는 양파농사가 이 모양이 된 것을 보면, 농사에서 물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 같다.   

     

비닐하우스만 있으면 뭐든지 잘 키울 거 같았는데 실제로는 만만한 게 아닌 것 같다. 특히 비닐하우스에서 농작물을 키우려면 관수시설이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웬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는 나처럼 실패하기에 딱 좋다. 새삼스럽게 세상에 쉬운 농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내년에는 틀림없이 큼직한 양파를 수확할 수 있을 거야! 양파농사 망쳐놓고 스스로 위로하며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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