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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Aug 26. 2021

불편한 진실 - 농약 사용을 줄여야 한다

농사와 농약은 애증의 관계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요즘 날씨에 농약 없이 농사를 짓기란 무척이나 힘들어 보인다. 특히 판매용으로 재배하는 농작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농약 없이는 흠집이 없는 말끔한 과일이나 채소를 만들 재간이 없다. 다소 상처가 있더라도 무농약 재배한 농작물을 찾아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갈 길이 멀다. 더욱이 도매로 농작물을 넘길 때는 흠집이 조금만 있어도 제 값을 받기가 어렵다.


물론 작물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상추와 같은 쌈 채소는 농약 없이도 재배가 가능하지만, 가지나 오이 토마토 등은 크진 않아도 병충해 피해가 있다. 심지어 땅속에서 열려 병충해와는 무관해 보이는 감자나 고구마도 토양 살충제를 뿌려주어야 굼벵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자급용 농사라면 농약 없이도 재배해도 된다. 아무리 벌레가 먹는다 하더라도 우리 식구 먹을 것은 남을 테니까.


8월에는 병이 급격하게 퍼지므로 빨간 고추를 수확하려면 방제를 해야 한다.

텃밭에서도 농약 없이는 키우기 힘든 작물도 있다. 바로 빨간 고추! 풋고추야 그럭저럭 수확한다지만 빨갛게 익은 고추는 농약 없이는 어렵다. 더욱이 요즘 같은 날씨에는! 고추는 처음에는 멀쩡해 보이다가도 고온다습한 8월이 되면 순식간에 병반이 확산된다. 특히 사과와 같은 유실수는 더욱 심각한데, 처음에는 멀쩡해 보이다가도 한 방에 훅 간다.


작년에 긴 장마로 사과 과수원에 갈반병이 퍼지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단 병이 퍼지면 그 이후에는 아무리 농약을 살포해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 며칠 만에 한 해 농사가 망가졌고, 인건비는 고사하고 그동안 투입한 농자재와 농약값이 고스란히 날아갔다. "허허~ 올해 한 해 헛농사 지었네!" 이런 탄식이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었다.


농사와 농약은 애증의 관계다. 상품성 있는 농작물을 생산해 내려면 꼭 필요한 게 농약이기도 하지만, 농약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특히 직접 농약을 사용하는 농민에게 나타나는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만성적으로 농약에 노출되는 농업인의 암 발생률은 일반 인구 집단보다 40% 높고, 농약이 장기간 인체에 노출될 때 폐암 발생률이 2배로 늘어난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농약 불감증도 문제다. 자주 농약을 접하다 보니 위험성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농약은 호흡기로도 들어가지만 피부를 통해서도 흡수된다. 그래서 농약이 몸에 묻으면 곧바로 물로 씻으라고 한다. 글쎄 이해는 가는데 막상 실천하기란 쉽지가 않다. 과수원에서 방제를 하다 보면 바람에 날린 농약이 묻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일을 중단하고 매번 물로 씻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사과 농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들은 조언은 "방제를 할 때에는 꼭 마스크 두 장을 겹쳐서 써라!"였다. 그런데 마스크 두 장을 겹쳐서 쓰면 보통 갑갑한 것이 아니다. 마스크 한 장도 갑갑한데 두 장을 쓰면 농약 중독보다 먼저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더구나 나처럼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한 여름의 햇빛 아래에서 마스크 두 개 쓰고 땀 뻘뻘 흘려가며 농약을 뿌리다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많이 똑똑해진 지금은 마스크 대신에 방독면을 쓰고 방제를 한다.

농약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모두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농약이 암의 원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직까지 농약과 암 발생에 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한 상태이니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비록 작은 확률이지만 내가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증세가 나타났을 때에는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


2008년 OECD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단위면적당 농약 사용량이 세계 1위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 개선될 줄 알았는데 8년이 지난 2016년의 조사에서도 여전히 세계 1위라고 한다. 정부에서 무농약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를 실시한 지 (1997년)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렇다. 아마도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무농약 재배를 실천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이 쉽지 비료 없이 퇴비만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몇 배의 노동력이 더 들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니 힘은 들고, 일손을 빌리자니 인건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또 농약 대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 데는 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독성이 약한 친환경 자재로는 요즘같이 괴팍한 날씨에는 농약만큼 충분한 방제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작년처럼 긴 장마가 오기라도 하면 농약을 사용해도 피해가 발생하는 형편이니, 무농약 재배 농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으면 노동력도 절감되고 병충해로 인한 피해도 확실히 줄일 수 있다.' 농민 입장에서는 결코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아직까지 병충해에 강한 몇몇 품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작물은, 농약 없이는 소위 '상품성 있는' 농작물을 만들기가 어렵다. 또 힘들게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새로운 판로를 찾기도, 제 값을 받기도 어렵다. 이러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은 채 아무리 친환경 농산물 재배의 필요성을 강조한들, 농가의 입장에서는 쉽사리 관행 농업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대부분의 농민들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는다.


지금까지 농촌을 지탱하는 것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있는 평균 연령 68.2세 (2020년 기준)의 농민들이다. 이 고령화된 농민들에게는 농약의 피해보다 더 무서운 게 먹고사는 문제일 수도 있다. 


2019년 농민신문에 게재된 자료에 의하면,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의 농약사용량은 다른 선진국의 10배라고 한다. 비료 사용량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아직까지 갈 길이 멀었다. 그런데 이렇게 농약과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게 정말 농민들만의 문제일까? 선진국처럼,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더라도 먹고살 수 있는 정책적 배려는 할 수 없는 걸까?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농약을 마구 뿌려대며 농사짓기를 좋아하는 농민은 없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농촌의 현주소 인지도 모른다.


<대문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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