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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Aug 12. 2021

옥수수를 좋아하세요?

옥수수는 수확 후 바로 삶아야 한다

어젯밤에는 바람도 세게 불고 비도 많이 쏟아졌다. 창문 너머 베란다 지붕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커서 도중에 잠에서 깨었다. 빗소리가 지나가는 트럭 소리보다도 더 요란한데 이상하게 빗소리에는 짜증이 나지 않는다. 그 큰 빗소리를 듣다가 다시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지난밤에 그렇게 비가 쏟아졌으니 텃밭과 과수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혹시 비바람에 쓰러진 농작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수많은 지지대를 받쳐주었으니 사과나무도, 고추도 멀쩡하다. 멀리 과수원 끝에 심은 옥수수도 줄에 기대어 버티고 있었다. 역시 준비를 철저히 해두어야 나중에 고생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옥수수수염이 마른 게 벌써 수확할 때가 되었나 보다.

비바람에도 옥수수는 쓰러지지 않고 줄에 기대어 버텨냈다. 

예전에 시골에 놀러 가서 먹었던 기막힌 옥수수 맛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그 맛이 그리워 도시에서도 옥수수를 사다 먹지만 예전에 먹던 맛이 아니다. 입맛이 변해서가 아니라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렇게 맛이 다른 이유는 옥수수는 수확하고 30분만 지나면 당분이 전분으로 바뀌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확한 지 24시간이 지나면 당분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아무리 유통과정이 빨라졌다고 하더라도 도시에서 구입하는 옥수수는 모두 수확한 지 24시간이 넘은 옥수수들 뿐이다. 옥수수가 이미 단맛을 잃었기에 도시에서 먹는 옥수수는 (또는 마트에서 사다가 집에서 삶아먹는 옥수수는) '뉴슈거'를 넣고 단맛을 낸다. 그러니 맛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사실 시골에서도 맛있는 옥수수를 오랫동안 먹기란 쉽지가 않다. 맛있는 옥수수를 먹으려면 일단 옥수수를 직접 심어야 한다. 수확하자마자 곧바로 옥수수를 삶으려면. 옥수수는 쪄 먹는 게 아니라 물속에 푹 잠기도록 넣고 삶아야 풋내가 나지 않는다. 또 삶을 때 소금을 조금 넣으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 (시골서 오래 살았다고 이제는 조리법까지 설명하고 있다). 


삶은 옥수수는 곧바로 다 먹어치우든가 아니면 냉동고에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작은 냉동고에 옥수수만 넣는 것도 아니니 몇 개 들어가지도 않고, 냉장고에서는 오래 보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옥수수는 수확하고 일주일 정도는 질리도록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집에 커다란 냉동고가 없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옥수수를 한꺼번에 따지 말고 먹을 때마다 조금씩만 수확면 되잖아요?" 그럴 듯은 해 보이는 말씀인데, 옥수수는 익었을 때 바로 따지 않으면 너무 딱딱해져서 웬만큼 이가 튼튼하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다. 대안으로 시골 사람들은 옥수수를 여러 차례 나누어 심는다. 예를 들면 옥수수를 보름 간격으로 나누어 심으면, 옥수수를 보름 간격으로 수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삶은 옥수수는 다음 수확 전까지만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이 방법도 수확 기간을 좀 더 연장해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해마다 옥수수 수확철이 되면 아내는 냉동고가 너무 작다고 불평을 한다. 그렇다고 냉동고를 살 수도 없는 일이니 옥수수는 우리 집에서 한 철 작물일 뿐이다. 

다양한 옥수수들 (출처: Pixabay)

옥수수는 품종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대학 찰옥수수'가 인기가 많았다. 요즘에는 '미백'이라는 찰옥수수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첫 수확한 미백을 내놓았다. "와! 옥수수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네!" 탄성까지는 좋았는데, 그 녀석들은 내가 일 년 농사지은 것을 다 먹어치우고 나서야 돌아갔다. 요즈음 나는 자주색 찰옥수수인 '흑찰미'를 제일로 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맛있는 옥수수들은 새로 종자를 사서 심어야지 수확한 옥수수를 종자로 심어서는 절대로 크고 맛있는 옥수수가 열리지 않는다. 비단 옥수수뿐만 아니라 요즈음 개량된 품종들이 다 그렇다.

   

더 이상 내버려 두었다가는 돌처럼 굳어진 옥수수를 먹어야 하므로 곧바로 옥수수를 수확했다. 옥수수를 삶아야 하는데 무더운 날씨에 집안에서 삶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비에 젖어있는 야외 화덕에 불을 피워야 했다. 더구나 반쯤 젖어있는 나무로!

                                  

내가 연기에 콜록거리며 불을 지피고 있는 동안, 아내는 저 멀리서 우아하게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우아하다고? 내 손 좀 봐. 완전히 무수리 손이지. 이게 다 누구 덕인 줄 알아?" 나중에 아내가 나를 째려보며 한 말이다. 다행히 비는 한두 방울씩만 떨어졌다.                   

야외 화덕이 영 볼품이 없다. 아무래도 개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저 풀들은 언제 깎지?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아왔는데, 사진으로 보니 야외에 만들어 놓은 화덕이 많이 초라해 보인다. 이것은 집 짓고 나서 곧바로 만든 것으로 초보티가 풀풀 나고 있다. 그 당시는 벽돌 쌓는 실력도 형편없었던 것 같다. 이 화덕은 일 년에 몇 번씩 옥수수나 메주콩 삶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쓰레기 소각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올해는 힘들 것 같고, 내년쯤 화덕을 다시 개조를 해야겠다.  


삶은 옥수수 사진은?

                               

옥수수 삶고 나서 더운 김 뺀다고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에 사진 찍으러 나갔더니 아내가 이미 치워버린 후였다. 몇 개씩 먹기 좋게 나누어 저온 저장고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사진을 못 찍었다고 투덜거렸더니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럼 옥수수 다시 꺼내 포장한 것 벗겨낸 다음, 사진 찍고, 도로 잘 포장해서 제자리에 갖다 놔!" "이 더운 날씨에?"  

                               

그래서 삶은 옥수수 사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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